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의 기쁨(조현)
공명이 되니 참 좋다. 자립지지공동체와 김미령 대표에 대한 마음 말이다. 어제 밤 늦게 귀가해 페북에 기사링크를 걸어 올리고, 아침 출근길에 페북에 들어가 보니, 너무도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고, 공유를 해주어 깜짝 놀랐다. 특히 미국 시애틀에 산다는 ‘Kay Lee’라는 분은 “어떻게 미국에서 후원할 수 있는지” 물어주셨다.
지난 주 수유일 달동네에 가서 자립지지공동체를 취재하고 난 뒤 마음이 아렸다. 성매매 여성들인 ‘이모’들과 그들이 버리고 간 아이들까지 12명을 돌보는 김미령 대표와 만남은 통상 두 시간 정도의 인터뷰가 아니라 7시간에 걸친 마라톤 대화였다. 아마 그도 힘든 여정을 걸어오며 담아뒀던 것을 풀어내야 했고, 내가 모처럼 만난 임자였는지 모른다. 그 많은 식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야채 가게에서 버리는 야채들을 가져다 다듬어 반찬을 만들고, 과일도 상하기 직전 떨이만 사다 먹는단다. 더구나 새로 공동체에 들어온 성매매 여성들은 다른 ‘이모들’의 침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늘 김 대표의 침대에 눕는다고 한다. 그는 서울집에서나 경기도집에서도 그래서 침낭 속에 들어가 쪽잠을 잔다. 그러니 그가 강한 것들과 싸우며 이토록 연약한 이들을 돌보면서, 아나키스트 전사가 되었을 것이다.
한참 인터뷰를 하던 중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인사를 하는데, 얼마나 눈이 맑고 초롱초롱한지. 그 아이의 눈이 너무 순수해서 슬펐다. 과연 저 아이가 자신의 태생에 대해 알고도 이 편견에 가득찬 세상을 살아낼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저 아이를 지켜줄 수 있을까. 이런 인터뷰가 나가서 언젠가는 저 아이가 이걸 볼 수도 있을 텐데, 설사 지역과 이름을 밝히지는 않아도 이를 알고 괴로워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들로 인터뷰 후에도 마음이 심란했다. 내 딸 아이보다 한 살 적은 그 아이의 눈망울이 떠올라 마음은 애잔했다.
그곳은 공식 사회복지시설이 아니어서 세금 감면을 받을 수도 없어 후원금도 거의 없이 김 대표가 성매매금지법 위반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비로 부족한 생활비를 겨우 겨우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실은 세 달 전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를 출간한 뒤 여기 저기 강연 요청이 많아 강연비를 받았다. 강연비 계좌를 따로 마련했는데, 아직 강연한 곳에서 모두 돈을 보낸 건 아니지만, 보낼 것까지 대략 5백만원이 될 거 같다.
인세를 미리 받아 해외 취재비로 썼으니 아직 인세를 받진 못하지만 강연비로 월급 외 여윳돈이 생긴 것이다. ‘수 년간 이 책에 들인 노고는 차치하고라도 출간 후 몇 달간 개발에 땀이 나도록 뛰며 강연을 했는데 서울에 땅 한평도 살 수 없는, 겨우 이 돈’이란 생각도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이 비록 내 손으로 쓰여지긴 했지만, 취재에 호응해준 마을공동체들과 내밀한 이야기까지 아낌없이 들려주고 고백해준 300여명의 취재원들의 은혜로 쓰여진 것임을 생각하면 이건 내 것일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천의 달동네에 민들레국수집을 열어 노숙인들에게 국수와 밥을 무료로 주는, 가톨릭 수사 출신의 서영남 선생님은 수도원에서 나올 때 수중에 300여만원의 돈이 전 재산이었다고 했다. 노후 보장은 커녕 어디 가서 전셋방 하나 얻을 수도 없는 돈이었다. 혼자 쓰기에도 너무도 적은 돈. 그는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나눠보자. 그래서 그 돈으로 국수를 끓여 나눠준 것이 민들레국수집의 시작이 되었고, 수많은 배고픈 이들에게 오늘도 국수와 밥을 먹여주고 있다. 몇 년 전 인터뷰 때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이런 건 배워서 남줘야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김 대표의 인터뷰를 하고, ‘자립지지공동체의 아이 눈망울’을 보니 돌연 그 생각이 났다.
