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들이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아오던 솔숲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아파트는 몇 천 가구나 되는 대단지 아파트로 솔숲의 일부는 살아남고 일부는 잘려 나갔습니다. 불행히도 나는 잘려나간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전기톱이 내 몸을 사정없이 자르던 날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합니다.
그날은 아침 안개가 엄마처럼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던 날입니다. 나는 안개에 얼굴을 묻고 먼 길을 떠나는 달팽이 한 마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달팽이는 솔숲에서 나와 오솔길을 천천히 가고 있었고 그 뒤로 안개가 뒤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달팽이가 기어가던 그 길로 안개가 걷히고 아침 했살이 눈부시게 빛나자 장정 몇 명이 솔숲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손에 삽을 들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손에 전기톱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숲에 들어오자마자 곧 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손에 삽을 든 사람은 나무들을 어디론가 옮겨 심으려고 조심스럽게 땅을 팠으며, 손에 전기톱을 들고 있는 사람은 사정없이 나무들의 밑동을 잘라버렸습니다."웨에엥"하는 톱소리가 나자마자 여기저기서 내 사랑하는 벗들이 쓰러져갔습니다.
나는 전기톱을 든 사내가 내 곁에 다가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전기톱을 든 사내가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내 밑동을 잘라버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순식간의 일이였습니다. 나는 너무 아파 비명도 지르지 못했습니다.혹시 다른곳으로 옮겨지지는 않을까 하고 기대한 나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쓰러진 채 숨을 몰아쉬면서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저기 여러 벗들이 쓰러져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곧고 늠름하게 일직선으로 잘 자란 나무들이였습니다. 몸통이 휘어지고 구부러진 나무들은 어디로 옮겨심게 되는지 실뿌리까지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평소에 곧게 쭉 뻗은 내 몸매를 자랑한 일이 후회되었습니다.구불구불 몸매가 굽은 못생긴 벗들을 놀리고 얕잡아 보았던 일 또한 후회되었습니다. 굽은 나무가 살아남을 줄 알았더라면 일부러 허리를 부러트려서라도 굽은 나무가 되었을 것을 이제 아무리 후회해봐도 소용없는 일이였습니다.
나는 곧 전기톱에 몇 토막으로 잘린 통나무가 되어 어디론가 떠나갔습니다.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트럭에 실려 몇날 며칠 걸려 도착한 곳은 넓은 도시에 있는 재재소 였습니다.그곳은 나무들의 도살장이었습니다. 나무들의 몸을 얇게 혹은 굵게 갖가지 모얀으로 나누고 쪼개는 곳이였습니다. 나무들은 모두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운명인 양 재재소 톱날 아래 자신의 몸을 누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재재소에 가자마자 마당 한구석에 쳐박혀 몇 년을 보냈습니다. 다른 통나무들과 함께 10여 미터나 되는 높이로 높게 쌓여 있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내가 가장 맨위에 올려져 있어 비가 오면 그대로 비를 맞고, 눈이 오면 그대로 눈을 맞았습니다. 한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에 몸이 말라 삐틀어지는 것 같았으며, 추운 겨을날에는 온몸이 얼음덩이처럼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참고 지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간혹 밤하늘의 별들에게 이것이 어쩔 수없는 나의 운명이라면 하루 속히 재재소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별들은 따뜻한 별빛을 반짝거리며 참고 기다리라고 말할 뿐이였습니다.
그런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나와함께 있던 통나무들이 하나 둘 다른데로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더러는 판자처럼 몸이 납작하게 잘리기도 하고 더러는 막대기처럼 몸이 토막토막 나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나만 떠나지 못하고 재재소 바닥에 그대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거은 "이 녀석은 그대로 둬!"하는 재재소 주인의 말 한마디 때문이였습니다. 나는 재재소 주인이 왜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몇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속으로 무척 단단해졌습니다. 내가 무엇이 되기 위하여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만, 고통을 참고 견디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단단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그러던 어느해 가을이였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히 내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으음, 이게 좋겠군.아주 좋겠어"하는 사람들의 못소리가 들리더니 나는 곧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게 되었습니다.내가 간곳은 서을 종로에 있는 보신각이였습니다. 보신각엔 조선시대 때부터 사용해오던 종이 균열이 심해 새로 만든 종을 덩그렇게 매달아 놓고 있었습니다.
