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님
시편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가정에 있든지, 교회에 있든지, 학교에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어느 곳에서든 찬양을 하게 된다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 될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면
마귀는 떠나가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그러나 불평과
원망 그리고 분노와 더러운 말을 하면 성령께서 탄식하시고 마귀는 기뻐서 그곳에 계속 머무르게 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상황이던지 어디에 있던지 늘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이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위대한 일들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꼭 멜로디가 있어야 찬양이 아닙니다. 길을 가다가도 새 소리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만드셨구나"라며 하나님의 솜씨를 감탄하는 말이 찬양입니다.
몸은 비록
피곤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나에게 새로운 날과 새로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을 느낄 때, 그 순간이
바로 나의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과 느낌을 말과 노래로 표현할 때, 더욱 진정한 찬양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할 때 구원을 얻듯이, 인간은 생각하는 것을 입으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내 입으로 찬송이
흘러나온다면, 이미 나의 영은 성령과 함께하고 있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한마디
"사랑한다"는 말을 들음으로 상대방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욕을 하거나 무시하는 말을 한다면, 세상에서
자기처럼 비참한 사람은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 감찰하셔서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표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표현은 꼭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살면서 이웃을 사랑할 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는 매일 찬송을
올려드리면서 실제 생활에서 가족과 이웃에게 선을 행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극히 개인적으로 살아간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의 찬송 가운데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을 온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경외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정성을 다해 섬겨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지, 또는 지옥에 갈지를 생각해 본다면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다면, 그가 지금 죽으면 분명히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에게 전도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그들에게 전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혹시 주위에
있는 불신자의 나쁜 면만을 보면서 오히려 그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마귀의 종이므로 악한 면이
드러나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따라서 그를 불쌍히 여기며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도록 어둠의 결박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에
악한 열매를 맺고 있는데, 그것을 불쌍히 여기기는 커녕 상종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오히려 그를 비난하는 말과 욕을 한다면 그런 사람은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나의 찬송을 받기를 원하시는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오늘 내가 가야하는 곳이 어디이건 걸어가면서, 차를 타고 가면서, 앉아서, 누워서,
청소를 하면서, 밥을 하면서, 운전을 하면서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입에서 어떤 말이 흘러나오기를 원하실까요? 혹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런 말은 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것이 있습니까? 사람들도 듣기 싫은
데,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듣기 싫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이웃에게 하는 말이 바로 하나님께 하는 말입니다. 기분이 상해서 내뱉은
말도 결국은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 입에서는 어떤 말들이 나왔습니까? 조용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내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습니까?
평소와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가증스럽다고 할까요? 그런데 평소와 같은 모습 중에도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첫째로 평소에도 교회에서처럼 경건한
생활을 하거나 둘째로 평소와 마찬가지로 예배나 교회생활도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평소에는 경건하지 못하지만,
교회에서나마 경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비록 가증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교회에까지 와서 자기 멋대로 하는 것보다는 좀 낫지 않을까요? 도토리
키재기 일까요? 50보, 100보?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의 생활은 어디에서나 거룩합니다.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심을 알고 또 느끼고 살기 때문입니다. '거룩'이란 구별된
것, 세상과 전혀 다른 것,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을 말합니다. 세상과 별로 다른 것이 없다면 나는 거룩과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하는 말과 똑같이 부정적이며 더러운 말이 입에서 나오며, 세상사람들이 하는대로 세금을 거짓으로 보고하며, 세상사람들처럼 노출이 심한 옷
즉 미니스커트나 반바지, 소매없는 옷 등을 입고 교회에 예배드리러 나오며, 악기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아플 정도로 찬양시간을 소음공해에 시달리게
하며, 세상사람들이 추는 춤과 똑같은 춤을 워십댄스라고 추고 있다면, 이미 이런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찬양을 한시간씩 한다고 해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관계없이 하는 찬양과 워십댄스를 하나님은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무조건 찬양을
한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현대의 워십댄스를 보면 너무나 음란한 모습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다나 내려오면서 보았던 장면 즉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만들어놓고
음란하게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입니다. 세상과 전혀 다른,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사람들, 완전히 물과 기름처럼 구별되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이며 "성민"입니다. 즉 "거룩한 무리,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원하십니다. 세상적인 즉 마귀의 성품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을 갖고 완전히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