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년 역사속에 내 자신
내가 태어나고 자란 울집엔 족보가 없었다
울 할부지 1888년생이신데도 공부를 전혀 못 했단다
증조부는 한말에 관찰부 관찰사란다
순악한 거짓말 같았다
왜 냐면 ......
본부인은 일찍타계하시고 막내아들 세살짜리아이까지 후처부인에게 맞기고
산사람이 되었다면 그게 빨치산이란다
해방후 울나라 군인과 경찰이 쫏던 사람이 빨치산이란다 6.25동란이 끝나기전까지
허나
산사람은 우리민족이 쓰는말이고
빨치산은 휼륭한 일본국아래에서 쓰던 말이란다
그런데
정부? 독립기념관 그 어디에도
산사람이든 빨치산이든 제 증조부는 그 어느 명단도 없기에 의아하다
동지들은 마지막 증조부 가시는길에 요단강 건너갈때에 찬송속에 배웅을 하셨다는데 그때에 그 동지들
동지들의 후손들은 알고 계실까?
하물며 곡성에서도 모르쇠 로 일관 해 버리는데 ........다행스럽게 울 작은할부의 도움으로 호적을 만드신 그느낌이다
울집 원적을 들추면 작은할부지가 나오신다
울 아부진 돌아가시기전에 동생내외와 함께 곡성본토에 들르셨는데 그집엔 가시지않고 차에서만 손가락으로 가르키시며
마당가운데 무슨나무인지 커다란나누가 보였다고 한다
울아부진 강가들어가 쇼에 들어가셔서 키조개를 캐신이야기
무우가 유남히 맛이좋았다하시며
땅에떨어진 감이 싫어서 직접올라가셔서 감을 따셨던이야기까지 해 주셨다
큰아버지 1917년생이 유아기때에 보았다고 전해져내려온사실은
소금 가마니를 짊어지시고 집회를 열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모아
예배 한답시고 .......
몰래 몰래 행한 그건 순악한 빨치산들이란다
다행이 우리집은 차후에 곡성에서 순천으로 이사를 했었고
다행이 증조모와 할부진 해방전에 돌아가셨기에
해방후에 곡성으로 찾아가
한많은 마음을 토로하고 행패를 부려보지도 못 하셨다
순악한 산사람 예수꾼 빨치산
해방후
순천에선 들추지도 못했다
다만 울 할머닌 아버지와 함께 발발발 떠셨다 한다
대한민국 순천엔 6.25전쟁이 끝날때까지 빨갱이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순경들이 들추고 국군이 위장덴 옷을 입고 뒤지고 쑤시고 끌고 가려했다한다
다들 돌아가시고
이젠
울 증조부의 흔적도 찾을 길 막막하단다
그걸 찾으려면 ........
넘 힘들거라 한다
울집은 고전어로 된 질 좋은 뱅노지 성경책만 기억한다
고조부 할부지때부터 사용한 천주교 선경인지
증조부때 부터 사용한 예수교 성경책인지 잘 모른다
조선사에 참수당한 자녀가 왜 관찰부 관찰사라느직을 받게된 그 연유도 이해가 안됩니다
울 아부지 아가야때에 예배당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모두들 까까머리를 해 주셨고 ....
곡성에선
조선사든 일제 감점기때에 천주교나 예수교가 전혀 없었노라 한다
울집 작은 할부진 순천에 이사온후로도 1980년대까지 생존하시어
장로교를 다니신 분이시며 전해져내려온 제사방식을 전해주셨는데 곡성은 모르쇠 모르쇠다
증조부님은 안중근의사님과도 함께함이 보였는데 요즈음은 안 보인다
30년대라 하셨기에
일본 명치시기 30년대다
울집 호적부를 들추다보면 ....뭐가 나온다 아마 짐작건데 몰라
어느 그곳에서도 체표가 되신기록이 있다
그건 아명이 아닌 본명으로 처갓댁식구 이춘일이란 분과 함께
그런데 누가 그기록물을 건드린 흔적에 좀 그렇다
원본마져 건드림에 참혹하다
한말에는 이북쪽에서 산사람이 되어 크게 쫏긴모양새다
생포가 아닌 사살명령을 내리신것 같다
그땐 아명을 빙잉 돌려서 쓰신 함자이다
순천에서 부터 처갓댁과 함께 며무르신 것 같기도 하다
이충일이란 사람은
본부인쪽 사람인지 울 증조모쪽 사람인지 잘 모른다
본디 족보가 없는 쌍민이된 가문사 이지만
양반티가 철철흐르는 맵시며 음식또한 소문난 솜씨였다
곡성에 농사가 꽤 있었던걸로 보아
신분의 노출을 완연 숨기셨던 것 같다
그런데 아쉬운건 가정을 못 지키셨고
휼륭하산분으로 칭 하셨지만
계모이신 어머닌 학구열이 전혀 없으신 모양새다
아마도 순천 조례골과 곡성을 오가며 동지들과 함께 활동 하신것 같기도 하다
할부진 그 동지들이 뉘신지 모르나
상을 내리셨다 한다
증조부를 살리시기위해 살점을 도려내어 바치셨다?
