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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와 로마 4대 성당
이탈리아 여행지: ① 로마, ② 나풀리,
<아말피 코스트> <③ 비코 에쿠엔세(vico equense)⟶ ④ 쏘렌토⟶ ⑤ 포지타노⟶
⑥ 아말피⟶ ⑦ 살레르노>⟶ ⑧ 카프리섬⟶ ⑨ 시칠리아섬
산 피에트로 대성당
▶ 이탈리아
유럽 중남부에 있는 나라로, 5세기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국토가 분열되었다가 1861년 3월 17일 당시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북동부와 교황이 지배하던 로마를 제외하고 통일되어 이탈리아 왕국이 수립되었고 1870년 완전한 통일을 이루었다.
지중해 중앙부, 북서에서 남동으로 약 1200km에 걸쳐 장화 모양을 한 반도와 시칠리아·사르데냐 두 섬으로 구성된다. 북쪽은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와 접하며, 동쪽은 아드리아해(海), 서쪽은 티레니아해에 면한다.
이탈리아 반도는 발칸·이베리아 반도와 함께 남유럽의 3대 반도의 하나로서 동(東)지중해와 서(西)지중해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자연·문화면에서 두 반도와는 달리 순수한 유럽형을 이루고 동시에 지중해 지역의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낸다.
1-1 로마
이탈리아 통일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국가의 수호신으로서 로마 여신에 대한 본격적인 숭배가 시작된 것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 여신을 통해 로마의 국가 이념에 종교적 신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로마(이탈리아어: Roma)는 이탈리아의 수도이자 라치오 주의 주도로, 테베레 강 연안에 있다. 로마시의 행정구역 면적은 서울시의 2배정도이다.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에는 고온건조하다. 원래는 로마의 일부였으나 교황령으로써 독립한 바티칸 시국이 자리잡고 있다. 법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나라이지만 역사·종교·문화적으로 이탈리아, 특히 로마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지역은 거리가 좁고 대부분이 테베레 강가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로마의 과거의 영광의 흔적인 기념 석조물의 대부분은 이 지역에 있다.
1-2 로마의 관광지
① 라테라노 광장(Piazza Laterano)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인상적인 광장
라테라노 성당 뒤를 돌아 큰 오벨리스크가 보이는 곳이 라테라노 광장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기원후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가 가져온 것이다. 이 오벨리스크 역시 다른 오벨리스크처럼 치르코 마시모(진실의 입 성당 뒤편)에서 발견되었는데 1587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오벨리스크는 로마에 있는 총 14개의 오벨리스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자그마치 기원전 15세기 때의 것으로 고대 이집트의 수도 테베의 암몬 신전 앞에 있던 것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상형문자가 적혀 있는 진품이다. 이 오벨리스크와 아울러 중요한 오벨리스크가 포폴로 광장에 있다.
②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i Campidoglio) -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아름다운 광장
포로 로마노를 둘러본 뒤 계단을 올라가면 캄피돌리오 광장과 연결된다. 베네치아 광장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을 왼쪽으로 끼고 연결이 되기도 한다.
캄피돌리오 언덕을 올라가는 계단은 경사도가 상당히 완만하다. 과거 이곳은 정치의 중심지였고 그러다 보니 많은 외국 사절들이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바티칸이 아니라 이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올라왔다. 따라서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완만한 경사가 필요했다. 이 경사진 완만한 계단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이고 계단 양쪽으로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사자상이 있다.
언덕을 오르자마자 말을 타고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상이 있다. 진품은 카피톨리노 박물관에 있다. 이 기마상은 약 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라테란 광장에 있었던 것을 미켈란젤로가 캄피돌리오 광장을 설계하면서 1538년에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분수대가 있다. 이 분수대는 신문고 구실을 한 곳이다. 분수대에 누워 있는 신은 강의 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억울한 일이나 알리고 싶은 일을 이곳에 말을 하든지, 적어 놓고 갔다고 한다. 이 캄피돌리오 언덕에 각종 신전들이 즐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분수대가 있는 건물은 세나토리오 궁으로 1143년 교황에 반기를 든 원로원들의 건물이었는데 현재는 로마 시장의 집무실이며 들어갈 수는 없다.
