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신비 창세기 8장 22절
오늘 파종예배로 함께합니다. 파종예배를 위해 애써주신 초록살림부원 그리고 저와 가까이에 산다는 이유로 매일 아침 나와서 애쓰고 수고하시는 최윤정 집사님, 그리고 손수 이 텃밭을 저희에게 무료로 빌려주셔서 생산과 나눔의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실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김가영님 부모님, 매해 텃밭 살림살이를 위해 후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 이 모든 분들 덕에 땀흘리고 생산하며 나누고 섬겨가는 귀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텃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몇가지 원칙을 지키면서 텃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3무원칙을 지킵니다. 12년째 이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비닐을 치지 않고 왕겨나 낙엽으로 멀칭을 합니다. 생태계 햇볕을 차단하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계가 순환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농약이나 제초제를 뿌려 땅을 죽이지 않습니다. 화학비료를 주어서 작물을 빨리 키우지 않고 바다를 산성화시키려하지 않습니다. 손수 풀을 다 멥니다. 천천히 스로우 푸드로 키워 몸에도 마음에도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합니다. 이 모든 것은 땅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고 순환가능한 방식의 삶에 지속가능한 미래가 있음을 알기에 지속가능하고 순환가능한 삶의 방식을 위해 우리는 흙을 살리고 자연과 함께 하는 친자연적인 텃밭을 일굽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텃밭농사에서도 다양성과 대동세상의 원칙을 지켜갑니다. 어떤 사람은 돈으로 투자하고 어떤 사람은 몸으로 투자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로 투자하고 어떤 사람은 간식으로 투자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구성원들은 텃밭 일 뿐만아니라 다양한 자리에서 서로의 몫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모두를 존중하며 모두를 위해 풍요로운 소산물들을 함께 나눕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은 모두의 것입니다. 결대로 소명대로 일하고 존재하되 그 기쁨은 모두가 함께 누립니다. 우리가 원하는 이상사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텃밭 농사가 돈되는 농사가 되어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교회 안팎을 둘러싸고 다양한 어려움을 돌볼 수 있는 토대를 이룰 수 있다면 결대로 일하면서 그 소산물로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한 마중물로 삼아갈 수 있다면 이 또한 대동세상의 귀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12년, 아니 제가 오기 전부터 동녘은 텃밭 농사를 목회의 중요한 한 차원으로 포기하지 않고 손수 풀을 뽑아가며 흙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 해 동안 텃밭에서 농사를 하다보니 텃밭은 제2의 성서입니다. 텃밭이 주는 교훈은?
텃밭은 삶에 있어서 순환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는 곳입니다. 모래 사막처럼 순환되지 않으면 생명은 없습니다. 저희 텃밭에는 개구리가 있고 뱀이 있고 두더지가 있고 수없이 많은 미생물들이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공존한다는 것은 그 안에서 생명체들이 계속해서 순환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몸도 관계도 소통과 순환이 되어야 회복되고 치유됩니다.
가만히 보면 땅이라는 곳이 그냥 흙이나 땅이 아닙니다. 흙이 오염되면 육지의 생태계가 오염되고 바다의 생태계가 오염되고 먹거리가 오염되게 되고 생활의 터전 아파트 집들이 오염되게 되고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바뀝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그 좋은 예입니다. 그러기에 땅을 살려야 인간을 살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이 텃밭은 내 맘대로 땅을 뒤집어엎을 수 있습니다. 꽃을 심으면 꽃밭이 되고 작물을 심으면 텃밭이 됩니다. 식물도 모양도 계속해서 창조와 변화의 실험을 해나갈 수 있는 곳이어서 변화의 힘을 키워나가는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반면 풀멍, 꽃멍, 흙멍을 하면서 삶의 단순성의 힘을 키워갈 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풀과의 싸움을 통해 삶의 끈질긴 지구력도 배우게 하구요.
공들이고 땀흘리면 생산, 창조의 신비를 맛볼 수 있는 귀한 터전이기도 하구요.
반면 그 어떤 열매도 나의 나됨은 나만의 노력과 공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벌이 없으면, 곤충이 없으면, 햇볕이 없으면, 물이 없으면, 바람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농부가 농사를 지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생산물로 우주의 기운을 돌리는 순환과 나눔의 신비로움을 체험케 하는 장이 되기도 합니다. 나눔은 우주의 기운을 순환시키는 동력입니다. 작은 텃밭에서도 적지 않는 농산물이 나오고 손수 키운 작물을 돈에 들고 누군가를 방문했을 때 대화와 소통과 돌봄의 중요한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땅은 그리고 농사는 삶의 근본을 배우고 하고 성찰하게 하는 제2의 성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2의 성서를 읽고 배우고 성찰하기 위해 땅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본문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함을 보시며 스스로 인간을 심판하신 후 고통당하는 인간의 아픔을 보시면서 다시는 생명을 함부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거두는 때를 더 좋아하고 따스함을 더 선호하며 겨울보다는 여름을 밤보다는 낮의 때를 더 바라며 살아가는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인간의 악함이 뭔가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닐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은 이 양자적인 밸런스를 통해 더 사람다워지고 더 생명다워질 수 있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앙도 때로는 담론을 주도하면서 시대를 선도하면서 목숨바쳐 혁명의 깃발을 던져야할 때가 있고 등뒤에서 안아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따스히 받쳐주어야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전 겨울에 어머님이 넘어지시면서 크게 다치셨었는데 그후 거의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덕에 아버님이 청소를 하시고 집안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가끔식 집안일을 하시기는 하셨지만 언제나 집안일 대부분은 어머님의 독차지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사고가 관계의 질적인 변화를 주셨습니다. 반드시 사고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텃밭 이 땅 자연안에는 삶과 죽음이 일상입니다. 수시로 죽고 수시로 태어납니다. 수시로 돌아가고 수시로 소생합니다. 열매와 성장은 죽음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하고 언제까지 성장하고 열매만 맺을 수 없음도 알게 해줍니다. 더위와 추위의 유익함도 알게 해줍니다. 더위가 없으면 작물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추위가 없으면 절대 겨울을 나야만 자라기 시작하는 양파와 마늘같은 작물은 키울 수가 없습니다. 텃밭은 해의 소중함도 알게 하지만 비의 소중함도 알게 해줍니다. 삶에 있어서 슬픔과 기쁨, 여름과 겨울, 음과 양, 고통과 행복,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우리의 삶을 완성시켜가는 삶의 중요한 것들임을 알게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삶의 양 극단처럼 보이게하는 것들의 저마다의 소중한 것들을 보게하는 힘을 배우게 하기도 합니다.
땅은 텃밭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곳입니다. 낮과 밤, 추위와 더위, 비움과 채움, 성장과 비움, 수확과 나눔, 삶과 죽음, 씨앗과 열매 이 모든 공존의 신비를 보게하는 성서입니다. 제2의 경전을 삶으로 읽어가며 한 해 동안도 더 생명다워지고 더욱더 사람 냄새나는 사람다워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