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으로 읽는 수요 말씀 ◈
신앙의 징검다리: 사도들과 동행하기- 베드로의 보고! (9월 21일)
본문: 사도행전 11:1-18 주관/기도- 남신도회/이기봉님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벌인 일들은 당시 관점으로 보면 엄청난 모험과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이를 피하지 않았고, 세례를 베풀기까지 하였으며, 심지어 며칠 더 묵기도 했습니다.(48절)
이 소문은 금방 번졌습니다. 고넬료 입장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위험한 것이었지만 베드로에 대한 억압이 더 심각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여기서 종교가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보수성과 집단 이기심을 보게 됩니다. 사실 종교는 ‘내 것, 내 믿음, 내 판단’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당시엔 유대교가 대세였고, 그 외의 종교와 신앙자들은 대척점에 놓인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를 깬 것이죠. “할례를 받지도 않은 사람의 집에 가서 음식을 먹고...”
이런 지적의 중심에는 믿음은 없고 율법만 있습니다. 사실 누군가를 핍박하고 억압할 때 사용된는 건 믿음이나 논리와 상식이 아니라 눈에 드러나는 율법, 규율, 관습입니다. 자신들도 잘 지키지 않은 원칙을 앞세워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상황을 설명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야기하는 대신 자신이 본 환상을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이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임을 그들에게 말하고자 한 겁니다. 그리곤 16절을 내용을 끄집어내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일임을 강조합니다. 베드로가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얼마나 지혜롭고 성숙해졌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베드로의 말에 사람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누가 토를 달고 화를 내겠습니까.
12절 말씀에 집중해봅시다. 앞의 10장 23절에서는 베드로가 고멜료의 초청을 받고 “욥바에 있는 신도 몇 사람도 그와 함께 갔다.”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11장 12절에는 “성령이 내게,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우리는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갔습니다.”라고 합니다. 아주 명쾌하게 동행자 숫자를 말하고 있죠. 왜일까요? 이는 유대인들이 잘 아는 애굽의 법률에 의하면, 어떤 사건을 완전히 증명하기 위해선 일곱 명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이용한 겁니다. 당시 로마도 이 법률을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나는 지금 당신들에게 변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이며 증거가 확실하다.”라는 걸 은연중 내세우는 겁니다.
기독교의 증명은 항상 사실에 입각합니다. 누가 말과 논리로만 증명하고 자랑한다면, 말과 논리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때 엄청난 불신과 파장을 야기하게 됩니다. 반대로 누군가의 말이 행위 위에서 보증되었을 때 세상은 인정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존재하는 건 말과 논리가 아닌 행위와 삶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점점 약화 되는 추세여서 안타깝습니다.
기독교의 적은 다른 종교가 아닙니다. 선교의 대상도 다른 종교를 지닌 사람이 아닙니다. 말과 논리만 가지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행위와 행동 위에 있지 않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불신입니다.
어느 기독교인의 말이 행위에 의해 보증될 때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와 논쟁을 하거나 비판을 하는 건 쓸데없는 것임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어느 누구’란 바로 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