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우(忘憂), 시간을 품은 언덕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는 동구릉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건원릉(健元陵)을 비롯해 9개의 왕릉이 경복궁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구릉이다.
동구릉에서 서울로 오면서 만나는 고개가 망우리고개다.
태조는 자신이 묻힐 묘를 정하고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이 고개에서 쉬면서 오랫동안의 근심을 잊었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망우리(忘憂里)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물론, 정사의 기록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지만 '망우'라는 지명의 유래는 이렇다.
이 고개는 조선의 왕들이 건원릉을 포함해 동구릉으로 제사 지내러 다니던 능행길이었다.
궁궐에서 나와 동대문-동묘(신설동)-보제원(안암동)-종암동 입구-안락현 또는 봉화산 뒷길(화랑로)-신내동·망우동 박수고개-양원리-망우령(중앙선 망우리 터널)-동구릉의 순서로 이동하는 것이 보통의 경로였다.
우리의 장례 관습은 매장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자신들이 정한 공동묘지 외에는 묘를 쓰지 못하게 했다.
1920년대 전후로 경성의 동서남북(신당리, 아현리, 이태원, 수철리)에 경성부립 공동묘지가 조성됐다.
그러나 사대문 밖 묘지가 부족해지자 1933년 일제는 망우리 일대 임야 75만 평을 사들이고 그중 52만 평을 묘역으로 조성했다.
왕릉으로 이어지던 땅은 이렇게 ‘망자의 공간’이 됐다.
여기에 모셔져 있는 근현대 역사문화 인물들은 면면이 화려하다.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소파 방정환, 죽산 조봉암, 호암 문일평, 시인 김영랑, 화가 이중섭, 가수 최중락 등의 묘가 있다.
6·25전쟁 때 가매장된 무연고 시신도 이곳으로 옮겨졌다.
1973년에 이르러 공간 부족으로 더는 묘를 받지 않기까지 40년 동안 4만7754기가 들어섰다.
1990년대 들어 이곳에 묻힌 위인들을 기리자는 움직임이 이어졌고, 1997년부터 독립운동가와 예술인 등 15명의 무덤 주변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1998년 공원화 사업을 통해 망우리공원이 됐고, 4.7㎞의 산책로가 조성됐다.
그 사이 지속적인 이장으로 분묘는 6209기까지 줄었다.
2022년엔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개편됐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상봉역, 양원역 등 몇몇 지하철역을 오가는 셔틀버스(무료)를 이용하는 게 좋다.
셔틀버스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14회 운행한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공원 초입 망우카페에서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이태원묘지 무연분묘다.
1930년대 일제는 이태원공동묘지에 있던 무연분묘 2만8000여 기를 화장해 이곳으로 합동 이장했다.
1919년 만세운동을 하다가 투옥돼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1902~1920)의 묘도 포함돼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관순 열사는 사망 직후 이태원 공동묘지에 비석도 없이 매장됐다. 3·1운동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후손이 없었기 때문에 무연분묘로 처리됐을 것이다.
다시 큰길로 걸어나와 오르막길을 걷는다.
공원은 망우산(높이 282m) 자락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조성했는데, 둘레길 양쪽으로 여러 개의 샛길을 내 역사 속 인물들의 묘소를 갈 수 있다.
오른쪽 아래 박인환(1926~1956) 시인의 묘로 향한다.
그는 천재 시인 이상의 추모제에 참석해 폭음한 뒤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고 잠든 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관 속에는 생전 좋아했던 조니 워커와 카멜 담배를 넣어주고 흙을 덮었다고 한다.
묘 앞에는 동료 시인들이 힘을 모아 세운 작은 시비가 있는데, 박인환이 갑자기 사망하기 며칠 전 쓴 시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묘 앞 조그만 꽃병에는 사람들이 꽂아놓은 꽃이 있다.
박인환의 묘소를 지나 순환로로 이어진 흙길을 200m가량 따라 가면 이중섭(1916~1956)의 묘를 만난다.
이중섭은 전쟁 통에 담뱃갑 은박지에 헤어진 가족을 그렸었다.
꿈에도 그리던 두 아들의 모습이 삼각 비석 위에 담겨 있다.
시인 김영랑(본명 김윤식·1903~1950)의 묘역의 시비에는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비롯한 주요 작품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김영랑은 6·25전쟁 당시 포탄 파편에 맞아 운명했다.
전쟁 중이라 가족은 그를 신당동 자택 가까운 한남동 남산 기슭에 유택을 가매장했고, 휴전 이듬해인 1954년 망우리에 이장했다.
1989년 아내 안귀련이 타계하자 이듬해 3월 아내 곁인 천주교추모공원으로 옮겼다가 다시 망우동으로 돌아왔다.
순환로를 한바퀴 돌면 소파 방정환, 만해 한용운 선생,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묘소에 들를 수 있다.
순환로 중간에는 ‘망우전망대’가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여기에서는 중랑구의 모든 건물, 북한산부터 수락산·불암산까지 푸른 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태조는 이 고개에서 근심을 잊었다고 했다.
지금의 망우는 잊는 곳이 아니라, 잊고 지냈던 사람들과 시간을 다시 떠올리는 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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