③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 로마인들의 삶의 중심지, 로마인의 광장
포로 로마노는 ‘로마인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로마인들이 모여 생활하고 살던 중심이며 계속 발굴이 되고 있는 곳으로 사법, 정치, 종교 등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곳이다. 원로원, 로물루스 신전, 2개의 개선문 등 과거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고, 기둥이나 초석만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이곳에서는 원로원, 에트루리아 왕에게 대항한 로마 반역을 추모하기 위한 사원, 로마의 중심부로 쓰인 아우구스투스 개선문 외 많은 건물들의 잔해가 있다.
포로(Foro)라는 말은 ‘포럼(Forum)’, 즉 ‘아고라’와 같은 공공장소를 지칭한다. 주변으로 고대 로마의 중요한 건물들이 있었으나 4세기 말에 서고트 족의 침입으로 황폐화되었다.
④ 판테온 -모든 신을 위한 신전에서 유일신을 위한 성전으로
판테온 -모든 신을 위한 신전에서 유일신을 위한 성전으로
판테온는 로마제국 전성기 건립되었고, 천체와 우주의 상징하며, 신전 건축의 원전이 되었다.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북서쪽을 바라보면 로마의 지붕들 사이로 바로크 시대에 세워진 성당들의 쿠폴라가 수평선을 뚫고 나오고 있다.
이곳이 바로 로마의 평지인 마르스 들판 지역으로, 고대 로마인들이 언덕에서 로마 시가지를 내려다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물은 단연 판테온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판테온의 형태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판테온의 둥근 지붕이 온통 금박으로 덮여 있어 마치 태양처럼 눈부신 광채를 발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빈 공간으로 이루어진 판테온의 내부가 특징적이다. 내부 공간’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비어 있는 공간’ 안에서는 눈앞의 공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등 뒤의 공간도 느껴진다. 판테온은 역사적인 인물의 묘소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왕을 비롯해 1520년 37세의 나이로 요절한 르네상스 천재 예술가 라파엘로의 묘소도 있다.
⑤ 콜로세움 (Colosseum in Rome, Italia )- 스펙터클의 전당
거대한 원형경기장 - 콜로세움
영원의 도시 로마의 시민들은 콜로세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서 있으리라. 콜로세움이 무너지는 날에는 로마도 멸망하리라. 로마가 멸망하는 날에는 이 세상도 멸망하리라”
로마를 찾은 많은 관광객들이 갖는 콜로세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거대한 원형경기장이 검투사들을 동원한 살육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⑥ 바티칸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안에는 바티칸이라는 또 하나의 국가가 있다. 바티칸 시(Vatican City) 또는 교황청(Holy See)이라고도 하는 바티칸 시티는 전체 면적이 0.44km2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이다.
이곳은 전 세계 가톨릭의 총본산이라는 성스러운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미켈란젤로 불굴의 명작인 〈천지창조〉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등 책에서만 보던 홀륭한 예술 작품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이탈리아 미술의 보고이기도 하다.
바티칸 시티는 이탈리아 로마 시내 테베레 강 서안에 자리잡고 있다. 한 번에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 베드로 광장 앞에는 도로 위에 흰색 선이 그어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와 바티칸을 구분 짓는 국경이다.
⑦ 산탄젤로 성 (Castel Sant’Angelo)- 전망이 아름다운 천사의 성
산탄젤로 성
산탄젤로 성은 135년 하드리아누스 대제가 자신의 묘로 건축한 것으로 이후 역대 황제의 묘가 되었다. 이 성이 ‘천사의 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590년 페스트가 만연했을 때,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이 성 위에 병을 퇴치하려는 검을 든 천사 미카엘이 나타난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후 얼마 안 지나 페스트가 사라졌기 때문에 성 위에 미카엘상을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세웠던 미카엘상은 벼락을 맞아 소실되고, 다시 피뢰침과 함께 미카엘상을 세워 놓았다.
중세 시대에는 성채이자 감옥으로 사용되었으며, 교황의 은신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성의 내부는 산탄젤로 성의 역사를 볼 수 있도록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으며, 성 내부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다. 성 앞에는 산탄젤로 다리(ponte Sant’Angelo)가 있다. 이 다리에는 베르니니가 만든 천사상이 세워져 있는데, 물론 지금 세워져 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원본은 거의 소실되었지만, 남아 있는 오리지널 원본 두 개는 산탄드레아 델 프라데 성당에서 만날 수 있다.
