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했으면 행복해져야 하는데
헌신짝이 되어 버린다.
나 자신도 보살피며 살아야 한다. ㅡ
쉰이 다 되어 가도록
남편의 아침밥 한 번 거른 적 없었고,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집을 비우는 일도 없었다.
딸을 품에서 떼어놓기가 싫어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엉덩이 두드려주며 데리고 잤다.
그런데 남편은 누가 그렇게 희생적으로 살아달라고
요구한 적 있느냐며 비난하고,
금지옥엽 키운 딸은 사사건건 반발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온 것들이
별안간 돌팔매가 되어 날아든 현실에
그녀는 망연자실했다.
- 김재용 / [그나저나 나는 지금 과도기인 것 같아요] 中
감성이 메마르면 삶도 메마른다.
때로는 밥심보다 꽃심이어야 한다. ㅡ
꽃처럼 살고 싶었다.
척박한 땅일지라도
땅을 탓하지 않고 피어나 향기를 뿜는 꽃.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중략)
이게 아닌데,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건 아닌데….
두루두루 견딜 만하다가도
더는 참을 수 없는 날에는 꽃집으로 갔다.
계절에 상관없이 꽃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는
설렘의 시간이 좋았고,
꽃 한 다발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가 된 것 같았다.
품격 있게 늙어가고 싶다.
누군가 나를 보며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게. ㅡ
'자연스럽게 나이 들었다'는 말과
'아름답다'는 말은 같은 의미가 아닐까.
멈출 수 없는 것이 세월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이 늙음이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머리 숱은 적어지고 남은 머리칼마저 하얗게 세어버린다.
피부 탄력도 쭉쭉 떨어져 아무리 좋은 시술을 받아도
40대가 20대로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되돌리려고
혼이 빠져 살 게 아니라
나이 들면서 알게 되는 삶의 깨달음에
더 신경 쓰며 살아야 하리라.
세월에 반기를 드느라
표정조차 부자연스러운 사람으로 나이들고 싶지는 않다.
웃을 때마다 주름이 부챗살처럼 펼쳐져도 맘껏 웃고,
하늘과 바람과 꽃과 나무의 속삭임을 들으면서
자연의 색깔로 곱게 물들고 싶다.
나 그렇게 늙어가고 있는 걸까?
세상에는 다 좋고 다 나쁜 건 없다.
갱년기 증후군도 좋은 게 있다. ㅡ
매년 한 번씩 종합 검진을 받으러 간다.
검진 받으러 갈 때마다 가슴 촬영은 나를 긴장하게 한다.
가슴을 촬영 기계에 밀착시키고 두부 짜듯 누를 때
저절로 터져 나오는 비명.
생각만 해도 온몸이 굳어지고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진다.
그런데 웬걸, 이번에는 그리 아프지 않았다.
같은 병원에서 같은 기계로 검사받는 건데 웬일이지?
가만 보니 내 가슴의 탄력이 떨어진 거였다.
늙으면 부부밖에 남지 않는다는 건 이제 옛말이다.
나는 가끔 해혼을 꿈꾼다. ㅡ
“쨍그랑!”
접시가 강한 파열음을 내며 박살이 났다.
큰소리를 내며 부부싸움을 하다
남편이 등을 보이며 현관문을 향해 가는 순간,
고무장갑 낀 손에 들려 있던 접시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그것도 팔에 온 힘을 실어서.
측은지심도 이해라는 감정도 임계점이 지나면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가 참으면 되지, 하며 억눌러왔던 마음이
더는 못 참겠다며 온몸으로 항거하고 있었다.
세상에 남자의 아집만큼 단단한 벽이 또 있을까.
자기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남편 앞에서
난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삶은 견뎌낸 만큼
빛나는 시간을 되돌려준다.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고 나서
뜨는 해가 더 빛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