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아스트랄체 뒤에 감춰진 힘을 향해 밀고 나감으로써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정복하는데, 같은 일이 에테르체의 발달과정에서도 나타난다(비밀힉 개요, 2024, 77)."
슈타이너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는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이다.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란 인간의 정신을 발달시키는 요소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내가 만약 나의 정신을 발달시키고자 한다면, 이러한 정신과학적 요소를 발달시키면 된다. 문제는 어떻게 발달시키는가이고, 그 방법이다. 먼저 말하면 정신과학적 요소가 발달하면 상상적 인식, 영감적 인식, 그리고 직관적 인식이 발달한다. 즉 우리가 늘 얻고자 하는 상상, 영감, 직관이 사실 인간 정신이 발달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나의 정신과학적 요소를 발달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발달시킬까? 이것이 질문이다.
다음은 여담으로 필자의 관련 경험이다. 필자는 사주를 따르지는 않지만 궁금하기는 하다. 구체적으로 과연 사주가 있느냐와 또 사주대로 살아가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필자의 20대 무렵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어떤 집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 집앞에는 맹인 한분이 쪼그리고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었던 듯하다. 무심코 그 앞을 지나가는데, 맹인이 필자의 사주를 봐주겠다고 하면서, 사주를 물었다. 순간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지만, 맹인분이 진지한 듯해서 가르쳐주었다. 맹인은 자신의 손가락을 짚으면서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필자를 보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주를 가졌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집앞을 지나가달라고, 필자가 지나가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주란 어떤 사주일까'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두 번째는 첫 번째 의문을 가진지 20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당시 필자가 몸이 안좋아서 고려 수지침을 뜨러 다녔는데, 그날도 가게에 가서 뜸을 뜨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가게 주인의 스승이라고 하는 분이 오셔서 수강생들에게 사주 특강을 하였다. 필자가 구석에 조용히 읹아 뜸을 뜨면서 가만히 들어보니, 필자의 사주를 가지고 수강생들에게 사주를 풀었다. 순간 놀랐지만 잠자코 들었다. 필자는 음력 4월에 태어나서 맑고 따뜻한 물인데, 그 물을 다른 사람들이 와서 자꾸 더럽힌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더러워진 물을 다시 깨끗하게 해야 하니 힘이 들고, 즉 누군가 계속 필자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동안 필자의 주위 사람들이 와서 계속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다. 그러면 그 이유도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이유는 가르쳐 주지 않고 특강이 끝났다.
필자는 따로 묻지 않고 이를 의문으로 가슴속에 가만히 간직했다. 예컨대 필자는 주위 사람들을 '절대' 괴롭히지 않는데. 왜 주위 사람들은 필자를 자꾸 괴롭힐까? 그리고 이를 맹인이 푼 사주와 연결했다. 필자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므로, 다른 사람들은 필자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에게 다른 사람들이 고마워해야 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필자를 괴롭힐까. 이렇게 두 의문이 연결되자, 오랜 시간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요즈음 필자의 수준으로 풀렸다. 이것은 아주 미세하게 필자의 정신기관이 발달한 때문인 듯도 하다. 물론 필자의 수준이 아직 낮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을 수는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필자의 문제점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의 문제도 못 풀었는데 다른 사람에까지 관심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것은 필자의 한계를 넘어선다.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은 필자가 도움이 되므로 관심을 가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관심이 없으므로 같이 놀자고 하다가, 그것이 괴롭힘으로 나아간다는 생각, 즉 직관이 들었다. 물론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안 갖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지 못하므로, -이를 불가에서는 어리석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한다. 그렇다고 해도 필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여전히 여려운데, 왜냐하면 아직까지 필자의 문제를 풀고자 함이 더 강하기 떄문이다. 필자가 가진 의문이 다 풀릴려면 완전한 깨달음, 지혜를 얻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얻지 못한 것이다. 다소 의문이 풀리자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 놓여졌다. 이것이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이다.
