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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또 군대에 입대할 나이가 되어, 아내가 임신했을 당시의 기억이 이제는 까마득하기만 하다. 더욱이 아들이 태어나는 날, 하필이면 그날 지방에서의 취업 면접이 잡혀서 하루 전에 떠나야만 했다. 집을 나서는 나를 배웅하면서 건네는 아내의 ‘아마 아기가 내일 나올 것 같아!’라는 담담한 어조의 말을 들었고, 다음날 면접을 끝내자마자 전화를 해서 진통 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버스 시간이 남아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스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얼마 후에 들려온, ‘축하해! 아들이란다’라는 누님의 말에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잘 견뎌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도 평생 간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아들이 태어나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없는 축복으로 다가오는 출산의 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힘겨운 고투의 시간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고위험군 임산부와 아기, 두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의사의 기록'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고위험군 산모’와 만나는 산부인과 의사의 진료 경험을 엮어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대부분의 산모와 달리, 저자와 만나는 사람들은 ‘고위험군 산모’이기에 임신과 출산 과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저자의 입장에서는 난관을 헤치고 태어난 아기들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목이나 내용에 대해서 공감을 하면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최근의 보도에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현실이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미래의 불안정성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단지 출산율의 저하가 그러한 경제적 전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의 문제로만 취급될 수 있을까? 그러한 기사들에서는, 당장 취업이 쉽지 않고 결혼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의 절실한 심정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에 대한 대책없이 공허한 지적보다, 문제적인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실질적인 방안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물론 그것 조차도 쉽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자세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아기를 갖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을 이 책이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노산(老産)이나 염색체 이상 등으로 임신과 분만의 상황에서 어려움에 처한 ‘고위험군 산모’를 전담하는 의사로서,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녹여낸 내용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밤늦게 집에 도착하자마자 급한 환자 때문에 다시 병원으로 행할 수밖에 없었던 숱한 상황들, 관심이 필요한 시기 세심하게 돌봐주지 못했던 두 딸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잘 견뎌준 산모와 아기들에 대한 저자의 자상함이 절로 드러나는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렇게 태어난 생명의 소중함이 각인되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주변의 산모들에게는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대다수의 산모들은 임신 기간 중에 입덧과 각종 임신증후군 등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과 불편함을 겪고 있다. 그 기간 중에는 절대적으로 심리적인 안정이 필요하고, 그래서 예로부터 태교(胎敎)를 강조했을 것이다. 혹여 ‘고위험군 산모’를 비룻하여 모든 산모들이 이 책을 읽는 것보다는 저자와 같은 의사를 만나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이 더 절실할 것이다. 그래서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저자가 마주쳤던 산모들처럼 지내길 바라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교과서’로서의 역할을 하리라고 여겨진다. 출판사의 권유와 응낙으로 나에게 전해진 묘한 인연으로, 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 의사로서의 헌신적인 저자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진정 환자를 위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고, 그래서 더욱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면서 읽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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