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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3
5. 유자소전(兪子小傳)
이문구
〈전략〉
5
1970년, 내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예총회관의 문인협회 사무실에서 협회 기관지 「월간 문학」을 편집하고 있을 어름이었다.
어느 날 난데없이 유자가 불쑥 찾아왔다. 10년도 넘어 된 해후였다. 이산(怡山)의 시처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했더니, 그는 재벌 그룹 총수의 승용차 운전수가 되고, 나는 글이라고 끄덕거려 봤자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가 없는 무명작가가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가 잡지를 보다가 우연히 나를 알아보고, 그 잡지사에 전화로 내 소재를 찾는 번거로운 절차를 무릅쓰고 찾아온 데에는 그 나름의 속셈이 한 가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대학 교수의 부인이 된 자기 누이동생을 내게 중매해 봤으면 하고 찾아본 것이었다. 아니, 결혼을 하면 처자를 굶길 놈인지 먹일 놈인지 우선 그것부터 슬쩍 엿보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해가 바뀌어 그 누이동생을 여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말을 내게 하였다. 그는 처음 만났던 날 저녁에 내가 말술을 마시고도 양에 안 차 하는 데에 질려서 대번에 가위표를 쳐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다 본 책이 있으면 달라고 하여 번역판 〈사기(史記)〉를 한 질 주었더니, 그 후부터는 올 때마다 책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잡지사 편집실에는 사시장철 기증본으로 들어오는 책만 해도 이루 주체를 못하도록 더미로 답쌓이기 마련이었다. 그는 오는 족족 자기 욕심껏 그 책더미를 헐어갔다. 장근 17년 동안 밥상머리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그의 열정적인 독서 생활이야말로 실은 그렇게 출발한 것이었다.
또 책 때문에 오는 것만도 아니었다. 직장에서 답답한 일이 있으면 터놓고 하소연할 만한 상대로서 나를 택했던 것도 비일비재의 경우에 속하였다.
하루는 어디로 어디로 해서 어디로 좀 와보라고 하기에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귀꿈맞게도 붕어니 메기니 하고 민물고기로만 술상을 보는 후미진 대폿집이었다.
나는 한내를 떠난 이래 처음 대하는 민물고기 요리여서 새삼스럽게도 해감내가 역하고 싫었으나, 그는 흙탕내도 아니고 시궁내도 아닌 해감내가 문득 그리워져서 부득이 그 집으로 불러냈다는 것이었다.
“허울 좋은 하눌타리지, 수챗구녕 내가 나서 워디 먹겄나, 이까짓 냄새가 뭐시 그리워시 이걸 다 돈 주고 사먹어. 나 원 참, 취미두 별 움둑가지 같은 취미 다 있구먼.”
내가 사뭇 마뜩찮아했더니,
“그래두 좀 구적구적헌 디서 사는 고기가 하꾸라이버덤은 맛이 낫어.”
하면서 그날사 말고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자지 주장에 완강할 때는 반드시 경험론적인 설득 논리로써 무장이 되어 있는 경우였다.
“무슨 얘기가 있는 모양이구먼.”
“있다면 있구 웂다면 웂는디, 들어볼라남?”
그는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총수의 자택에 연못이 생긴 것은 그 며칠 전의 일이었다. 뜰 안에다 벽이고 바닥이고 시멘트를 들이부어 만들었으니 연못이라기보다는 수족관이라고 하는 편이 알맞은 시설이었다. 시멘트가 굳어지자 물을 채우고 울긋불긋한 비단잉어들을 풀어놓았다.
비단잉어들은 화려하고 귀티 나는 맵시로 보는 사람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으나, 그는 처음부터 흘기눈을 떴다. 비행기를 타고 온 수입 고기라서가 아니었다. 그 회사 직원의 몇 사람치 월급을 합쳐도 못 미치는 상식 밖의 몸값 때문이었다.
“대관절 월매짜리 고기간디 그려?”
내가 물었다.
“마리당 팔십만 원쓱 주구 가져왔다.”
그 회사 직원들의 봉급 수준을 모르기에 내 월급으로 계산을 해 보니, 자그마치 3년 4개월 동안이나 봉투째로 쌓아야 겨우 한 마리 만져볼까 말까 한 값이었다.
“웬늠으 잉어가 사람버덤 비싸다나?”
