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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교 현장에서 ‘정치교육’을 어떻게 실시할 것인가에 대한 독일의 사례를 근거로, 우리의 현실에 맞는 원칙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정치권의 간섭으로 학교 현장의 교육이 오히려 갈등으로 치닫는 모습들을 우리는 그동안 여러 차례 목도해야만 했다. 최근의 단적인 예가 바로 지난 정권에서 시도되었다 좌절된 ‘국정 교과서’(한국사) 사태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객관적인 연구자들의 결과물을 무시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일반적인 역사관을 강제하려다 실패한 사건이라고 규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특정 권력의 의도에 따라 학교 현장이 갈등 상황으로 치닫는 사례는 이제 멈춰야만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독일에서 진행되었던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대해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서 독일은 과거의 그릇된 역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에 대한 반발로 나치즘을 숭상하는 극우 민족주의가 여전히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히틀러를 숭상하고 나치의 문양을 드러내는 행위는 철저하게 법적으로 처벌을 받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 근본주의에 기반한 정당이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좌우의 이념 대결이 교육 현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이념의 대립으로 학교 현장이 정치적 갈등으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군의 교육학자들이 모여 올바른 ‘정치교육’의 원칙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진행했다고 한다. 단지 토론의 결과물을 출간했을 뿐임에도, 독일 사회에서 오랫동안 정착되어 ‘정치교육’의 방향을 결정한 것이 바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라고 한다. 서로 다른 이념과 입장을 지닌 학자들이 보이텔스바흐에 모여 토론을 하고, 그 결과로 학교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세 가지 원칙을 정하였다. 세 가지 원칙은 ‘강압(교화) 금지’, ‘논쟁성에 대한 요청(논쟁성)’, 그리고 ‘이해관계 인지(행동지향/학생지향)’ 등이다.
모두 4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이 책의 기획은 제목에 드러난 바와 같이 독일의 사례를 원용해서 한국의 실정에 맞는 ‘민주시민 교육’의 원칙을 마련하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이념 갈등과 정치적 대립을 뛰어넘는 교육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1부에서는 두 편의 글을 통해, 독일에서 진행된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경과와 그 의미 등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공감하겠지만, 이제는 규범적이고 강압적인 교육 방식은 역효과만 내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에게 21세기 학생들이 교육을 받는다’는 자조적인 표현이 통용되었을까. 저자들이 정리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결국 ‘최소 합의’로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독일의 사례를 한국적 상황에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세 편의 글이 2부에 수록되어 있다. 즉 저자들은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올바른 ‘정치교육’이 실현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제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입시라는 커다란 목표를 향해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과연 올바른 ‘정치교육’의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는 정치교육보다는 민주시민교육이. 정치 참여보다는 사회 참여라는 표현이 저항감이 덜하고 확장성이 더 크다’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만큼 정치적 갈등이 학교 현장에 스며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반감이 대중들 사이에 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록 이념이 다르더라도 상대편의 입장을 존중해주는 독일의 사례가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합리적인 토론보다는 마구잡이 주장이 점철되어 토론이 아닌 비난이 판치는 작금의 한국적 현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그야말로 하나의 이상으로 여겨졌고, 이러한 연구들이 쌓여 한국 사회에 걸맞는 ‘정치교육’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이제는 교육 현장에서 특정 이념을 주입하기보다 교육 현실에 적절한 교육 방안에 대한 합의, 즉 한국식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특히 독일의 합의에서 특정 이념이나 규범을 강요하지 않고, ‘학생 중심’의 ‘논쟁성’을 중시하는 ‘정치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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