‘강연비를 모아서 여행비나 술값으로 쓰고 말건데. 더구나 수십 개 독서동아리에서 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해준다니, 그것만으로 족하다. 더구나 내 책엔 서로 마음을 열고 나눠보면 적은 것으로도 얼마나 성찬이 되고,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지, 오병이어의 실제적인 사례들로 즐비한데 거기에 나도 사례 하나를 더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김미령 대표에게 우선 200만원을 보냈다. 그리고 같은 날 중관학당 신상환 대표, 생태마을공동체네트워크, 터무늬있는집에도 100만원씩을 보냈다. 신상환 교수(www.facebook.com/sanghwhan.shin)는 전남 광양 고향의 산골 컨테이너 안에서 용수의 저작들을 번역하고 있다. 1980년대 핵심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동지들이 임종석 비서실장을 비롯해 한자리씩 하는데, 인도 타고르가 설립한 대학 교수직도 버리고 낙향해 산골 컨테이너에서 역경하며 조그만 집이라도 짓고 싶어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거니와 그가 하는 역경이 한국 불교뿐 아니라 한국 종교계와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를 지녔다고 보기에 응원해주고 싶어서였다. ‘제2의 붓다’라는 용수의 사상에 대해 신상환 박사는 “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空)을 연기(緣起)로 봐야 나와 너가 다름 없게 된다. 즉 자기한테만 좋은 게 아니라 남한테도 좋은 게 공덕이고, 이를 명확히 아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오직 남을 속이고 해쳐서라도 나만 살고보자는 이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각자도생의 현세에서 이런 깨달음이 더욱 절실한 것이다.
또 한국생태마을공동체네트워크는 임진철 청미래재단 이사장(www.facebook.com/gillbutt21)과 황대권 선생님, 정은 선생님 등의 주도로 마을과 공동체로 살거나 관심을 가진 이들을 한데 묶어 매년 축제도 하고, 정보도 교류하며 모래알이 되어버린 한국인과 한국사회에서 다시 대동사회의 싹을 틔우려 노력하고 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이니만큼 정부의 후원을 받는다면 얼마든지 운영이 수월할 터지만 자발적인 모임 유지를 위해 십시일반으로 잔치와 모임을 열며 지탱하기에 이 규모와 달리 재정은 늘 마이너스를 면치 못하고 있는 사정이다.
터무늬있는집(https://themuni.co.kr/)은 어른들이 돈을 출자한 돈을 모아 집을 임대해 청년들에게 빌려주는 사업이다. 이번 서울고시원 화재 사건이 말해주듯 청년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문제에 대해 나를 비롯해 이 나라 어른들의 상당수는 공범이란 생각이 든다. 터무니있는집은 몇 년 후 출자금을 돌려준다는데도 2억원밖에 모이지 않아 안타가워하는 페친 김수동 선생님의 글을 보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4곳 모두 마음을 내시는 분들이 십시일반 해주면 좋을 곳들이다.
핸드폰으로 돈을 이체하니 한순간에 통장 잔고는 비었지만 의외로 가슴이 차올랐다. 얼마 안되는 액수를 나누었을 뿐인데 부자가 된듯 충족감이 들었다. 그런에 오늘 아침 페북에서 멀리 미국에서까지 동참하겠다며 공명해주는 분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말 내가 이끈 한겨레테마 인도여행에 참석한 브라질 교포 박경희 선생님도 방금 후원금으로 200만원을 보내고 매달 후원금을 보내겠다고 연락이 왔다.
또 휴심점 필자인 소백산 산위의마을 촌장 박기호 신부는 자립지지공동체 아이들 두 명을 산의의마을 산촌유학을 받아 길러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도 산위의마을엔 서울에서 늘 몇 명이 1-2년 정도 산촌 유학을 와서 전윈 속에서 힐링하고 있다. 역시 휴심정 필자인 땅끝 전남 해남 일지암 암주 법인 스님은 김장철이 되면 아랫마을 농가에 울력을 해주고 노임 대신 김장을 받는데, 그 김장을 자립지지공동체에 보내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이리 행복할 수가!
취재를 도와주시고, 책을 읽어주시고, 강연에 불러주신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