다음은 이렇게 하는 것, 즉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 문제인 이유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얻고자 할려면 다른 사람이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간섭인데, 그럴려면 내가 계속 그 사람을 간섭해야 한다. 예컨대 이렇게, 저렇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계속 시선이 가있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되면은 나의 정신이 발달하지 못한다. 예컨대 내 다리가 아프면 치료를 해야 한다. 그럴러면 먼저 내 다리에 시선이 가 있어야 아픈지를 안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내 마음이 어떤지를 살펴야 하고, 그럴려면 내 마음에 나의 시선이 가 있어야 내 마음 상태를 알아서 치료를 한다. 이렇게 정신이 발달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시선이 가 있으면, 나의 정신이 발달하기는 거의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상태의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사람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사는 것은 정신이 발달하지 않고 멈추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보지 않으니 자신의 정신이 발달하지 않고, 그래서 현재의 삶에서 쳇바퀴를 계속 도는 것이다. 정신이 발달하면 세상이 보이고, 그 세상을 살펴서 살아갈 수가 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속세에 나와서 자신의 삶, 꿈을 펼치는 것은 세상(이치)을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위 문장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스트랄체 뒤에 감춰진 힘을 밀고 나감으로써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정복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 아스트랄체 뒤에 감춰진 힘을 밀고 나가야 한다. 둘째 아스트랄체를 정복해야 한다이다. 아스트랄체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여서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한다. 즉 어떤 장애물이 없으면 계속해서 나아간다. 먼저 말하면 이런 아스트랄체를 계속 밀고 나아가는 힘은 자신의 의지이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로 영혼의 바탕이다. 누구라도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감정이 열정과 사랑을 갖고 있다면, 아스트랄체가 밀고 나아가는데 힘이 된다. 반면 무기력하고 의지가 없으면, 아스트랄체 역시 그럴 것이다. 즉 어떤 일을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하면 아스트랄체 역시 그런 아스트랄체가 되는 것이다. 아스트랄체 뒤에 감춰진 힘이란 이런 힘이다. 그러므로 하기 싫고 힘든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정복해야 한다. 요컨대 아스트랄체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하면, 그런 아스트랄체가 된다.
다음은 '같은 일이 에테르체에서도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에테르체는 의식이 없는 잠자는 상태이다. 이런 에테르체에 의식이 들어오게 하고, 빛처럼 빛나게 하는 존재가 아스트랄체이다. 중요한 것은 에테르체가 우주 지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에테르체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에테르체를 잠에서 깨워야 한다. 그 역할을 아스트랄체가 하므로 먼저 아스트랄체에 힘이 있어야 하고, 그 힘을 내가 불어넣어 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스트랄체를 통해서 에테르체를 깨웠다고 해도, 에테르체를 아스트랄체와 마찬가지로 내가 정복해야 한다.
그 방법이 아스트랄체와 마찬가지로 의지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에테르체는 습관이나 기억을 담당한다. 예컨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가질려면 에테르체에 각인이 되어야 한다. 즉 에테르체에 습관이 되어야 아침 일찍 일어난다. 에테르체에 습관이 될려면 꾸준히 오랜 시간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아스트랄체와 같은 방법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드디어 자아가 등장한다.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를 통솔하고 견인하는 존재가 자아이다. 문제는 자아가 깨어있는 현실의 삶에서 상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자아가 상속에 들어있으니 우리 인간은 상속에 들어있는 자아만 만난다. 그러므로 현실의 삶에서 내가 나의 자아를 이끌고 통솔해야 한다. 가장 중요하고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종교의 계율을 지키는 일이다. 종교의 계울만 지키면, 그나마 자아가 상속에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즉 정신의 속성에 어긋나지 않으므로 자아가 덜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쓰는 이유는 필자의 아스트랄체가 조금이나마 발달해서 그 촉수가 정신세계로 향했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아스트랄체의 촉수가 밖을 향하면 정신세계에 발들 들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필자의 의문을 다소나마 파악하였을 것이다. 통상은 아스트랄체의 촉수가 자신의 내부로 향해 있다. 하지만 의지를 통해서 밀고 나가면 아스트랄체의 촉수가 밖을 향한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의문을 갖는 것이고, 이런 의문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신세계로의 입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