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장산(天藏山), 돌곶이에서 의릉(懿陵)까지
성북구와 동대문구에 걸쳐 있는 해발 140m의 천장산은 ‘하늘이 숨겨놓은 곳’이라는 이름처럼 보석 같은 곳이다.
명당으로 손꼽혔던 만큼 조선왕조의 묘가 많이 조성됐다.
우선, 경종(景宗)과 계비 선의왕후(宣懿王后) 어씨(魚氏)의 쌍릉(雙陵)인 의릉(懿陵)이 있다.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 묘가 이곳에 조성됐는데, 훗날 연산군이 왕릉의 규모를 갖추고 회릉(懷陵)으로 격상시켰으나,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다시 회묘로 격하됐다.
이후 연산군의 정비였던 신씨의 묘도 이곳에 조성됐으나 모두 이장됐다.
회묘터(懷基)는 돌아온 터(回基, 회기)로 바뀌어 동네 이름으로 남아 있다.
또,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시해된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묘가 고종(高宗)과 남양주 홍릉(洪陵)으로 합장되기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귀비 엄씨의 묘소인 영휘원(永徽園)과 영친왕의 아들 이진(李晉)의 묘소인 숭인원(崇仁園)이 자리 잡고 있다.
지하철 6호선 돌곶이역 7번 출구와 8번 출구 사이에는 돌곶이역 유래비가 있다.
천장산의 한 지맥이 돌을 꽂아놓은 듯이 보여 ‘돌곶이마을’이라고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옮긴 것이 석관동(石串洞)이다.
돌곶이역 8번 출구에서 의릉을 바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의릉 능역에 세워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를 한 바퀴 돌아 의릉까지 가는 길(1km, 도보 15분)은 무척 아름다워 돌아가는 것도 좋다.
세계기독청년선교센터를 끼고 좌회전해서 석관파출소까지 올라간 뒤 왼쪽 길로 간다.
가는 길에는 도당(석관동 340-328)이 있다.
도당은 마을을 수호하는 신을 모신 당집을 뜻한다.
석관동 도당에 모셔진 신은 천장산의 산신인데, 옛 사람들은 중랑천을 사이에 두고 봉화산 할아버지와 천장산 할머니를 수호신으로 모셨다.
도당 안에는 벼씨를 가득 넣고 짚으로 엮은 주저리를 덮은 항아리가 있다는데, 마을의 주업이 농업이었음을 알려준다.
원래 도당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고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캠퍼스 안으로 들어간다.
석관동 캠퍼스에는 학교본부와 연극원, 영상원, 미술원, 전통예술원 등이 있다.
의릉의 능역이었고, 1960년대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중앙정보부가 있던 곳이어서인지 캠퍼스는 잘 가꾸어진 큰 공원이다.
학교본부를 지나면 작지만 아름다운 연못이 나온다.
이른바 음지못이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중정(중앙정보부)은 의릉의 제향 공간(홍살문과 정자각)에는 양지못을, 지금 한예종 학교본부 근처에는 음지못을 팠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정의 부훈에 착안한 것이라고는 한다.
과거 중정이 만든 축구단 이름도 양지축구단이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하고 의릉 일부 능역이 시민들에게 개방되면서 양지못은 메워졌고, 한예종 캠퍼스로 변화한 구역 내 음지못은 그대로 남았다.
음지못의 이름과 조성 경위는 모두 음습한 권위주의 시대와 닿아 있지만, 지금은 ‘음지’라는 이름과는 180도 달리 햇볕이 잘 들고 아름다운 곳이다.
갈 때마다 동네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음지못에서 조금만 걸으면 의릉의 매표소다.
2009년 의릉을 비롯한 조선 왕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한예종 석관캠퍼스는 이전해야 하지만, 국가유산청이 한예종 부지 위임 기간을 연장하면서 구체적인 이전 논의는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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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음지못과 도당, 돌곶이유래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