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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의 커피
어느 날
혼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허무해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주위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 이런 마음을
들어줄 사람을 생각하니
수첩에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를
읽어 내려가 보아도 모두가 아니었다
혼자 바람맞고 사는 세상
거리를 걷다 가슴을 삭이고
마시는 뜨거운 한잔의 커피
아!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커피
커피를
마실 때가 좋다.
생각할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커피는
본연의 자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커트루드 스타인·미국 시인)
+ 오후 세시의 커피
오후 세시의 커피는 방장스님의 죽비소리다
뜨거운 한낮 피어나는 배롱나무의 합창이다
그것은 오전 내내 울렸던 요령소리이며
독이 허물 벗어 약이 되는 소리이며
지장보살이 그의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다
나는 쓸쓸히 오후 세시의 커피를 타 마시며
이대로 죽을지라도 허물 벗어
생생한 삶에 이르고 싶을 뿐이다
(고명수·시인, 1957-)
* 배롱나무: 백일홍.
+ 친애하는 커피씨
아침에 눈을 뜨니
문득 오늘의 첫마음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밤사이 잠시
고단한 몸을 침대에 뉘였을 뿐인데
어제의 아침처럼
개운하게 맑지가 않으니
그래서 더 이불 속에서 잠시 주춤이네요
분명 어젯밤 눈을 감을 때
오늘도 열정으로 살리라
마음에 새겼는데
몸이 마음을 배신하는 걸까요?
잠시 무감각의 강을 건너와
첫마음 되돌리기
이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제의 바램처럼
오늘도 열정에 살려구요
친애하는 커피씨
당신은 제게 첫마음입니다
그거 아시죠?
(박노해·시인, 1957-)
+ 연인 같은 커피
습관처럼
하루에 몇 잔씩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마실 때
함께하는 그대 생각에
목젖을 타고 흐르는
쌉싸래한 향이 오히려 감미롭다
바쁜 일상 속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은
내 마음 뜰 안 연인처럼
보석과 같은 평온한 휴식이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엔
오랜 습관으로 중독된 커피처럼
그대 생각도 뗄 수 없는 일상이 되어
진한 커피를 또 한 잔 마신다.
(가향 류인순·시인, 경남 진주 출생)
+ 한밤에 끓이는 커피
물이 끓어오르면서 주전자가
늑대 울음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도 저렇게 울었던 것 같습니다
갈 데 없어 서러운 늑대처럼
사랑을 잃은 그도 저렇듯
우-우우 소리를 냈었지요
못질해 두었던 시간의 가슴을
열어 봅니다 푸르디푸른 별빛!
천 개의 얼음발로 벼랑을 타고 있습니다
아슬아슬 놓였던 발자국마다
일어서는 은빛! 비틀거리는
늑대 가슴엔 아직도 한 개의 달이
우-우우 핏빛입니다
미친 바람이었을 테지요
그 원통한 울림대
밑바닥까지 쑤∼욱 손을 집어넣고
응고 직전의 슬픔 휘휘 저어댔던
회한이 나의 오장(五臟)에서 그의 울음을
검푸른 늑대울음과 합성된
그의 울음, 하늘도 덩달아
울컥울컥 달빛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혜영·시인, 1954-)
+ 커피 리필
가슴으로 당신을 마십니다.
마셔도 마셔도 다함없이 당신이 그리운 건
내 사랑이 계속 리필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날 떠나고 작별을 고했어도
한 삼 년은 너끈히 당신을 가슴으로 마실 수 있습니다.
이토록 저미고 아픈 바에야 물기는 좀 많겠습니까.
눈물로 바닥을 낸다 해도
내 슬픔의 양이 다시 채워지는 건
당신에 대한 내 그리움이 끊임없이 리필되기 때문이죠.
당신…… 다시, 당신을 제게 따라주실 순 없겠습니까.
당신과의 첫 만남과 시작으로 다시 한 번만 제 가슴 가득히 채워주실 수는 없는지요.
커피를 리필시킬 때마다 전 이렇게 당신에 대한 제 사랑도 꼭 리필시키는데.
(김하인·시인, 1962-)
+ 커피 한잔
당신과 맨 처음
다방에서 만났던 그날
작은 찻잔 속의
커피 한잔
그 뜨거웠던 것이
미지근하게 되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내 가슴은
긴긴 날의 냉랭함
먼지같이 털어 버리고
운명 같은 사랑의 예감으로
한순간 불타올랐음을
아마 당신은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아침에 바삐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커피 한잔은
꼭 챙겨 마시는
이제는 오래된
나의 사랑 나의 아내여.
(정연복·시인, 1957-)
커피 한모금 그리움 한방울
빛고운/김인숙
커피 한 모금
떠오른 얼굴
환하게
웃고있는 얼굴 하나
목이 메여온다
가슴이 아려온다
커피잔 커피속에서
웃고있는 그사람
젖어오는 눈망울에
똑
똑
연이어 떨어지는
눈물의 정체는
그 리 움
深夜(심야)의 커피/박목월 1
3 커피 한잔에 담은 고독 / 혜린 원연숙
친구야 커피 한잔 하자 지아 성순자
커피 한잔 행복 나누어 가면서 모두 행복한 마음이 될 거 같아요 행복으로 함께 열어갈 수 가있는 커피 한잔의 행복 / 용혜원
아침에 마시는 커피와 같이 / 오광수
그대와 마주앉아 따뜻한 차 한잔 / 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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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커피
가슴과 마음 겹겹
가제를 걸러 떨어지는
다갈색 물처럼
그대 나에게 떨어져
고인다.
나, 당신을 따라
마시며
아늑해지고
행복해져서
다시 당신이 내 안을
채운다.
당신이
세상에 있는 한
끝까지 나는 그윽하게
그대를 비워
사랑을 마신다.
(김하인·시인,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