내가 기가 막혀 두런거렸더니,
“보통 것은 아닐러먼 그려. 뱉어낸벤또(베토벤)라나 뭬라나를 틀어주면 또 그 가락대로 따라서 허구, 차에코풀구싶어(차이코프스키)라나 뭬라나를 틀어주면 또 그 가락대루 따라서 하구, 좌우간 곡을 틀어주는 대로 못 추는 춤이 웂는 순전 딴따라 고기닝께. 물고기두 꼬랑지 흔들어서 먹구사는 물고기가 있다는 건 이번에 그 집에서 츰 봤구먼.”
그런데 이 비단 잉어들이 어제 새벽에 떼죽음을 한 거였다. 자고 일어나 보니 죄다 허옇게 뒤집어진 채로 떠 있는 것이었다.
총수가 실내화를 꿴 발로 뛰어나왔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한동안 넋나간 듯이 서 있던 총수가 하고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유자를 겨냥하며 물은 말이었다.
“글쎄유, 아마 밤새에 고뿔이 들었던개 비네유.”
유자는 부러 딴청을 하였다.
“뭐야? 물고기가 물에서 감기 들어 죽는 물고기두 봤어?”
총수는 그가 마치 혐의자가 되는 것처럼 화풀이를 하러 드는 것이었다.
그는 비위가 상해서,
“그야 팔자가 사나서 이런 후진국에 시집와 살라니께 여러 가지루다 객고가 쌓여서 조시두 안 좋았을 테구…그런디다가 부룻쓰구 지루박이구 가락을 트는 대루 디립다 춰댔으니께 과로해서 몸살끼두 다소 있었을 테구…본래 받들어서 키우는 새끼덜일수록이 다다 탈이 많은 법이니께….”
그는 시멘트의 독성을 충분히 우려내지 않고 고기를 넣은 것이 탈이었으려니 하면서도 부러 배참으로 의뭉을 떨었다.
“하는 말마다 저 말같잖은 소리…시끄러 이 사람아.”
총수는 말 가운데 어디가 어떻게 듣기 싫었는지 자기 성질을 못이기며 돌아섰다.
그는 총수가 그랬다고 속상해할 만큼 속이 옹색한 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에 들은 말만은 쉽사리 삭힐 수가 없었다.
총수는 연못이 텅 빈 것이 못내 아쉬운지 식전마다 하던 정원 산책도 그만두고 연못가로만 맴돌더니,
“유기사, 어제 그 고기들은 어떡했나?”
또 그를 지명하며 묻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한 마리가 황소 너댓 마리 값이나 나간다는디, 아까워서 그냥 내뻔지기두 거시기 하구, 비싼 고기는 맛두 괜찮겄다 싶기두 허구…게 비눌을 대강 긁어서 된장끼 좀 허구, 꼬치장두 좀 풀구, 마늘두 서너 통 다져 놓구, 멀국두 좀 있게 지져서 한 고뿌덜씩 했지유.”
“뭣이 어쩌구 어째?”
“왜유?”
“왜애유? 이런 잔인무도한 것들 같으니….”
총수는 분기탱천하여 부쩌지를 못하였다. 보아하니 아는 문자는 다 동원하여 호통을 쳤으면 하나 혈압을 생각하여 참는 눈치였다.
“달리 처리헐 방법두 웂잖은감유.”
총수의 성깔을 덧드리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그 방법 말고는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뒷동을 달은 거였다.
총수는 우악스럽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아랫것들하고 따따부따해 봤자 공연히 위신이나 흠이 가고 득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숨결이 웬만큼 고루잡힌 어조로,
“그 불쌍한 것들을 저쪽 잔디밭에다 고이 묻어 주지 않고, 그래 그걸 술안주해서 처먹어버려? 에이…에이…피두 눈물도 없는 독종들….”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 지져 먹어보니 맛이 워떻타?”
내가 물은 말이었다.
“위떻기는 뭬가 워뗘…살이라구 허벅허벅헌 것이, 똑 반반헌 화류곗년 별맛 웂는 거나 비젓허더먼 그려.”
하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독종이면 저는 말종인디…좌우지간 맛대가리 웂는 서양 물고기 한 사발에 국산욕을 두 사발이나 먹구 났더니, 지금지금허구 해감내가 나더래두 이런 붕어지지미 생각이 절루 나길래 예까장 나오라구 했던겨.”