⑧ 바티칸 박물관 (Vatican Museum , Musei Vaticani)- 세계 최대의 박물관
관광객들이 바티칸 시국을 방문하는 목적이 대부분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바티칸 박물관은 영국의 영국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고대 로마 시대의 유물과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걸작들은 최고로 손꼽히고 있는 곳이다.
바티칸 박물관은 1506년 산타 마리아 마조레 궁전 근처의 포도밭에서 라오쿤상이 발견되고,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이 조각상을 전시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또한 율리우스 2세는 바티칸에 당대 최고의 화가와 조각가들을 불러들여 바티칸 궁전의 건축과 장식을 맡겼는데, 이 또한 바티칸이 지금의 최고의 박물관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가 되었다.
⑨ 산 피에트로 대성당 (Basilica Papale di San Pietro)
- 성 베드로의 묘 위에 세워진 가톨릭의 총본산
산 피에트로 대성당
로마 가톨릭의 총본산인 이 성당은, 베드로의 무덤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한 성인으로,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이었으며, 기독교 초대 주교이자, 제1대 교황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는 하늘나라 열쇠를 주며 그에게 반석이라는 의미인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었고, 기독교의 반석이 되었다. 그래서 베드로를 상징하는 것이 열쇠다.
349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명으로 순교한 베드로가 묻혀 있던 자리에 거대한 바실리카가 세워지게 되었으며, 1506년 율리우스 2세 교황에 의해 지금의 대성당이 지어지게 되었다. 대성당 공사는 120년 동안 지속되었고, 당대 최고의 천재들이 모여 만들었다.
처음 착공은 브라만테가 했고, 이후 상갈로,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등이 합류해 당대 최고의 성당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성당의 길이는 187m이고, 내부에는 11개의 예배당이 있다. 성당에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 복도에는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걸작 〈피에타〉가 있고, 성당 중앙에는 미켈란젤로가 만든 돔 아래에 베르니니가 만든 발다키노가 있는데, 이 아래에는 성 베드로의 묘가 있다.
⑩ 산 피에트로 광장 (Piazza San Pietro) -산 피에트로 대성당 앞 광장
알렉산드로 7세 교황의 명령에 따라 바로크 시대의 거장 조각가인 베르니니가 1656년부터 12년에 걸쳐 만든 광장이다. 이 광장에는 수많은 원기둥이 광장을 빙 둘러싼 반원형의 회랑을 따라 늘어서 있다. 원기둥은 4열로 겹쳐져 총 284개가 늘어서 있는데, 오벨리스크와 분수 사이의 흰 대리석 보도블록 위에서 회랑을 바라보면, 4열로 된 기둥이 신기하게도 한 개로 겹쳐서 보인다. 기둥 위에는 높이 3m의 140명의 성인의 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광장의 중앙에는 40년에 칼리굴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으며,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바라보고 오른쪽 건물에는 교황의 서재가 있어 교황이 축복을 내리고 메시지를 전할 때 이곳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쿠폴라(돔) 위에 오르면 산 피에트로 광장을 더욱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마치 그리스도가 양 팔을 벌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며, 산타젤로 성으로 향하는 길과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모습과 합쳐서 성 베드로를 상징하는 열쇠 모양을 하고 있기도 하다.
2. 로마 4대 성당
2-1. 성 베드로 대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은 ‘산 피에트로 인 바타카노 대성당’이라고도 하며, 바티칸 시국에 있는 대성당으로 ‘바티칸 대성당(Basilica Vaticana)’이라고도 부른다. 기독교 세계의 모든 교회 가운데 가장 거대한 교회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서기 67년에 순교한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건립했다.
