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의 후예들, 괄목상대(기원섭)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국어사전적 풀이는 이렇다.
‘눈을 비비고 상대편을 본다는 뜻으로, 남의 학식이나 재주가 놀랄 만큼 부쩍 는 것을 일컬음.’
사이트에서 그 출전을 찾아봤다.
오(吳)나라의 장군 여몽(呂蒙)은 박식한 사람으로, 주유(周瑜)의 뒤를 이어 도독이 되었고, 반장(潘璋)을 시켜 촉(蜀)의 관우(關羽)를 죽이고 형주를 되찾아 온 사람이다. 그는 집안이 가난하여 어려서부터 오로지 무술 공부에만 힘을 쏟았을 뿐, 글공부는 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손권(孫權)이 여몽과 장흠(蔣欽)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면하는 말을 하자 학문을 닦기 시작하여 학자를 능가하는 수준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주유가 죽은 후, 주유를 대신하여 도독이 된 노숙(魯肅)이 육구(陸口)로 가는 길에 여몽의 군영을 지나게 되었다. 노숙은 마음속으로 여전히 여몽을 경시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노숙을 설득했다. “여장군의 공명이 나날이 빛나고 있으니 마음대로 대하면 안 됩니다. 가서 보는 게 좋겠습니다.” 노숙은 여몽을 찾아갔다. 술자리가 한창일 때 여몽이 노숙에게 말했다. “당신은 중임을 받아 관우와 이웃하게 되었는데 어떤 계략으로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비하고 있습니까?” 노숙은 엉겁결에 대답했다. “때에 임하여 적당한 방법을 택할 것이오.” 여몽이 말했다. “지금 동쪽(吳)과 서쪽(蜀)은 한 집안이지만, 관우는 사실 곰이나 호랑이 같은 사람입니다. 계획을 어찌 미리 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노숙을 위해 다섯 가지 계책을 그렸다. 노숙은 이때에 자리를 넘어가 여몽에게 가까이 가서 그의 등을 치며 말했다. “여자명(呂子明, 여몽), 나는 그대의 재략이 이 수준까지 미쳤는지 몰랐소.” 그리고 여몽의 어머니께 인사하고, 여몽과 교분을 맺고 헤어졌다.(魯肅代周瑜, 當之陸口, 過蒙屯下. 肅意尙輕蒙, 或說肅曰, 呂將軍功名日顯, 不可以故意待也, 君宜顧之. 遂往詣蒙, 酒酣, 蒙問肅曰, 君受重任, 與關羽爲鄰, 將何計略, 以備不虞. 肅造次應曰, 臨時施宜. 蒙曰, 今東西雖爲一家, 而關羽實熊虎也. 計安可不豫定. 因爲肅畵五策. 肅於是越席就之, 拊其背曰, 呂子明, 吾不知卿才略所及乃至於此也. 遂拜蒙母, 結友而別.) 이 이야기는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 ‘여몽전’(呂夢傳)에 나온다. 그런데 ‘여몽전’의 본문에는 ‘괄목상대’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 ‘괄목상대’는 손권이 여몽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한 내용인 ‘수불석권’, ‘오하아몽’(吳下阿蒙)과 더불어 ‘강표전’(江表傳)을 인용한 배송지(裴松之)의 주(注)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숙이 여몽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나는 이제껏 그대가 무술만 아는 줄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대의 학문이 뛰어난 것이 이미 옛날 오 지역의 시골 구석에 있던 아몽(阿蒙)이 아니구려.” 여몽이 말했다. “선비는 모름지기 여러 날을 떨어져 있다가 만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할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江表傳曰, 肅拊蒙背曰, 吾謂大弟但有武略耳, 至於今者, 學識英博, 非復吳下阿蒙. 蒙曰, 士別三日, 卽更刮目相待.)」
‘괄목상대’(刮目相對)는 ‘괄목상대’(刮目相待)’ ‘괄목상간’(刮目相看)으로도 쓴다고 하면서 이렇게 용례까지 소개하고 있었다.
「한 점에서 같은 방향으로 두 개의 선을 그을 때 그 각도 차이가 1도만 나도 나중에 가서는 그 폭이 엄청나게 벌어지는 것과 같이, 노력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노력하지 않아 전혀 발전을 못 한 사람은 먼 훗날 상상도 못 할 만큼 발전한 상대방을 만나면 ‘괄목상대’를 하면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봐도 참 잘못 봤다.
너무 얕봤다.
창단 3년 밖에 안 됐고, 주전 선수들이 1학년 2학년이어서, 내 그리 볼만도 했다.
바로 경주고 야구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바로 괄목상대였다.
야구 명문인 서울의 신일고를 5대 1로 제키고 제 69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8강에 오른 것이다.
2015년 6월 24일 수요일 밤 10시, 경주고의 승리가 확정되는 그 순간, 그 밤하늘에 높이 걸린 밝은 달도, 그 승리에 놀란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