총수는 그 뒤로 그를 비롯하여 비단 잉어를 나눠 먹었음직한 대문 경비원이며, 보일러실 화부며, 자녀들 등하교용 승용차 운전수며, 자낵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에게는 조석으로 눈을 흘기면서도, 비단 잉어 회식 사건을 빌미로 인사 이동을 단행할 의향까지는 없는 것 같았다.
그는 하루바삐 총수의 승용차 운전석을 떠나고 싶었다. 남들은 그룹 소속 운전수들의 정상이나 다름없는 그 자리에 서로 못 앉아서 턱주가라가 떨어지게 올려다보고들 있었지만, 그는 총수가 틀거지만 그럴 듯한 보잘 것 없는 위선자로 비치기 시작하자, 그동안 그런 줄도 모르고 주야로 모셔 온 나날들이 그렇게 욕스러울 수가 없었고, 그런 위선자에게 이렇듯 매인 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구차스러운 삶이 칙살맞고 가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총수가 더 붙들어 두고 싶어서 불쾌하고 괘씸해서 갈아치울 수 밖에 없는 어떤 사단이나 한바탕 퉁그러지기만을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단은 생각보다 이르게, 그리고 싱겁게 다가왔다.
그는 그 비단잉어 회식 사건이 있고 두어 달 만에 나타났는데. 그날이 바로 그가 그 동안 벼르고 별러 온 그 그룹 소속 운전수들의 정상으로부터 하야를 한 날이었다.
사단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총수는 본디 각근하고 신실한 불교 신자였다. 총수의 원당(願堂)만 해도 어디라고 하면 아이들도 이내 짐작할 수 있는 국립공원 안의 명찰이거나와, 언필칭 민족 문화 유산 운운하지만 실은 총수의 사찰(私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오랫동안 무심양면으로 해 온 것이 있었기에 그리 된 것이라고 보면, 충수의 신심이 어떠한가를 능히 헤아릴 수 있는 일이었다.
총수는 자택에도 불당을 두고 있었다. 자택의 불당은 저만치 떨어진 후원에 있었다. 정원이 웬만한 초등학교의 운동장보다도 너른 데다 잘 가꾼 정원수가 가득하여 살림집인 본채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외진 곳이기도 하였다.
불당은 여느 암자들처럼 불단에 황금색의 등신불을 모시고 있었으나, 불상 주변에는 정화수를 올리는 불기와 향완이 하나 씩, 그리고 양쪽에 풍물의 한 가지인 날라리를 거꾸로 세운 듯한 촛대뿐으로, 재벌가의 불당치고는 썩 정갈하고 소박한 편이라고 할 만하였다.
그런 반면에 총수는 불상이나 불단에 먼지 하나라도 앉으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청소 한 가지는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도록 엄히 다루고 있었다.
이 불당의 청소를 맡고 있던 것이 유자였다. 총수를 출근시키기 전에는 손이 놀고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총수를 모시고 국립공원에 있는 원당을 자주 왕래하여, 절에서 하는 불교 의식이나 풍속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익숙했던 것이 청소를 맡게 된 이유였다.
총수는 어슴새벽에 일어나면서 일변 불당에 참배를 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유자는 총수가 참배 오기 전에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며 불두에서 결가부좌까지 융으로 만든 마른행주로 불상의 먼지를 거두었고, 불단을 훔치고 촛불을 써놓은 다음, 전날 제주도에서 공수해 온 약소로 정화수를 갈아 올리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불상의 먼지를 찍어 내려오던 그의 손이 항마촉지(降魔觸地) 한 손등에 이르렀는데, 피리똥인지 뭔지 마른행주로는 냉큼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행주에 물을 축여 오려면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본채까지 다녀와야 할 텐데, 그렇게 지체하다가는 십중팔구 총수가 나타나기 전에 청소를 마치지 못하기가 쉬웠다. 불단의 정화수를 쓸 수도 없었다. 묵은 정화수는 총수 부인이 손수 식구대로 컵에 나누어 온 가족이 음복하듯이 마시게 하고 있어서 조금이라고 축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가 차량을 다루던 버릇으로 자기도 모르게 툽하고 마른행주에 침을 뱉아서 막 파리똥을 지우려는 순간이었다.
“야야, 저런 천하에 몹쓸….”
