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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북 관계가 소강 국면에 접어들어 교류 협력이 여의치 않지만, 금강산과 개성 방문이 가능하던 과거에는 북한 음식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물론 지금도 서울에는 평양냉면을 비롯한 북한 음식 전문점들이 적지 않지만, 어느 정도 남쪽 사람들의 입맛을 의식한 메뉴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2018년에는 옥류관의 평양냉면이 오찬 메뉴로 올랐다는 소식에, 한동안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줄을 서던 풍경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기만 하다. 비록 직접 그곳에 가서 먹지는 못하지만, 서울을 비롯한 곳곳의 북한음식 전문점을 찾는 실향민들은 고향 음식을 맛보며 통일을 기원하기도 한다.
‘북녘에서 맛보는 우리 음식 이야기’라는 부제의 이 책은 ‘조선적’의 재일동포가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먹었던 음식들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흔히 ‘조총련’으로 통칭되는 이들 중에는 일본으로의 귀화를 거부하고, 남이나 북의 국적이 아닌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적’은 통일된 미래의 조국을 바라는 것이라고 한다. 재일조선인 2세인 저자는 일본의 ‘조선대학교’의 영양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2년에 한번 씩 학생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유명 요리사들로부터 조리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북한에 머물면서 맛보았던 각종 음식들을 소개하는 글을 일본의 ‘조선신보’에 기고했고, 그 글들을 모아서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을 위해 기고했던 글이라 원문은 일본어로 되어 있어, 그것을 번역하여 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도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애초에 남쪽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글을 썼다고 한다. 일본의 조선대학교가 북한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교수들과 학생들은 북한 방문의 기회가 적지 않게 주어진다. 저자는 특히 영양학 교수로서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 북한에 갈때마다 가급적 많은 음식을 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글 속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적지 않은 음식들은 남쪽에서도 어렵지 않게 먹어볼 수 있는 메뉴들이다. 그러나 일본에 사는 저자에게는 새롭고, 특히 고국의 맛을 느낄 수 잇는 좋은 기회로 여겨졌을 것이다.
모두 3부로 구성된 목차에서, 1부는 ‘냉면이 아니라 온면?’이라는 제목 아래 모두 21개 항목에 걸쳐 다양한 북한 음식들이 소개되어 있다. 백두산 감자를 구워먹는 것부터 평양냉면과 김치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식탁을 이루는 기본적인 음식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간혹 저자가 방문했던 식당이나 대학의 분위기와 음식 실습의 모습도 소개하고 있었다. ‘놀라운 맛에 감동하다’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조금은 특별한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모두 13개 항목으로 철갑상어나 자라 그리고 쏘가리 등 남쪽에서도 귀한 음식들에 대한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특별한 요리들은 일본의 음식에 익숙한 저자에게 충분히 ‘놀라운 맛’으로 여겨질 것이라 짐작된다.
마지막 3부는 ‘달콤하고 멋진 평양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송이버섯을 비롯한 특별한 식재료와 함께 평양의 분위기를 적절히 소개하고 있다. 칵테일바에서 맛본 평양식 칵테일과 북한의 영양음료, 그리고 저자가 참여했던 ‘태양절 료리축전’의 분위기 등에 대해서도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엇다. 또한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된 일본에서는, 북한 방문자의 짐을 조사하여 북한산 물건들을 압수하는 행태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선물 받은 인삼을 가이드와 나누어 먹을 수밖에 없었던 모습이 소개되기도 한다. 금강산과 개성 등 평양 이외의 지역을 방문하여 저자가 맛본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고 있어, 남북 관계가 진전되어 북한 방문을 할 기회가 있다면 이 책에 소개된 음식들을 맛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앞부분에 소개된 북한 방문기와 각종 음식들을 소개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번역자가 따로 저자를 인터뷰하여,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조선인들의 상황을 이끌어낸 내용이 나에게는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분단과 통일 사이에서 재일 조선인을 묻다’라는 제목의 인터뷰 내용은, 우리가 그동안 외면했던 재일조선인들의 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한일 관계 혹은 북일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재일조선인들을 위압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우리말을 사용하면서,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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