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강좌/시의 인문학>
■ 시라는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
막연한 아름다움을 서술한 글은 시가 아니다. 시는 인생미문학(人生美文學) 이지만, 인생살이를 예쁜 말로 쓰라는 뜻이 아니다. 시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텐션(tension)이다. ‘텐션’이란 말은 ‘긴장감’으로 번역되지만, 시에서는 ‘분위기나 상황에 맞는 상태, 즉 있어야 할 자리에 자리 잡은 단어의 조합’을 말한다. 사람의 체격에 맞는 옷, 음식의 종류에 어울리는 그릇처럼, 시의 주제나 제목과 잘 어우러진 상태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보이는 시적 대상(그릇)과 보이지 않는 의미(내용/음식)의 결합을 통하여 유발된 궁금증과 긴장감이 공감되어야 시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디카시 짓기도 마찬가지므로 묘사(사진/시를 담을 그릇)와 진술(언술/진짜 말하고자하는 의미)의 조화가 잘 되었는지 잘 살펴 봐야 한다.
시인은 자기의 그릇이 있다. 그 그릇에 맞는 시를 써야지만 시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초등학생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아무리 좋은 말로 써놓아도 그것에서 삶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겠는가? 좀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조폭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시를 썼다고 치자. 그런 사람이 착하게 살아가자는 내용으로 시를 썼더라도 그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비유적 상황을 가져와서 조폭의 말로에 관해서 긴장감이 유발되고 글의 진정성이 느껴진다면 시가 된다. 즉, 자기가 제일 잘 아는 일을 자기와 자아를 드러내야 하는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쓴 글은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의 소재를 멀리서 찾으려고 하지 말자. 내 주변의 널려있는 것을 자세히 보면 시적 대상이 아닌 것이 없다. 그중에서 서정적 감성이 발현되는 한 가지를 선택하고 그것에 집중해서 시를 쓰는 연습이 중요하다.
다음의 시를 한 편 보자
마당에서 고양이가
어디 한번 써볼 테면 써보라는 듯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신기하고 이쁜 마음에
고양이의 하품
이라고 정말 한 편 쓰고 싶은데
최종천 시인의
고양이의 마술이 떠올라서
그냥 혼자 즐기기로 한다
고양이의 마술, 고양이의 하품
제목만 봐도 표절 같다
고양이의 마술사 최종천 시인과
고양이들의 천사 황인숙 시인 말고도
고양이를 쓴 시인들이 많아서
고양이라면
생각만 해도 도용이다
죽는 날까지 고양이는 절대 쓰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는다
고양이는 그림의 떡이다
_ 임희구 「고양이의 하품」 전문
고양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이다. 그래서 고양이를 주제로 많은 시인이 시를 썼다. 이 시에서 말하는 바는 시인의 개별성에 대한 고민이다. ‘죽는 날까지 고양이는 절대 쓰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는다’라고 썼지만, 사실 임희구 시인만의 '고양이 시'를 훌륭하게 썼다. 다른 시인의 작품을 가져와서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자기 할 말은 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하늘에서 떨어진 천상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의 보통 말을 특별한 의미로 바꾸는 작업이다. 여러 이야기를 시 한 편에 담으려는 것은 욕심이다. 예전 강좌에서 언급했듯, 시는 ‘언어경제의 법칙’에 충실할 일이다. 최소한의 언어로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시인으로서는 최고의 이문을 남기는 셈이다. 겉멋에 빠져서 말의 낭비가 많은 시는 발표해 봐야 손해만 보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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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디카시 한 편 감상
수정 욕구력
정답은 없고 선택은 있고
살고 싶니, 대부분 예라고 하지만
행복하니 물으니 그렇다 동그라미
마지막 질문해볼게
아이는 낳았니
_ 최희강 시인의 디카시집 [햇빛 사내] 중에서
위 시에 등장하는 'O·X 돌리기'는 마치 티벳 불교 사원 주변에 길게 설치되어 있어서 손으로 돌릴 수 있는 종처럼 생긴 ‘마니차’를 본뜬 것 같다. 마니차를 한 바퀴 돌리면 불경 한 권을 읽은 것과 같다고 하여 사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늘어서 있는 마니차를 돌리며 간다.
O·X 돌리기는 공원 등지에서 가끔 볼 수 있다. 최희강 시인은 그것에서 사람살이의 원리를 생각해 낸다.
“정답은 없고 선택은 있고”
인생이 그렇다. 우리 앞에 다가오는 많은 문제의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 선택이 잘 못 될 수도 있지만, 사람은 대체적으로 행복해 보이려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시인은 연을 바꾸어서 묻는다. “아이는 낳았니”라고.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촌철살인적 언술이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인 인구 절벽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나 행복을 염원하면서도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자녀를 낳지 않는 현상을 꼬집고 있다.
제목이 ‘수정 욕구력’이다. 그 수정행위를 O·X 돌리듯 쉽게 하면서도 진정한 의미의 가정을 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을 이루는 가장 튼튼한 기초조직이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정의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아들, 딸, 손자, 손녀 등으로 구성된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지며 대개 한집에서 생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가족과 가정은 비슷한 것 같지만 약간 다른 개념이다. 가정(家庭)은 가족이 살아가는 공간이자 의·식·주와 정서적인 사랑을 나누는, 사람 생활의 단위다. 그러므로 가족의 사랑이 아무리 끈끈하더라도 의·식·주 등의 물적 내용이 채워지지 않으면 가정은 성립되기 힘들다.
자녀가 없는 부부만으로는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이뤄지지 않으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의·식·주와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가꾸려는 노력 없이는 가정을 이루기도 어렵다는 다의적 뜻을 내포한 디카시다. 이처럼 디카시에도 얼마든지 다의적 뜻을 담을 수 있다. 디카시는 결코 가벼운 문학이 아니다.
PS)
최희강 디카시인
2006년 《시사사》 시로 등단
2022년 《한국디카시학》 디카시로 등단
이형기시인기념사업회 간사
시사사 부회장
칼럼니스트(경남도민신문)
시집 『키스의 잔액』
디카시집 『햇빛 사내』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가끔 읽어보지만 깊이가 느껴집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