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빨래 집게가 / 박용하 집을 수 있는 것은 잡을 수 있는 것이고 자주 잡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애용할 수 있는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애용할 수 있는 것은 사고 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칼이 그렇고 방아쇠가 그렇고 버튼이 그렇고 핸들이 그렇고 돈이 그렇고 음경이 그렇다 사고치지 않으려면 손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예부터 사고치는 인간의 손을 먼저 압수하지 않던가 포승줄과 수갑으로도 모자라 심지어 지구의 어떤 곳에서는 아예 손을 작두로 잘라 버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건 너무 하지 않는가 손 없이 국수를 삶으란 말인가 손 없이 맥주를 마시란 말인가 손 없이 사랑하라는 말인가 집히는 것은 잡히는 것이고 잡히는 것은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바람과 구름이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바람과 구름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으니까 빨래 건조대에서 햇빛이 바래진 채 바람에 조금씩 좌우로 앙증맞게 흔들리는 저 빈 집게는 무엇을 집거나 잡기 위한 의욕의 과잉으로부터 한 발 옆으로 벗어나 있지 않은가 어쩌다 아이 속옷이라도 잡고 있는 날은 이 세상 가장 눈부신 광경에 속한다 내 손은 얼마나 희고 깨끗한가 하찮은 빨래 집게가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