내가 멍하니 종를 쳐다보고 있자 사람들이 다가와 내 몸에 쇠줄을 걸 수 있는 고리판을 단단히 씌우고 그 고리에 긴 쇠줄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내 몸을 번쩍 들어올려 종각의 천정에 매달았는데, 그때 비로소 나는 무엇이 된 줄 알았습니다. 난는 종을 칠때 사용되는 나무 봉일 종메가 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린아이인 양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나는 하루속히 힘껏 한 번 종를 쳐보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12월31일 제야의 밤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신각 주이로 몰려 들었습니다. 새해가 시작하는 0시가 되자 흰 장갑을 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새해를 시작하는 0시가 되자 흰 장갑을 낀 서울 시장이 처음으로 힘껏 종을 쳤습니다.
아, 새해의 밤하늘에 참으로 아름다운 종소리 울려퍼졌습니다.그러나 종소리응 아름다었지만 나는 참으로 아팠습니다.더군다나 미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연이어 종신에 내 몸을 부딪쳐야만 했습니다. 서른 세 번 종을 칠 때마다 나는 거의 까무라치듯 했습니다만 아무도 내 아픔을 아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후, 나는 새해가 다가오는 일이 두려웠습니다. 두려움 가운데서 새해를 맞고 내 몸이 으스러지도록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내 은 온통 상처 투성이였습니다. 어디 한군데 멍들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나는 만신창이가 된 나 자신이 너무나 불쌍해 이제 더 이상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거야. 이대로 버려져 썩어버려도 좋아.
나는 그런 결심을 하고 바람이 불어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보신각 종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종메야. 네가 그런 결심을 하면 되니."
나는 못들은 척 가만히 있었습니다.
"종메야. 그러지마. 네가 그러면 종소리를 낼 수가 없어."
"내 몸을 좀 봐. 온통 상처투성이야. 한 번씩 종을 울릴 때마다 나는 거의 초죽음이 돼. 난 이제 그러기는 싫어."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신각 종에게 말했습니다.
"종제야, 너만 아픈 게 아니야. 넌 왜너의 아픔만 생각하니? 네 몸이 내게 부딪치면 나도 아파."
"너도 아프다고?"
"그래,나도 아파. 네가 한 번씩 내게 부딪칠 때마다 나도 온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느껴."
나는 보신각 종이 자기도 아프다는 말에 깜작 놀랐습니다. 나는 종을 칠 때마다 나만 아픈 줄 알았지 나 때문에 종이 아플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신각 종의 말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우린 서로 함께 아프면서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는거야.우리가 아프지 않으면 아름다운 종소리를 낼 수가 없어. 이 세상의 모든 종소리는 모두 너와 나의 고통에서 비롯되는 거야. 고통 없이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 있겠니."
나는 보신각종이 말을 듣자 나의 아픔만 생각한 나 자신이 무척 부끄러워졌습니다.
"미안하다. 나의 아픔이 곧 너의 아픔이구나. 우리가 서로 한 몸인 줄을 잘 몰랐구나."
"괜찮아,실은 나도 너때문에 내가 아프다고 생각하 적이 있었어. 서로 한 몸인 줄 모르고 널 원망한거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다 종이 되려고만 해. 다들 종이 된다면 니 세상에 종소리는 존재할 수없는데도 말이야."
"맞아, 나 같은 종메가 있어야 이 세상에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나자 나는 나 자신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온 몸에 멍이 들면서 종이나 치는 신세가 되었다고 원망했던 날들이 후회스러웠습니다.
"맞아, 나같은 종메가 있어야 이 세상에 종소리가 울려퍼지는거야."
나는 그제서야 내가 왜 전기톱에 온몸이 잘린 채 숲속을 떠나오게 되었는지, 왜 재재소 뒷마당에 나 혼자 외롭게 쳐박혀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힘껏 종소리를 울렸습니다. 이제 그 어떤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을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