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좀이 일깨워주는 것(손까리따스 수녀)
군복무를 한 많은 남자들의 적, 무좀과 동상, 우리 아빠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상 치료를 위해 가지나 콩대 삶은 물로 하루도 빠짐없이 아빠의 발을 담가서 씻겨 드리던 엄마의 정성으로 동상은 다 치료되었다. 그 다음은 인류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무좀.... 빙하시대가 지나가도 죽지 않을 생존력을 가진 바퀴벌레와 무좀균, 이 무좀을 치료하기 위해 아빠는 저녁마다 방 한 가득 약상자를 펼쳐 놓고 발가락 사이사이에 이 약, 저 약을 바르셨다. 꽤 오랜 세월을 그렇게 하신 것을 보면 정말 무좀은 지독한 생명력을 가진 것 같다. 난 그래서 세상에 걸리지 말아야 할 귀찮고 혐오스러운 병(?)은 무좀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게 무좀이 찾아왔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청소년기에 여드름도 한 번 안 날 정도로 탄탄한 내 피부를 뚫고 무좀균이 침투한 것이다. 오래 전 성매매여성들과 한 달을 살았었다. 함께 먹고 자고 뒹굴고....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그들 중의 몇 명은 교육 부족이나 사회성결여, 혹은 약물과다 복용으로 인해 일상생활 능력이 좀 어눌하다. 그 중 하나가 화장실을 다녀오고 난 후에 뒷처리가 잘 안 되는 경우이다. 휴지와 거시기를 바닥에 버리거나, 물을 틀어 놓거나, 앞이 막힌 실내화에 물을 그득 채운 채 나오기도 한다. 처음 며칠은 화장실 갈 때마다 실내화에 고인 물로 양말을 푹 적시면서 내심 짜증이 나곤 했는데 아예 나도 양말을 벗어 버리고 들어가니 그 걱정은 사라졌다. 문제는 바로 그 신발이었다. 그 곳에 사는 자매들 대부분이 도저히 손톱깎기로는 가능하지 않은 대작업을 거쳐야만 공사가 한번 끝나는 아주 심각한 무좀의 소유자들이다.
보름이 지나면서 부터 드디어 내 발가락이 살살 가렵기 시작하더니 한 달이 지나면서부터는 물집까지 잡히기 시작했다. 두 달의 삶을 마무리 짓고 공동체로 돌아와서는 난 무좀과의 전쟁을 시작해야 했다. 피부과 병원에 다니고 밤이면 약을 발라 싸매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년이 지나면서부터는 발톱까지 번지면서 오그라들더니 양 옆의 살을 찌르고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발톱을 바싹 잘라내면 한두 달 괜찮아 지다가 다시 살을 후벼 파면서 또 고름이 터지면서 양말을 젖게 한다. 사실 양말이 문제가 아니고 무척 아프다. 두 달에 일주일 정도는 걸음을 엉성하게 걸을 정도로 아프다.
하지만 난 이 무좀을 사랑한다. 그리고 정말 하느님이 내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말로는 봉사의 삶이라고 하지만 사실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생각을 자주 잊게 된다. 나는 내가 얻은 육체의 작은 상처로 인해 결코 그들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 항상 기억하고 사랑하고 기도하라고 주신 상처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종신서원식에 단체로 몰려와서 축하해 주고는 혹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까 하고 얼른 눈인사만 하고 뺑소니치듯 사라져 버린 그 언니들이 보고 싶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언니들의 동네를 지나오니 더 그런가보다. 지금도 나는 내가 그들을 잊지 않게 무좀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가끔 발의 통증이 느껴질때마다 그 언니들을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