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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흑백사진으로 엮어진 사진집을 보았다. 오래된 장터의 모습을 통하여,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한번쯤 장터를 찾았던 사람들이라면, 책속의 사진들을 보면서 언젠가 마주쳤던 풍경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컬러사진이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흑백의 질감을 통하여 드러나는 풍경은 때론 과거의 추억을 자극하기도 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5일장이 열리고 있지만, 이제 사람들은 대형마트를 찾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내가 사는 순천에는 특이하게도, 5일장이 두 군데에서 열린다. 매 2일과 7일에는 아랫장이 서며, 5일과 10일에는 웃장이 선다. 거리는 1킬로미터 정도밖에 안되지만, 5일에 두 번씩 장이 서는 것은 분명 예사롭지 않다고 여겨진다. 가끔 들르는 장날에는 대부분 장년과 노년의 손님들이 장터에서 뼈가 굵은 장꾼들과 어울려 한바탕 소란스러운 잔치를 치르는 것 같다. 장터를 돌아다니다 보면, 꼭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도 사게 된다. 갑자기 쏟아져 나온 해산물의 값이 싸서, 혹은 장사를 마치려고 떨이로 내놓은 채소 따위가 주로 그 품목에 해당된다. 여전히 장보기는 대형마트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5일장에 들러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느껴보게 된다.
사진작가인 저자는 주로 전라도 곳곳의 장터를 돌아다니며 그곳의 풍경을 담고, 여러 차례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의 사진에 맞추어 김용택과 안도현의 장날에 얽힌 사연들이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 물론 그들의 글은 사진과는 상관없는 자신들의 추억을 펼쳐놓았지만, 묘하게도 글의 내용과 사진들이 잘 어울린다고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찍었던 사진들이 딱히 특정 지역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 아니라, 어느 장터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풍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목로에서 국수나 장국을 먹거나 혹은 막걸리를 마시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 엄마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장터를 돌아다니는 아이의 모습들이 바로 그러한 형상이라 할 것이다.
이 책에는 ‘사라져 가는 순간의 기억들’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데, 오랫동안의 답사를 통하여 담아낸 사진들 역시 저자에게는 까마득한 과거로 기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장터는 시설이나 가판들이 보다 현대식으로 정비되어 있고, 때로는 현금이 아닌 상품권이 통용되기도 한다. 장터에 가보면 여전히 도로가에는 길바닥에 좌판을 벌인 촌로들이 적지 않다. 자신들이 직접 가꾼 농산물들을 푸짐하게 펼쳐놓고, 연신 오가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높여 구입을 호소하곤 한다. 때로는 못이기는 척하며 말을 붙이고, 각종 채소를 싼값에 구매하는 것도 장을 찾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5일장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장터는 삶의 터전이면서 활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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