건축양식은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있다. 대성당의 건설은 1506년 4월 18일에 시작되어 1626년에 완료되었다. 공사기간이 약 120년이 된다. 건축 내역에서 길이 220m, 너비150m, 최고 높이138m, 돔 지름 외경이 42m 내경이 41.5m이다. 성당은 테베레 강 방향이며, 로마의 지평선을 압도하는 전통적인 돔 양식이다. 또한 바티칸 영토를 포함하여 2.3헥타르(5.7에이커)의 넓이를 가졌다. 그리고 최대 6만 명 이상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당 내부에는 500개에 달하는 기둥과 400개가 넘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따로 분리된 44개의 제대와 10개의 돔이 있으며, 1300개에 달하는 모자이크 그림들이 벽면에 장식되어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그 종교성과 역사성, 예술성 때문에 세계적인 순례 장소로 유명하다. 르네상스부터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계의 거장들이 주임 건축가 직책을 계승하면서 120년에 걸쳐 지은 건축 작품으로서 당대의 가장 거대한 건물로 여겨진다. 로마의 모든 초창기 성당들처럼 성 베드로 대성당 역시 입구가 동쪽에 있으며 후진(後陣)은 서쪽 끝에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성모 마리아 대성당(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성 밖의 성 바오르 대성당(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과 더불어 로마의 주요 4대 성전 중 하나이다. 이곳은 바티칸 시국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며, 대성당의 돔은 로마식 지평선의 특징을 갖고 있다.
성 베드로의 시신이 대성당의 제대 아래에 묻혀 있는 까닭에 옛날부터 교황이 선종하면 그 시신을 제대 아래에 안치해오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나중에 로마의 최초의 교황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낡은 콘스탄티노 대성당을 헐고 새로 지은 지금의 대성당이다. 이곳 대성당은 위치가 바티칸 시국 벽 안에 있고 교황의 주거지와 인접해 있을뿐더러, 교황이 집전하는 대부분 의식이 열리는 장소가 이곳이기 때문에 교황의 가장 중요한 성당으로 여겨진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라틴어로는 “페트루스(Petrus)”이며 그리스어로는 “페트로스(Petros)”인데, 그리스어로 “돌” 또는 “바위”를 뜻하는 “페트라(petra)”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마태오 복음서 16장 18절에서 예수가 베드로에게 한 말에서 기인한 말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성 베드로는 머리를 아래로 두고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역 십자가형의 순교로 전해진다.
2-2.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은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 또는 ‘라테라노 대성당’이라고도 한다.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4세기 초 로마 최초의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으로 지어졌다. 이 성당이 로마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이유는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4년 이곳에서 기독교를 처음 공인했으며, 당시 이 성당은 로마 교황에게 기증되면서 최초의 교황청이 되었다.
1309년 아비뇽으로 교황청을 옮기기 전까지 이 근처의 라테라노 궁전이 교황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이 성당이 교황의 본거지였다. 내부에는 베드로와 바오로의 흉상이 있으며, 흉상 왼쪽에는 성 베드로가 미사를 하던 테이블이 있고, 제단 밑에는 마르티노 7세 교황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보로미니가 설계한 열두 제자들의 대리석상도 있다. 성당의 입구로 나와 정면을 바라보면 성당을 향하고 있는 성 프란체스코 동상을 만나게 된다.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은 로마 교구의 대성당이자 로마교구 교구장인 교황의 좌(座)가 있는 대성당이다. 대성당의 공식 이름은 “라테라노의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와 성 요한 세례자와 성 요한 복음사가 대성당”이다. 첫째가는 지위를 가졌으며,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전 세계 모든 성당의 어머니로 대접받고 있다.
정면 외관에는 ‘구세주 그리스도(Christo Salvatore)’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모든 총대주교좌 성당을 대표해서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 그리스도에게 봉헌되었다. 교황좌(Cathedra Romana)가 있는 로마 교구 주교좌 성당으로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다른 어떤 성당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조차 예외는 아니다.
대성당은 바티칸 시국 영토 안에 있지 않은데, 대성당이 있는 토지는 이탈리아 공화국의 로마 시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다른 몇몇 건물의 경우처럼 라테란 조약의 체결과 함께 로마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성좌의 자산으로서 특별한 치외법권 상태를 누리고 있다.
대성당 건물은 황실 기병 근위대의 요새인 카스트라 노바 에퀴툼 싱굴라리움의 유적 바로 위에 세워져 있다. 요새는 서기 19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설립하였으나,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막센티우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나자 근위대는 폐지되고 요새는 헐려 버렸다. 요새의 기본적인 유적은 대성당 중랑(中廊) 바로 아래쪽에 일직선으로 그대로 있다.
