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갑시다 (2560) ///////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 신동혁
진단 / 신동혁
머리를 자르면 물고기가 된 기분입니다
나는 종교가 없고 마지막엔 바다가 온다는 말을,
소금기가 남은 꼬리뼈를 믿습니다
훔쳐 온 것들만이 반짝입니다
지상의 명단에는 내가 없기에
나는 나의 줄거리가 됩니다
나는 맨발과 어울립니다
액자를 훔치면 여름이 되고 비둘기를 훔치면 횡단보도가 되는
낯선 버스에서 승객들이 쏟아집니다
멀리서 보면 선인장 더미 같습니다
서로를 껴안자 모래가 흐릅니다
모래가 나의 모국어가 아니듯
빈 침대는 바다에 대한 추문입니다
나는 모르는 햇빛만을 받아 적습니다
혼잣말을 엿들을 때 두 귀는 가장 뜨겁습니다
지도를 꺼내어 펼쳐봅니다
처방전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듣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호주머니가 깊어집니다
[당선소감] 문학은 상상의 세계로 나를 인도해 주는 길잡이
고교 시절 나의 꿈은 양치기였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해적이 되고 싶었으며 광부가 되어 금광을 찾아 떠나고 싶었다.
모두 유아적 상상력에서 비롯된 꿈들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 둘 떠올려 보자면 정말 끝이 없을 것 같다.
이 가운데 비교적 오랜 시간 간직한 꿈이 양치기였는데,
나름대로 현실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조금 웃음이 난다.
돌이켜 보면 내 마음속에 이러한 낯설고 막연한 꿈들을 심어줬던 건 문학이었다.
내 손을 잡고 매번 나를 가장 먼 곳으로 데려갔던 것도 문학이었다.
사실은 꽤 오랫동안 잊어버린 채 지내고 있었다.
세상과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새로움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붙들고 있었던 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분명 양치기를 꿈꾸던 그 때의 두근거림을 기억한다.
아직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 실제로는 드넓은 초원도 양떼도 본 적이 없지만
다시 한 번 믿고 싶다.
시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기를.
다음 주면 이사를 하게 된다.
2년간 살았던 달동네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고 한다.
모두가 떠난 집 앞 골목길에 버려진 가구들이 즐비하다.
익숙한 것들을 버리는 건 참 힘들다.
그러나 어쩌면 삶은 존재보다 더 많은 부재로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를 호명해 주신 황현산, 정끝별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오랜 세월 제게 시가 되어 주신 이천호 선생님 그립습니다.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는 박찬일 교수님, 블랙러시안 같은 오양진 교수님 감사합니다.
이수명 선생님 감사합니다. 내 곁에있어준 사람들과 떠난 사람 모두에게,
늘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과 듬직한 동생 우람이,
나의 피비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심사평]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찬 시편… 독창성·몰입도 탁월
‘신예(新銳)’란 새롭게 등장해 만만찮은 실력이나 기세를 떨치는 대상을 향해 쓰는 말이다.
신예가 될 신인 시인에게 기대하는 우선적 요건을 ‘얼마나 오래 쓸 것인가’에서 찾고자 했다.
오래 쓰기 위해서는 문장이 힘차고,
쓰고 싶고 쓸 수밖에 없는 운명적 열정이 배어나고,
개성적인 스타일을 담보해야 한다.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독창성,
몰입에서 비롯되는 에너지야말로 신인의 요건일 것이다.
본심에 오른 열 분의 작품들은 언어 구사력과 시적 완성도가 돋보였으나
문화적 지표에 기댄 채 포즈화되곤 했다.
시의 세련된 문화화는 모험을 포기한 대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상상 수프’와 ‘10월 삽화’의 시적 가능성은 녹록지 않았다.
전자의 경우 어휘와 문장은 화려하고 세련되었으나 그 강점이 약점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에 대해 응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일상에 대한 섬세한 천착이 믿음직했으나
자기가 감각한 것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되는 설명적 묘사가 나르시시즘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었다.
타자화된 세계를 감각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신동혁의 ‘진단’을 당선작으로 내보낸다.
보들레르에서 이상에 이르기까지, 세계에 대한 병리학적 ‘진단’은 현대시의 오랜 자세다.
지도와 처방전을, 모래와 모국어를,
침대와 바다에 대한 추문을 연결시키는 감각은 풍부하고 그 이미지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 젊은 시인은 “혼잣말을 엿들을 때 두 귀가 가장 뜨거워지는” 부재의 역설을,
“모르는 햇빛만을 받아 적는” 시의 비의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막 탄생하려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의문의 창문들을 열게 끔 설계된 그의 시편들이,
끊임없는 자기 갱신으로 시간의 수압을 잘 견뎌내기 바란다.
심사위원 정끝별 시인, 황현산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