집에 개를 키워서 그 개로 증조부 동지들과 증조부를 극진히 간병하시어 내린상이라는데 무엇일까?
1920년대에 처갓집식구 이춘일과 함께
동량지제 ?????
그리고 당신의 아명과 당신의 함자를 번갈아가며 쓰시던게 엿 보인다
아명도 글자를 다르게 사용하신 흔적이 고스란히 님겨있다
그 한자는 함자로 사용하지 않는 글자란다
요즈음
울집에서 지낸 제사는 사탄이요 마귀란다
저 윗대에서 내려온 제사는 요즈음 천주교식 제사와 흡사하는데
믿음이 강한 예수교를 쬐끔이나마 믿는 며느리들이 소스라치게 놀랜다
사탄이요 마귀를 섬긴거라고
미국식 교를 주장하며
침례교가 더 미국식이다
장로교가 더 미국식이다 그 아집을 부림이 기구하다
이젠 에수교가 무섭다
신천지가 무언지 그들은 어데서 주어들은걸 짜집기식으로 ...그런느낌이다
정말 옛 부터 믿으신 가문은 장로교를 다니셨는데 뭔가가 가 찝찝하다
그리고 한훈이라는 한우석님과 ?
절대 아닐것 같다
그건 전혀 아니다라고 생각 한다
송촌이라
가파치의 흔적에도 송촌이 두개가 있다
그리고 그 누구의 책에도 한훈?님은 눈이 빛이났고 훨칠한 키라고 소개를 했었다
실제 눈이 유난히 빛이난 우리남매몇명 그렇다 네 아이중 한아이도 그렇다
가파친 울엄마와 울아부지의 인연후에 서로 내통하고 족보도 따지기도 전에 여순발란이 일어났고
울 작은아버진 파란색 경찰이되어 선임들의 지침에 따라
휼륭한 대한민국 의 한 일원이되어
자랑스런 참참참 민주주의 한 일원으로서 외할부질 뒤 쫏았다 한다
그래 뭐 모 검찰총장의 전파된 복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ㅡ사람을 보단 조직을 사랑한다고 ㅡ
사람보단 조직을 섬기고 사랑한다는 그분의 말씀처럼 울 작은아버진 울 외할부질 돌아가실때까지
당신의 손으로 잡아드렸어야 끝까지 대한민국경찰로서 대성공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신것 같다고 토로하셨기에
울 막내 삼촌이 1.8리터 짜리 석유병 <소주병인 유리로된걸>고 맞아서 피가 철철철나도록 당하신것도 보았다
온방에 석유와 유리파편이 흥건하고 온 방에 사람들이 꽉찬것 같은데
엄만 겁에질려서 그 유리파편을 혼자서 줍고 치우신걸 계신걸 기억한다
아마 60년대 중반알것이다
천애고아같은 울 엄마
하루아침에 빨갱이가 아닌 빨갱이가되어
울 할무닌 그래도 엄말 꼭 껴안고 사셨단다
울 할무닌 울 증조부의 심부름도 많이 하시진 않으셨나?
모처에 할머니함자도 보았는데 요즈음은 보이질 않는다
아마 별량이나 별교? 낙안?
울할머니도 동네사람들도 작은아버질 피하셨다 한다 쉬쉿 하셨다 한다
대한민국아 왜 순진한 울 작은아버질
어떻게 교육을 시키셨나?
울 작은아버진 갑자기 한글 교육이 없어져서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었단다
일본어로 일본을 배운다는게 그건 아니기에 학교를 더 이상 못 다니셨지만
성경책을 한문어로 새로이 변역하신분이시다
아니 한문으로 된 성경책을 읽고 쓰고 하신분이란다
연향동 남부교회 목사닌
당신은 대단한 민주주의 국민 맞습니다
허나
뭐라구요
가파치의 이야길 들은데로 전해주시요
울 작은아버지와 짝짝쿵이되어
사탄이요 마귀같은 빨갱이저서를 버리시라고 조언도 해 주셨고
또 무슨 담소를 나누셨는지 다 토로 해 주시요
21세기의 마음을 열어주실 목사란 사람의 그 수준도 알고 싶습니다
혹여 그 저서 목사님이 간직하셨으면 다 돌려주시고
저 로터리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서 알려주시오 빨치산이라면 그것 도 맛소이다
1910년도 3월에 가파치 동지들은 애두릴 봇짐을 쌓답니다
서해안에서 페잔병이되어 꼼짝도 못하고 움크린신세가 된 가파치에겐 도와주실 그 느그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서해안에서 패잔병이된 가파친 빨치산 맞답니다 그건 일본사람이 사용한 언어랍니다
일본서 유학을 하고 해방이되어 돌아오신 또다른 작은 아버지도
당신은 대한민국 경찰의길이 그길이 아님에 일찌김치 내려놓으시고 다른길을 택하셨는데 말이다
첫댓글 뱅노지 성경책...순악한 산사람이란 뜻은 순전히 악한? 그런 뜻이 아닌듯도 하구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안녕하세요?
쬐금 아팠답니다
조금전 대충 퇴고를 했습니다
요즈음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인하여 많이도 힘드실텐데 무고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