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29) 시 합평의 실제 3 - ⑨ 이세진의 ‘옛 운동장 아침스케치’/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
시 합평의 실제 3
경남신문 https://cp.news.search.daum.net/p/126858550/ 24년 미활용 고성 옛 공설운동장, 힐링공원 속 어린이도서관 된다
⑨ 이세진의 ‘옛 운동장 아침스케치’
<원작>
옛 운동장 아침스케치/ 이세진
꼬리를 흔들며 앞장서 가는 꼬맹이와 옛 운동장 입구 언덕을 내려간다.
옛 운동장을 둘러싸고 푸른 잎을 펼쳐대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메타세퀴아 군단, 앙상한 가지만 남아 수명이 다했는가 했더니 봄볕을 받으며 연록색의 잎이 돋아난다.
학생들의 발길이 머물던 운동장을 가득 메운 나무 위를 참새 떼가 날아다닌다.
스탠드 계단 곳곳엔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있고 백의의 천사들에게 캡을 올려주던 중앙 본부석엔 술병과 비닐봉지가 널려 있다.
남쪽 풀밭, 염소와 닭들이 풀을 뜯으며 가운데로 모여든다. 갑자기 닭 한 마리 꼬꼬댁 비명을 지르며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고 염소가 씩씩거리며 쫓아간다.
<합평작>
옛 운동장 스케치/ 이세진
꼬리를 흔들며 앞장서가는 반려견과
옛 운동장 입구 언덕을 내려간다.
푸른 잎을 펼치며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매타 세퀴이아,
앙상한 가지만 남았더니 봄볕을 받으며
연록의 잎이 돋아난다.
학생들의 발길이 머물던 운동장을
가득 메운 나무 위로 참새 떼가 날아다닌다.
스텐드 곳곳 계단엔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
백의의 천사들에게 캡을 올려주던 중앙 본부석엔
술병과 비닐봉지가 널려 있다.
염소와 닭들이 풀을 뜯으며 남쪽 풀밭 가운데로 모여든다.
달 한 마리가 꼬꼬댁거리며 나뭇가지 위로 날아가고
염소가 씩씩거리며 쫓아간다.
<시작노트>
강아지 꼬맹이와 함께
자주 들르던 운동장을 찾아갔습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고
늙은 소년만이 서 있었습니다.
감정을 이입하지 않은 채
스케치하듯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것도
시가 될는지요?
<합평노트>
행과 연의 배치를 전폭적으로 수정합니다.
산문형식과 운문형식을 섞어 배치하는 것은 간결함 뒤에 유장미를 느낄 수 있고,
유장함 뒤에 함축된 이미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시를 역동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운문형식으로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연의 ‘메타세퀴아’는 ‘메타세퀴이아’로 수정합니다.
이 나무는 외래종으로서 이름 역시 외래어인데, 외래어도 맞춤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즉, ‘텔레비젼’인 줄 알고 있지만, 맞는 표현은 ‘텔레비전’입니다.
또 ‘비젼’인 줄 알고 있는 것도 맞는 표현은 ‘비전’입니다.
이처럼 시를 쓴다는 것은 외래어 하나에도 맞는 표기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몇 군에 수정해놓고 보니 시각적으로 훨씬 부드럽고 융통성 있게 보이는군요.
시는 내용도 좋아야 하지만,
형식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독자의 공감을 얻는 데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한 장의 스케치에 불과한 듯하지만, 이런 시도 가능합니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주관적인 감정의 이입 없이 보여주기만 하더라도 풍경이 스스로 시적감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풍경으로 하여금 그렇게 움직이도록 추동하는 것은 전적으로 시인의 능력일 것입니다.
<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안현심, 도서출판 지혜, 2021)’에서 옮겨 적음. (2023. 3.17.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29) 시 합평의 실제 3 - ⑨ 이세진의 ‘옛 운동장 아침스케치’/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