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26) 시 합평의 실제 3 - ⑥ 박득희의 ‘미풍’/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
시 합평의 실제 3
티스토리 http://backuptmp.tistory.com/1151/ 향기로운 미풍속에
⑥ 박득희의 ‘미풍’
<원작>
미풍/ 박득희
부드러운 미풍에
마음을 담고
호흡을 해봅니다
머리카락 한 올 속
사연들이 줄지어
하얗게 세인만큼
남겨진 숫자
살며시 덮어주는
바람에 눈물 한 방울
또르르 내어봅니다
<합평작>
미풍/ 박득희
미풍에 마음을 담고
숨을 쉽니다
머리카락 한 올 속 사연들이
하얗게 센 만큼
남겨진 숫자
다독여주는 손길에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흐릅니다
<시작노트>
자식 노릇, 아내 노릇, 엄마 노릇하면서
직장인으로, 사회인으로 몫을 다하느라
벅찬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를 열며
부지런히 달리고 또 달리지만
때로는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바람은 큰 위안이 됩니다.
아버지의 손길처럼
든든하고 따스합니다.
<합평노트>
‘바람’은 예로부터 시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바람 중에서도 부드러운 바람은 어머니나 연인 등 나를 연민하고 이해해주는 대상으로 느껴지는데,
시인도 고단한 머리칼을 쓸어주는 손길로 생각하고 있군요.
제1연에서
“호흡을 해봅니다”라는 표현보다는 “숨을 쉽니다”라고,
우리말로 형상화하는 것이 시적일 것입니다.
시를 쓸 때 한자어나 전문용어 등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일상에서 쓰는 말이 시어로서 제 역할을 했을 때 진정성 있는 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군데 차용된 형용사, 부사도 삭제합니다.
일상어를 쓰는 동시에 지나친 수식을 피했을 때 순수한 맨얼굴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1연의 “부드러운 미풍”이란 표현에서 ‘미풍’ 자체가 ‘부드러운 바람’이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부드러운’이란 수식은 의미를 중복시킨 것이므로 삭제합니다.
제4연의 ‘덮어주는’은 ‘다독여주는’, ‘쓰다듬어주는’ 등으로 바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플로베르는 일찍이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주장했습니다.
하나의 사물을 지칭하는 데 적당한 어휘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문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특정한 위치에 알맞은 어휘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그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어휘를 찾기 위해 유의어, 동의어 등을 찾아 헤매는 사람입니다.
<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안현심, 도서출판 지혜, 2021)’에서 옮겨 적음. (2023. 3. 8.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26) 시 합평의 실제 3 - ⑥ 박득희의 ‘미풍’/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