라테라노 궁전은 콘스탄티누스 1세가 막센티우스의 누이인 파우스타와 재혼할 때 황제의 수중에 떨어졌다. 당시 ‘파우스타의 집(Domus Faustae)’로서 알려진 라테라노 궁전은 궁극적으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로마 주교에게 넘어갔다. 대성당을 헌납받은 정확한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자들은 교황 멜키아데의 재위 중 313년 도나투스파에 대항하고자 주교회의를 소집하여 그들을 이단으로 선언한 시기였을 것으로 믿고 있다.
궁전에 딸린 대성당은 개축과 확장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로마 주교로서의 교황좌가 있는 로마의 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대성당의 으뜸 직을 반영하고자 중앙 입구에는 라틴어로 ‘전 세계 모든 성당의 어머니이자 머리인 지극히 거룩한 라테라노 성당(Sacrosancta Lateranensis ecclesia omnium urbis et orbis ecclesiarum mater et caput)’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은 두 번에 걸쳐 다시 봉헌되었다. 10세기에 교황 세르지오 3세는 대성당의 세례당을 새로이 축성하면서 이곳을 성 요한 세례자에게 봉헌하였다. 12세기에 교황 루치오 2세는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을 다시 성 요한 복음사가에게 봉헌하였다. 성 요한 세례자와 성 요한 복음사가는 주교좌 성당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간주하지만, 역시 최고의 수호자는 대성당의 입구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구세주 그리스도이다. 때때로 대성당은 공식적인 이름인 ‘라테라노의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와 성 요한 세례자와 성 요한 복음사가 대성당’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대성당은 두 요한 성인의 영광을 기리는 가장 중요한 성당이 되었지만, 공동으로 공경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중에 라테라노 궁전에는 두 요한 성인에 대한 신심으로서 봉헌된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설립되어 대성당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하였다.
교황 멜키아테 시대부터 프랑스인 교황 클레멘스 5세 시대에 교황청이 1309년 아비뇽으로 옮겨져 아비뇽이 프랑스 영토 안에 둘러싸인 교황의 영지가 될 때까지 모든 교황은 라테라노 궁전에 거주하였다. 아비뇽 유수 동안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은 그대로 방치되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307년과 이후 1361년에 일어난 두 차례의 화재로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은 크게 손상되었다. 양쪽의 사례에서 아비뇽에 있던 교황들은 재건과 유지비용 명목으로 로마에 있는 주교들에게 자금을 전달하였다. 그러한 조처가 내려졌음에도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은 과거의 화려함을 상실하였다.
아비뇽 교황 시대를 완전히 끝내고 교황이 로마로 돌아오고서,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은 그동안 축적된 손상을 고려해볼 때, 교황이 거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교황들은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을, 나중에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임시 관저로 삼아 거주하였다. 최종적으로는 바티칸에 궁전을 건설하여 교황청을 그곳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오늘날까지 교황은 바티칸에 거주하고 있다. 라테라노 궁전은 또한 5차례에 걸쳐 세계 공의회인 라테란 공의회가 개최된 장소이기도 하다.
2-3.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은 일명 ‘성모 마리아 대성당’, ‘성모 대성당’ 또는 ‘성모 설지전(聖母雪地殿)’이라고도 부른다. 이 대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로마 최고(最古)의 성당이다. 위치는 테르미니 역에서 도보 5분에 있다.
‘눈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당에는 눈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325년 교황 리베리우스의 꿈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눈이 내리는 곳에 성당을 건축하라고 계시를 내렸는데, 8월의 한여름이었음에도 실제로 에스퀼리노 언덕 부근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이에 교황 리베리우스는 당장 그곳에 성당을 지으라고 명령을 했는데, 실제로 성당이 건축을 시작한 때는 431년이다.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로마의 4대 성당 중 하나다.
성당의 화려한 정면부는 1743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며, 성당 위의 종탑은 중세를 통틀어 가장 높은 75m의 높이를 자랑한다. 성당 내부에는 미켈란젤로가 만든 예배당이 있어면, 천장에 도금으로 된 격자무늬 장식은 르네상스의 건축가 줄리아노(Giuliano)가 만든 것이다. 이 격자무늬 장식의 금은 바로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유럽으로 처음 가져온 금이며 그 금을 교황 알렉산드로 6세에게 기증한 것으로 이를 녹여 금으로 장식했다.
