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속에 맞는 크리스마스(박성훈)
일 주일 전 크리스마스트리 농장을 관리하는 형제 대니엘이 들뜬 목소리로 “올해는 우리가 심은 크리스마스트리로 성탄절 장식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라며 공동식사 시간에 광고를 하자 모두가 와 !하며 즐겁게 함성을 질렸습니다. 우리 모두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쁜소식이었습니다.
7년 전 손바닥만한 작은 나무를 구해다 그동안 여러 형제들의 땀과 수고로 크리스마스트리를 키웠습니다. 처음 어느 누구도 나무 심는 일을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여러 해가 지나가면서 조금씩 나무 심는 일을 알아가기 시작했지요. 저도 7년동안 이 일을 돕다보니 이제는 크리스마스트리 전문가가 다 된 기분입니다.
우리 공동체에서는 해마다 이웃이나 펜실베니아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주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부터 우리가 직접 기른 나무들 중에서 가족들이 함께 나무를 선택하고 톱으로 잘라 집까지 운반하는 가족 프로젝트가 되어 우리에게 새로운 행복을 가져다 주는 크리스마스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토요일 그랜드 오픈식 날입니다. 농장 문을 여는 시간은 오후 한 시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조금 늦게 갔더니 이미 많은 이들이 와서 나무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트리 농장문에 다가가자 흥겨운 캐롤송이 울려 펴지고, 사이먼과 지니 부부는 가을에 수확해 놓은 밤을 열심히 바베큐 그릴에 굽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얼음이 꽁꽁 얼던 추운 겨울날 어머니께서 방안 화로에서 구워주시던 군밤 생각도 나고, 매서운 바람이 쌩쌩 불어 추운 거리를 벙어리장갑 낀 손으로 귀를 막으며 걸어가다 보면 어디선가 군밤장수의 외침이 들려오던 생각도 나 나무 고르는 것을 제쳐두었습니다. 그러고는 인심 팍팍 쓰며 맛난 군밤을 공짜로 나누어 주는 군밤장수 주위에 몰려 있던(사실 이곳은 모든 것이 공짜입니다.^^)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구운 밤을 한 끼 식사를 하듯 엄청나게 먹었습니다.
군밤에 눈길을 판 순간에 이미 많은 가족들은 저마다 좋아보이는 트리를 열심히 자르고, 어린 새 나무를 심기 위해 뿌리를 삽이나 괭이로 파내고 있었습니다. 같은 가족이라도 각자 취향이 달라 이 나무도 살펴보고 저 나무도 살펴보며 모두가 마음에 드는 나무를 선택해야하는 일이 여간 쉽지가 않아 보입니다. 나이 든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들이 골라 놓은 나무들을 중고등학생들이 자르고 뿌리도 파내고 집까지 배달해 주는 모습에 마음이 흐뭇해 옵니다.
우리 가족도 그 많은 나무 중에 가장 폼난 놈을 골라 톱으로 자르고 유빈이는 친구의 도움으로 남은 뿌리를 파냈습니다. 자른 나무를 손수레에 실어 집으로 가지고 와 거실 한 쪽에 세웠습니다. 거실 전체에 그윽한 전나무 향이 퍼져 아로마 향을 맡듯 내 마음도 평안해지고 느긋하게 쉬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세상에서 하나뿐인 근사한 성탄절 트리에 아내가 장식할 일만 남았습니다.
아내는 하빈이가 블랙월넛 나무로 만든 목동, 천사, 동방박사, 아기 예수등의 장신구와 유빈이가 도토리를 말려 빨갛게 칠한 작은 종들과 뾰족한 나무 열매로 만든 별들을 걸었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오렌지를 말려 크리스마스 전등위에 걸쳐 놓으니 오렌지빛 스테인드 글라스같이 은은한 빛이 비치는 것이 상큼한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동그랗게 엮은 포도가지 위에 크리스마스 나무잎과 솔잎으로 감싸 리스를 만들어 조그맣고 빨간 사과도 달고, 부패되지 않도록 소금과 계피를 엄청 넣어 구운 별모양 과자도 달고, 하빈이의 나무 장신구도 달아 놓아 천장에 걸어 놓으니 집안 가득 아늑하고 포근한 것이 제 마음도 따뜻해 지는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주일은 Advent(대강절)이 시작되는 첫번째 날입니다. Advent는 아기 예수님이 오시기 전 4주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매 주 Advent마다 하나씩 초를 더해 크리스마스 전 주일에는 4개의 초를 밝혀 아기예수의 오심을 축하합니다. 이곳에서는 첫 번째 Advent 주일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날이기 때문에 주일 날 아침 7시부터 몇몇 브라스밴드 형제들이 트럼펫과 트럼본 등의 악기로 아기예수님 맞을 준비하라고 캐롤송을 연주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하나 둘씩 공동체가 함께 식사하는 식당 앞으로 모두 모여 들어 ‘Happy Advent’라며 서로 악수하며 인사합니다. 8시 식당 문이 열리면 모두 함께 들어가 빨간 초와 크리스마스 나무 잎으로 멋있게 장식한 테이블에 각 사람의 이름이 이쁘게 쓰여진 이름카드를 찾아가 앉습니다. 식당 벽에는 유빈이네 반 아이들이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그림들을 비 왁스를 이용해 염색한 천을 걸어 놓았습니다. 유빈이는 작은 아기예수의 구유에 큰 별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멋지게 염색했네요. 드디어 Advent calendar(대강절 달력)을 여는 시간입니다. Advent calendar는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 25일 간을 달력으로 만들어 하루씩 여는 것인데 매일 어린아이들이 달력 상자를 열면 천사와 목동 등의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것이 들어있습니다.
