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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것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빈도가 현저하게 줄었지만, 지금도 시집을 모으고 때때로 익숙한 시집을 열어 시를 읽기도 한다. 우연히 이 시인의 시를 접하고, 시집을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나에게는 조금은 낯선 감성이라고 느꼈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러한 차이가 아마도 나와 시인의 세대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시의 특징을 '서사성'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시야말로 가장 서사성을 담보하고 있는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서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의 서사성은, 독자의 이해나 감성에 따라 한 편의 시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나는 시를 읽을 때, 시인의 입장이 되기보다 그저 내 감성에 따라 읽는다. 때문에 나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시인들의 시를 즐겨 있는 편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인의 시를 접할 때면, 시인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이 시집을 보면서 몇몇 작품에서는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를, 보다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예컨대 <가족의 휴일>이란 시를 보자.
아버지는 오전 내내
마당에서 밀린 신문을 읽었고
나는 방에 틀어박혀
종로에나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날은 찌고 오후가 되자
어머니는 어디서
애호박을 가져와 썰었다
(<가족의 휴일> 앞부분)
이후 아버지를 따라나서 화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이 가족의 모습을 통해서 '밀린 신문을 읽'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이 연상되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화자의 입장에 공감하여 시를 읽어냈다면, 어느 사이엔가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모든 시를 그렇게 읽었던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 시집을 통해서 '젊은' 시인의 감성을 느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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