내부에 들어서면 벽면에 36개의 화려한 모자이크가 있는데, 이는 5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제작된 모세, 이삭, 야곱, 아브라함의 에피소드와 성모 마리아 대관식을 묘사한 장대한 모자이크가 있다. 또한 천장과 벽면에는 성모 마리아가 그려져 있다.
내부에 총 36개의 기둥들은 이오니아식으로 전부 그리스에서 직접 공수해 온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기둥 위에 있는 모자이크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그린 것이다. 성당의 뒤쪽, 에스퀼리노 광장(Esquilino)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식스투스 5세가 1587년에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성당 앞 분수대에 있는 부조물은 포로 로마노에 있는 막센티우스 공회당에 있는 기둥을 1600년 초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은 1348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말미암아 손상을 입고 여러 번에 걸쳐 추가적인 건설 작업을 거쳤음에도 원래의 구조를 보존한 로마에서 유일한 대성당이다. 대성당의 이름인 ‘Maggiore’(마조레)는 ‘위대함’과 ‘주요한’이라는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로마의 성당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성당이라는 의미도 있다.
아비뇽 교황 시대를 공식적으로 마감하고 교황좌가 로마로 복귀하고서, 라테라노 궁전의 상태가 악화하였기 때문에 대성당이 교황의 임시 관저가 되었다. 교황의 관저는 나중에 지금의 바티칸 시국에 있는 바티칸 궁전으로 옮겨졌다.
2-4. 성 밖 성 바오로 대성당
성 밖 성 바오로 대성당인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당은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이라고도 한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주도하에, 서기 64~67년경 지금의 트라 폰타네 지역에서 처형된 바오로의 유해를 비밀리에 수습해 매장한 장소위에 세워졌다. 386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 치세에 중랑(中廊)과 더불어 네 개의 측랑(側廊)과 익랑(翼廊)이 추가되면서 대성당을 좀 더 크고 아름다운 대성당이 지어졌다.
5세기까지 이곳 대성당은 옛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규모가 더 컸다.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은 5세기 오스티아의 순교자들이었던 성 타우리노와 성 헤르쿨라노에게도 봉헌되었으며, ‘세분주님 대성당’이라는 뜻의 ‘트리움 도미노룸 대성당(basilica trium Dominorum)’이라고 불렸다.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 치세에 대성당은 다시 광범위하게 수정되었다. 성 바오로의 무덤 위를 일직선으로 덮은 제대를 한층 높여 치장하였다. 무덤 위에 세워진 제대로 말미암아 성 바오로의 무덤에 접근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 기간에 대성당 근처에 성 아리스토 수도원과 성 스테파노 수녀원 등 수도원 두 곳이 생겼다.
기존의 신랑에 네 개의 측랑과 익랑이 추가되고 포로 로마노에서 가져온 원기둥 24개를 포함한 80개의 원기둥을 내부에 세웠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성당이 되었습니다.
성당 내부는 성당 신랑을 이루는 열주랑 위쪽 프리즈(Frieze)에는 초대 교황 베드로부터 교황 프란치스코에 이르는 역대 교황 266명의 원형 모자이크 초상화(Medallion)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그려져 있습니다.
1980년 로마 역사 지구로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대성당은 전세계 10대 성당에 들어간다. 레오 12세는 교황에 즉위하자 곧 바오로 대성당의 재건을 위해 전 세계 교회에 특별 요청을 하였다. 그 당시 이름 있던 건축가 벨리, 폴레티, 베스피냐니, 칼데리니 등이 참여하여 원래 대성당의 설계도대로 복원하였고, 1854년에 교황 비오 9세가 축성하였다.
회랑의 72개의 기둥은 그리스도가 파견한 최초의 72제자와 옛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상징하고,
정면 12개의 기둥은 열두 제자와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 성당 입구에 대칭을 이루는 회랑의 가운데 천장에는 열두제자의 초상화가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다. 정원의 네 그루의 야자수 나무는 4대 복음사가를 상징하며 정원 중앙에는 "이방인의 아버지, 진리의 설교자, 사도 바오로"라고 적힌 받침대 위에 칼과 성서을 든 사도 바오로의 조각상이 있다.
‘산 피에트로 인 바타카노 대성당’ 앞의 베드로 상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당의 칼과 성서을 든 사도 바오로의 조각상
성 베트로 성당 내 조각상
성 베트로 성당 내 피에타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