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중앙시험소, 예술가의집, 옛 샘터사옥...대학로 건축물 탐방
대학로는 ‘대학교 거리’란 뜻이다.
대학로는 당시 유일한 대학이던 경성제국대학 캠퍼스가 있던 연건동과 동숭동 사잇길을 뜻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식민 통치에 필요한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고등교육기관을 세웠다.
우선, 경모궁이 있던 연건동에는 경성제국대학 의과대학이 들어섰다.
그 맞은편 동숭동에는 법학부 캠퍼스가 생겼다.
광복 후 경성제국대학의 각 학부는 물론 경성경제전문학교, 경성치과전문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 경성광산전문학교, 경성사범학교, 경성공업전문학교, 경성여자사범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 등의 전문학교들을 통합해 서울대학교가 됐다.
현재의 마로니에공원 주변에는 법대, 문리대, 미술대 캠퍼스가 자리했다(이·공과대는 공릉동 현재 서울과기대 자리).
1975년 서울대학교가 지금의 관악구로 옮겨지면서 그 자리는 마로니에 공원이 됐다.
1985년 5월에는 이화사거리부터 혜화로터리까지 폭 40m 6차선의 길이 1.2km의 구간을 '문화예술의 거리'로 조성하면서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대학로'라는 거리 명칭이 통용됐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서울대사범대부설초등학교로 간다.
700m쯤 떨어져 있다.
서울대 법대가 있던 자리다.
서울대가 지금의 관악구로 옮겨간 후 초등학교가 이 자리로 옮겨왔다.
초등학교 교문 양쪽 2개씩의 기둥은 원래 탑골공원 대문기둥이었다.
1969년 3.1절 50주년을 기념해 서울시가 이 기둥 4개를 서울대 법대 교문 기둥으로 기증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혜화역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고풍스러운 하얀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옛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다.
얼핏 돌 건물처렴 보이지만, 건물의 자재는 목재다.
외벽은 목재를 비늘처럼 수평으로 포개 올려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마감한 비늘판벽이다.
좌우 양측 돌출부의 1, 2층 상부에는 큰 반원 아치를 두 개의 기둥으로 나눈 디오크레티안 창(Dioclentian window)을 냈다.
대한제국 시절 목조 건물로는 유일하게 그 원형이 유지돼 있다,
내부 역시 전부 목조로 돼 있다.
복도를 지날 때나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디디면 삐거덕삐거덕 하는 추억의 소리가 난다.
이 터에는 공업전습소가 있었다.
대한제국이 1906년 세운 근대 기술학교였다.
토목, 목공, 응용 화학, 금속 세공, 염직, 도기 등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 이뤄졌다.
그러나, 한일강제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의 중앙시험소로 개편됐고, 조선총독부는 1914년 건물을 새로 지었다.
그리고 중앙시험소는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로 승격됐다.
현재는 한국방송통신대학 별관으로 쓰이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본관이 있는 자리에는 경성공업전문학교(경성공업고등학교 전신)가 있었다.
1916년 설립한 이 학교는 경성의 근대건축을 탄생시킨 요람이다.
건축과와 토목과 출신의 조선인은 총독부 산하 설계조직에 취직할 수 있었다.
이 학교가 낳은 최초이자 최고의 근대건축가가 박길룡이다.
그는 1919년 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와 경성제국대학 신축공사에 실무자로 참여했다.
조선인 최초로 건축기사가 된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설계한 가장 유명한 건물은 1937년 지금의 종로타워 자리에 세운 화신백화점이었다.
시인 겸 소설가인 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은 경성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총독부에 근무하면서 밤에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조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등의 시에 사용한 제목과 기수, 형식 등도 건축가 시절에서 기인했다.
마로니에 공원 남쪽 '예술가의 집'으로 향한다.
예술가들의 창작과 교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1930년에 착공돼 이듬해 준공됐다.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본관이었고, 광복 이후부터 1972년까지 27년간 서울대 본관으로 사용됐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유행했던 양식을 두루 갖췄다.
옛 경성재판소(현재 서울시립미술관)를 연상시킨다.
외벽은 옅은 갈색의 스크래치타일로 마감됐다.
중앙 출입구 포치(Porch) 3개면에는 각각 커다란 아치형 출입구를 뒀고, 출입구 주변 벽면은 부드러운 곡면으로 처리해 우아한 인상을 준다.
박길룡이 설계했다.
덕수궁 언덕에 자리한 옛
1층 라운지에서 차 한 잔 하면서 쉬어가기 좋다.
대학로의 건축물에 두드러지는 건축 자재 중 하나는 붉은 벽돌이다.
마로니에 공원 안의 아르코미술관과 아르코예술극장, 그리고 옛 샘터사옥이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모두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의 작품이다.
김수근은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정의할 정도로 벽돌예찬론자였다.
아르코(ARCO)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영문 명칭(Arts Council Korea)을 줄인 것이다.
이 일대는 서울대 문리대가 있던 곳이다.
1960년 4.19혁명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당초엔 아파트가 들어설 뻔했다.
서울대 문리대의 관악캠퍼스로 이전이 확정되자 대한주택공사가 땅 주인이 됐고, 주택공사는 1973년 이 부지에 아파트 건립 계획을 세웠다.
대학본부(현 예술가의 집)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중앙도서관은 슈퍼마켓으로 각각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김재순 전 국회의장, 건축가 김수근 등 지식인들은 반대했다.
정부는 마로니에 공원을 조성하는 대신 문리대와 사범대 부지 일부를 일반에게 택지로 팔았다.
김수근은 사비를 털어 일부를 샀고 이를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기증했다.
대신 극장과 미술관 두 곳의 설계를 직접 맡았다.
샘터사 창업주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일부를 매입했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서울대 대학본부(현 예술가의 집)를 매입했다.
'서울대학교 유지 기념비'가 이 곳에 있던 옛 서울대 캠퍼스의 모습을 대변해준다.
공원 한쪽 구석에는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전지고, 혼자서 일경 400여명과 시가전을 벌이다 자결, 순국한 김상옥(金相玉) 의사의 동상이 있다.
'고산 윤선도 생가 터'를 알리는 표지석도 있다.
고산은 8세 때인 1594년(선조 27년)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의 양자가 돼 해남 윤씨의 대종(大宗)을 잇는다.
고산은 명례방(지금의 명동)에서 살다가 25세에 처음 해남 종가를 찾았다고 한다.
명동성당 맞은편 YWCA 건물 바로 옆에는 고산의 집터를 알려주는 표지석이 또 하나 서 있다.
옛 샘터 사옥은 1979년 완공됐다.
공공영역에 대한 건축주의 배려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가령, 1층은 필로티 형식으로 비어 있는 공간이 있는데, 대로변과 이면 도로를 이어준다.
길을 가는 사람들은 이 공간을 통로 삼아 대학로의 안과 밖을 드나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갑작스럽게 비를 피할 수 있다.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는 담쟁이넝쿨도 매력적이다.
준공과 동시에 심어진 담쟁이넝쿨은 무더운 여름날는 단열재로 작용하고, 오래된 벽돌 건축물이 주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샘터>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잡지’를 표방하며 1970년 4월 창간됐다.
작가 피천득, 최인호,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장영희 교수 등이 장기간 기고한 연재물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최인호는 자전적 소설 <가족>을 1975년부터 34년간 연재했었다.
샘터사를 창립한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별세한 뒤 상속세 부담이 커지면서 매물로 나왔다.
2018년 공공그라운드 회사에 인수된 이후에도 ‘중앙광장을 열어놓고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는 가치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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