돌아다볼 것도 없이 총수의 호통이었다. 총수가 소리 없이 나타나서 청소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 너…너 오늘부터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총수가 큰 절마다 정문의 문간에 좌우로 험악하게 서 있는 금강역사(金剛力士)의 눈을 해가지고 명령하면서도 ‘내 회사’가 아니라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한 것은, 거듭 생각해 봐도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굽어살피심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6
그는 여지없이 그날로 좌천되었다. 좌천지는 그룹에 속한 모든 차량의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부서였고, 관할 구역은 특별시 전역이었다.
이른바 노선 상무(路線)常務)가 된 것이었다.
노선 상무는 또 노상(路上)상무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풍찬노숙 한 가지는 제도적으로 보장이 된 자리였다.
남들은 관례로 보아도 그도 당연히 사표를 던지려니 하고 있었다. 업무의 내용이며, 업무의 난이도(難易度)며, 조직에서의 위상이며가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리로 벌어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표를 내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새로운 업무를 캐고 익히고 있었다.
그가 그러고 있으니 남들은 창자도 없는 인간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그를 쳐다보는 연민어린 눈길이 그것이었다.
그는 비록 총수의 측근에서 그야말로 하루 식전에 원악도와 다름없는 말단 부서의 현장 실무자로 유배된 셈이었지만, 공사석을 막론하고 한 마디의 불평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적어도 위선자의 몸을 모시고 다니는 것보다는 떳떳하며, 아울러서 속도 그만큼 편할 터이라고 자위하고 있었다.
새로 맡은 자리가 험악한 자리임을 설명하기에는 실로 긴 말이 필요치 않았다.
노선 상무에게는 차량의 운행 노선이 여러 갈래인 만큼이나 거래처가 많았다. 대강만 꼽아보더라도 우선 사고 현장에 뛰어 온 교통순경을 첫 거래처로 하여, 경찰서와 검찰청과 법원이 있고, 변호사가 있었다. 노선을 달리하여 병원의 응급실이 있고, 입원실이 있고 원무실이 있고, 또한 보험 회사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노선에는 병원의 영안실과 장의사와 공원묘지와 화장터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기관보다도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것은 피해자측에서 선임한 변호사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 내지는 그 유가족들이었다.
노선 상무의 업무는 사고 차량이 속한 단위 회사 사장 및 그룹의 총수를 대리하여, 교통사고로 빚어진 모든 복잡하고 사나운 일에 사무적으로, 법률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나아가서 인간적으로 임하는 것이요, 헌신적으로 뒤치거리를 하는 일이요, 후유증이 일지 않도록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복잡하고 사나운 일’의 처리는 앞에 말한 여러 갈래 노선의 거래처를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법률적으로, 경제적으로, 헌신적으로, 인간적으로 일단은 이기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나 모든 거래처와 그렇게 겨루어서 이기더라도 이긴 것 자체에만 뜻이 있어하고 만족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기되 양심적으로 이겨야 하고 정서적으로도 이겨야만 하였다.
그가 인간적으로, 양심적으로, 정서적으로 이기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필귀정의 원칙과 진실에 대한 신뢰에 흔들림이 없는 이상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양심과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거래처의 인성(人性)을 짝으로 삼아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가해자(총수 혹은 그룹의 동료 운전수)에게나 피해자에게나 부정한 승리, 부당한 패배가 있을 수 없도록 하는 일이 자신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스스로 다짐하기를 변함없이 하고 있었다.
그러한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수고와 오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사고 현장에 나가서 원인 유발의 동기와 환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정직한 실험과 논리의 개발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런 까닭에 법의학에 대하여, 인체 생리학에 대하여, 정신신경과에 대하여, 심리학에 대하여, 보험법에 대하여, 도로 교통법에 대하여, 도로 관리법이니, 교통 관리법이니 무슨 시행령이니, 무슨 지침이니 조례니 하는 것들에 대하여, 무엇 한 가지도 설익거나 어설프거나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되었다.
그는 남다른 노력으로 그것을 극복하였다. 아니 통달하였다. 도사였다.
그는 소설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자 이 만 년 수리문맹(數理文盲)인 나에게 호프만식 계산법을 비롯하여 보험금 계산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실무 경험과 선례, 판례, 사례를 들어가며 사건별로 누누이 강의를 되풀이하였으나, 일개 백면서생에 불과한 나에게는 이렇다 할 도움이 된 적이 별로 없었다.
