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일지 / 김종보 시창고
항해 일지
김종보
영안실 뒤뜰에 노아의 방주 떠 있다
들어선다
뒷굽 안쪽까지 젖은 구두는 벗어두고
벌써부터 구김살이 움켜쥔 넥타이는 풀어둔다.
없는 게 없다
뻘건 국물엔 오늘 아침 잡았다는 소의 옆구리가 뜨고
붉은 화투패에선 화사한 꽃들이 피었다 진다
환호성도 터진다
투망한 화투패로 한 두릅 싱싱한 지폐를 낚아 올리고
푸른 새벽이 와도 충혈된 눈은 감길 줄 모른다
기우뚱! 기울어진다
배가 세찬 풍랑을 만날 때마다
승객들은 기우는 쪽으로 쓰러져 불편한 새우잠이 든다
이제 나서야 한다
뒤엉킨 신발 속에서 용케 딱 맞는 구멍을 찾아내고
아직 하품이 덜 끝난 구두 속에 발을 쑤셔 넣는다
어디로 가는가?
몸무게라도 재듯 잠시 구두 속에 서 있으면
어느새 내 몸은 긴 돛대가 되어
255미리 배 두 척 끌고
또 어디로 힘겨운 출항을 하려는가?
허공을 떠가는 고인의 배 한 척,
상주는 발인을 걱정하는데 빗줄기는 굵어진다
다시 삶으로 회항할 수 있다면
김종보 시인
스물세 살에 계간지 <시세계>에 “소리에 대하여1” 외 세 편의 시를 발표. ‘식물성에 근거한 생태적 상상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던 이 젊은 시인은 시, 소설, 수필, 평론 등 장르를 불문하고 글을 썼고, 대학 문학상 전관왕에 올랐던 해에는 일간지에 인터뷰가 실릴 정도로 주목 받았다. 졸업 후에 ‘빈터’ 동인으로 활동하며 시집 출간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문단에서 사라졌다. 그가 돌아온 것은 ‘잠적’ 후 근 17년만이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된 가을부터 가족과 함께 캠핑을 다니며 인터넷 캠핑 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 그는 “시가 되기에는 장황하고, 소설이 되기에는 너무 사실적이며, 비평이 되기에는 시대정신이 떨어지는 비무장지대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캠핑이라는 소재를 취했지만 그는 자연, 인간관계, 가족, 교육 등 다양한 주제를 글 속에 녹여낸다. 인터넷 캠핑 카페에는 그 비무장지대가 지닌 매력에 푹 빠진 그의 골수팬들이 많다.
[출처] 항해 일지 / 김종보|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