금년에는 청년들이 하늘의 문이 열리고 야곱의 계단이 예수님이 태어날 마굿간으로 연결되는 걸 설치했습니다. 한 어린 아이가 나와 달력 상자를 열자 천사가 나와 야곱의 계단 맨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성탄절엔 마굿간에 마리와 요셉, 그리고 아기예수가 놓여질 것을 상상해 봅니다.
공동체 식구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나자 샵에서 함께 일하는 존과 미리암이 나와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성경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얼마 전 존의 아내 미리암이 계속 몸이안 좋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심장에 희귀하게 생기는 암에 걸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문제는 심장에 있는 암을 치료하다가 다른 기관들을 크게 손상시킬 수 있기에 의학적으로는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미리암은 제 아내하고도 몇년을 같은 일터에서 일하며 늘 친 엄마같이 공동체 많은 자매들을 돌보아 왔기에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존과 미리암이 아프기 전에는 자녀들은 전 세계 공동체에 흩어져 있다가 지금은 자녀들 모두가 미리암 곁에 있습니다. 미리암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가족들과 형제들과 보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아니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고 있는 미리암은 우리 모두에게 격려와 도전을 줍니다.
“저는 지금까지 형제자매로 여러분과 함께 살면서 오늘같이 더불어 사는 삶이 이처럼 소중하게 느껴본 적이 없어요. 우리는 가끔 이 소중함을 잊거나 형제자매를 진정으로 존중하지 않고있어요. 우리가 더 마음을 열어 형제자매를 한몸으로 받아들이고 진실하게 사랑하면 우리가 사는 이곳을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난 여러분들을 더 사랑하고 기쁘게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고 싶어요.”
미리암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안 얼마 후 우리는 유치원생부터 어른들 모두가 참여하는 예배가 있었습니다. 예배실 한 가운데 나무농장에서 잘라 온 크리스마스트리 위에는 초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유치원생 아이들이 천사의 옷을 입고 크리스마스트리 주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다 함께 성탄절 노래를 부르고 나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인 싱글 자매 이바가 암이 온 몸에 퍼지고 있어서 언제까지 살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였습니다. 이바의 나이는 겨우 50살을 넘겼습니다. 미리암의 소식에서 채 헤어나오지도 못했는데 이바의 소식은 우리에게 큰 충격과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말씀하시길 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가르치는 유치원 아이들과 같이 앉아 있던 이바는 밝게 빛나고 있는 트리 앞에 서서 “나는 내 생명이 주어지는 날까지 가능하면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크리스마스가 다가 오고 있어요. 그 누구도 크리스마스를 막을 수 없어요”라고 고백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성탄 노래를 불렀습니다.
얼마 후 이바는 아이들과 함께 성탄 연극을 준비했습니다. 온갖 동물들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굿간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천사가 지키는 한 동굴을 지나야 하는데 그 동굴은 너무 낮아 자신을 낮추어야만 통과할 수 있어 교만하던 낙타도 자신이 가진 모든 자랑거리를 버리고 몸을 낮추고 무릎을 끓고 통과해 아기 예수님께 나아가 경배하게 됩니다. 이바는 아이들을 안으면 가슴에 통증이 심해 아이들을 더 이상 안아줄 수 없어 안타까워했지만 연극 내내 함께 했습니다.
미리암과 이바는 우리의 마음을 어린 아이 같이 부드럽게 하고 낮추어 아기 예수께 나오라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메세지였습니다. 이 두 자매의 삶은 우리가 자주 부르는 성탄 노래 ‘베들레헴까지는 얼마나 먼가 How far is it to Bethlehem’을 연상케 합니다.
베들레헴까지는 얼마나 먼가
그리 멀지 않지
별이 비치는 마굿간을 찾으러 갈까
어린 아기를 볼 수 있을까
그 안에 있을까
나무 빗장을 열면 들어가게 될까
마굿간에 있는 황소와 당나귀와 양을 쓰다듬어도 될까
마굿간 동물들처럼 아기 예수가 잠든 것을 엿볼 수 있을까
아주 조그마한 손을 만진다면 아기가 깰까
아기를 만나기 위해 우리가 이렇게 먼 길을 온 걸 알까
동방박사들은 귀중한 선물을 가지고 있지만 우린 아무 것도 없네
작은 미소와 작은 눈물이 우리가 가져온 전부지
모든 지친 아이들을 위해 마리아는 울어야 하네
여기 짚으로 만든 아기 침대에
잘 자라 아이들아 잘 자라
요람에 있는 아기같이 하나님이 어머니 품속에 있네
마음 속 갈망을 이룬 자들이 자듯
잘자라
Happy Adv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