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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한나 아렌트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독일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히틀러 치하의 상황을 겪기도 했고, 또 다른 사상가인 하이데거와는 스승이자 연인으로서 열정적인 연애를 하기도 했다. 히틀러의 나치에 협력한 하이데거와 오랜 동안의 인연으로 맺어졌다가, 마침내 그와의 결별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두 번의 물리적인 장소로부터의 ‘탈출’과 더불어, 하이데거로부터의 사상적인 독립을 마지막 ‘탈출’로 표현하고 있다.
아렌트 사상의 특질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기했던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들 수 있다. 히틀러 체제의 2인자로서 전쟁 범죄자로 체포된 아이히만의 재판을 목도하고, 그가 괴물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한 인물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렌트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고, 나치를 괴물로 이해하고자 했던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 한국에서도 이러한 ‘악의 평범성’을 실증할 수 있는 사례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자식을 잃고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가족들 앞에서 이른바 ‘폭식 투쟁’을 하는 인간들,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을 폄하하고 ‘5.18 유공자’들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어 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다는 번지르르한 말을 하면서, 정치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하는 그들이 바로 그러한 실증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그래픽 노블로 만나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아렌트의 삶과 행적에 대해서 그림을 통해서 소개하고 있다. 생애와 함께 시대적 상황을 그려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아렌트 사상의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녀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기초적인 자료로서의 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삶은 모두 ‘세 번의 탈출’로 설명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는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폭압을 피해 자신이 태어난 독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로서는 당시 독일에서 활동했던 다양한 인물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시대적 상황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겨우 책으로나 만날 수 있는 뛰어난 인물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아렌트는 자신의 사상을 견고하게 다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 파악된다.
두 번째는 독일에 점령된 유럽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힘겹게 베를린을 벗어났지만, 당시 유럽은 여전히 독일의 점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발터 벤야민은 아렌트에게 자신의 원고를 맡기고, 후에 그녀에 의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벤야민의 저술인 <역사 철학 테제>가 전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탈출’은 물리적인 장소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렌트에게 학문적 영향을 끼쳤던 하이데거로부터의 ‘사상적 독립’을 뜻한다.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로 알려진 하이데거는 나치에 협력하면서, 그로 인해서 지금까지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이데거와의 결별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그로 인해 아렌트는 새로운 사상을 접립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로부터 사상적 결별이 아렌트 사상의 토대를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독자적인 사상가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나 역시 <인간의 조건>을 비롯한 아렌트의 저술을 읽어 보았지만, 철학적 사고와 시대 상황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처지를 고려한 깊이 있는 사유의 결과물들은 결코 쉽게 읽힐 수 있는 내용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한 인물의 사상을 적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인물의 삶과 영향을 미친 인물이나 시대적 상황을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한 필요가 있다.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아렌트의 삶과 다양한 인물들과의 교유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나로서는 매우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다시 아렌트의 저술을 읽게 된다면, 그 책에 소개된 사상의 배경을 생각하게 만들 것이라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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