나는 그가 줄줄 외워대는 법령이나 조문 해석이 하도 복잡하여, 대개는 듣는 도중에 앞에서 말한 것들을 말해 준 순서대로 잊어가다가, 그가 결론에 다다른 연후에야 겨우 결과가 어떻게 되었다는 말꼬리 부분에만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보기보다는 휠씬 악바리란 사실만을 번번이 재확인 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그는 깎아서 말하자면 보기 드문 악바리였다. 하지만 가해자나 피해자 편으로는 오히려 인간미가 넘치는 든든한 해결사였고, 그를 세상에 다시없는 악바리로 치부함직한 곳은 오직 한 군데, 즉 자동차 보험 회사뿐이었던 것이다.
그는 피해자나 피해 가족에게 공정한 보상이 되도록 애쓰면서도, 가령 사건 브로커 따위가 뛰어들어 총수의 사회적인 위치를 기화로 사망자의 장례를 거부하고 버티거나, 시체를 볼모잡아 시위하며 터무늬없는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단호하게 대처하였다.
그런 경우에도 물론 법에 묻기 전에 설득을 먼저 하였다.
“이봐요, 돌아가신 양반이 돈 타먹으려고 돌아가신 것 아니잖소. 시신두 부르는 게 값인 중 아슈? 물건이던감? 시방 무슨 흥정을 허구 있는겨. 여기 식인종 웂어, 산 사람은 월급이나 품삯이 챘다(올랐다) 하렸다(내렸다) 허니께 혹 상품이 될는지 몰라두 시신은 상품이 아닌규.”
그런 와중에도 피해 가족이 대개는 사건이 마무리된 뒤에 그에게 사의를 표의하는 것이 예사였다. 환자에 대한 잦은 문병과 신속한 치료 조치, 사망 자가 난 사건에는 넉넉한 부의와 정중한 조문, 장지까지 따라가서 장례를 거드는 보기드문 성의와 적극적인 보상 절차 이행, 그리고 한 푼이라도 더 보태어 주려고 보험 회사와 밀고 당기는 지능 대결 등을 통하여 그의 진면목을 발견한 사람은, 비록 악연으로 만난 사이일망정 그 나름의 감동이 없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건을 끝내면서 그들에게 진심어린 치하와 더불어 따끈한 차라도 한 잔 대접받게 되면, 그는 그 일로 인하여 누적된 피로가 씻은 듯이 가시면서 자신의 소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보람마저 느끼는 것이었다.
뒷맛이 씁쓸했던 일도 없지는 않았다. 사망자가 생전에 변변치 못했던가 싶은 사례가 그러하였다.
사고 발생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뒤엉켜서 본의 아니게 해결이 지연되는 사건도 적지 않았다. 사건을 들고 법정으로 가거나, 보험 회사에서 제기한 이의에 분쟁의 소지가 있어도 자연히 시일을 끌었다.
사망자의 부인이 젊으면 더욱 그러하였다. 부인의 뒤에 친정오라비를 자처하는 자가 따라다니면서, 부인에게 잘 보이려고 생색이 날 일을 찾게 되면 열에 일고여덟이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는 그런 친정 오라비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사망자의 사십구재 이전부터 모습을 나타내는 친정 오라비는, 사망자가 살아 있어서부터 그녀와 서로 네 거니 내 거니 해 온 사이였고, 사십구재라도 지나가고 나서 끌고 다니는 친정 오라비는, 유흥가에서 만난 직업적인 제비족이 분명하였다.
그는 사건 처리를 하면서도, 신통찮던 남편에게서 속 시원히 해방되고, 예정에 없었던 목돈을 쥐게 되고, 사내를 새로 만나서 딴 세상이 있었음을 발견한 젊은 과부의 그 의기양양한 모습을 볼 때처럼 맥살이 풀리고 마음이 언짢을 때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럴수록이 공사간을 분명히 하여 일을 매듭지었다.
그런데 그런 여자일수록 사건이 해결된 뒤 그에 대한 사의 표시가 차 한 잔 정도로는 크게 결례라고 생각하는 축이 많은 편이었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몸으로 때우겠다는 거였다. 그에게는 정해진 대답이 있었다.
“드으런 년.”
그렇게 한 마디로 자리를 박차버리는 것이었다.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비단 피해자 쪽의 사정만도 아니었다.
사고를 낸 운전수가 당황하여 숨어 버리거나 구속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안됐고 안타까운 것이었다.
그는 운전자의 운전 윤리에 누구보다도 반듯하였다. 그러므로 운행 중에 때 아닌 곳에서 과속으로 앞지르기를 하거나, 옆에서 끼어들어 진로 방해를 하거나, 차선을 함부로 넘나들거나, 신호등이 바뀌기 전부터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거나, 운전 상식이나 도로 질서에 도전하는 자를 보면, 매양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를 잊지 않았다.
“츤헌늠… 저건 아마 즤 증조 할애비는 상전덜 뫼시구 가마꾼 노릇 허구, 할애비는 고등계 형사 뫼시는 인력거꾼 노릇 허구, 애비는 양조장 허는 자유당 의원 밑에서 막걸리 자즌거나 끌었던 집안 자식일 겨. 질바닥서 까부는 것덜두 다 계통이 있는 법이니께.”
그가 다루는 사건도 태반이 가해자의 운전 윤리 마비증이 자아낸 것이었다. 그렇지만 가해자가 그룹 내의 동료 운전수라 하여 팔이 들이굽는다는 식의 적당주의를 취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다만 사건 처리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기 위해 신상 기록 대장에 있는 주소를 찾아가 보면 일쑤 비탈진 산꼭대기에 더뎅이진 무허가 주택에서 근근이 셋방살이를 하는 축이 많았고, 더욱이 인건비를 줄이느라고 임시로 쓰던 스페어 운전수들이 사는 꼴이 말이 아닌 때는, 그 운전자의 자질 여부를 떠나서 현실적인 딱한 사정에 괴로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스페어 운전수는 대체로 벌이가 시답지 않아 결혼도 못한 채 늙고 병든 홀어미와 단칸 셋방을 살고 있거나, 여편네가 집을 나가 버려 어린것들만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들여다보면 방구석에 먹던 봉짓쌀이 남은 대신 연탄이 떨어지고, 연탄이 있으면 쌀이 없거나 밀가루 포대가 비어 있어, 한심해서 들여다볼 수가 없고 심란해서 돌아설 수가 없는 집이 허다한 것이었다.
그는 결국 주머니를 털었다. 스페어 운전수의 사고에는 업무 추진비 명색도 차례가 가지 않아 자신의 용돈을 털게 되는 것이었다. 식구가 단출하면 쌀을 한 말 팔아 주고, 식구가 많은 집은 밀가루를 두 포대 팔아 주고, 그리고 연탄을 백 장씩 들여놓아 주는 것이 그가 용돈에서 여툴 수 있는 한계였다.
그는 쌀가게에서 쌀이나 밀가루를 배달하고, 연탄 가게에서 연탄 백 장을 지게로 져 올려 비에 안 젖게 쌓아 주기를 마칠 때까지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집을 나와서 골목을 빠져나오다 보면 늘 무엇인가를 빠뜨리고 오는 것처럼 개운치 않았다.
그는 비탈길을 다 내려와서야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곤 하였다. 산동네 초입의 반찬 가게를 보고서야 아까 그 집의 부엌에 간장밖에 없었던 것이 뒤늦게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면 다시 주머니를 뒤졌다.
그가 반찬 가게에서 집어드는 것은 만날 얼간하여 엮어 놓은 새끼 굴비 두름이었다. 바다와 연하여 사는 탓에 밥상에 비린 것이 없으면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아 하는 대천 사람의 속성이 그런 데서까지도 드티였던 것이다.
도로 산비탈을 기어 올라가서 굴비 두름을 개 안 닿게 고양이 안 닿게 야무지게 매달아 주면서,
“뷬에 제우 지랑밲이 욼으니 뱁이구 수제비구 건건이가 있으야 넘어가지유. 탄불에 궈자시던지 뱁솥에 쩌자시던지 하면, 생긴 건 오죽잖어두 뇌인네 입맛에 그냥저냥 자셔볼 만헐뀨.”
쌀이나 연탄을 들여 줄 때는 회사에서 으레 그렇게 돌봐 주는 것이거니 하고 멀건 눈으로 쳐다만 보던 노파도, 그렇게 반찬거리까지 챙겨 주는 자상함에는 그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눈시울을 적시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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