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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기술이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관점이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다. 정보기술(IT)의 급격한 발전으로 우리의 일상이 점점 편리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도 모르게 개인의 삶이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통신회사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서 인터넷이 마비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사업을 하던 이들에게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끼쳤던 사례를 또다른 예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기술의 발전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한 면밀한 탐색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하겠다.
이 책의 저자는 오랫동안 정보기술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을 가졌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움직임에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어떤 조직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직책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선택과 결정으로 인해 비로소 그 위치가 지닌 무게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지위에 있는 사람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조직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마도 저자가 느낀 무력감은 바로 거대한 조직 속에서 개인의 능력이 차지하는 위상이 생각만큼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체감한 결과라고 이해된다.
자신의 삶에 대해 무력감을 느꼈을 때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자연과학 분야에 종사하더라도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인문학을 공부하였고, 그 결과 정보기술에도 인문학을 결합시켜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IT, 인문을 만나다>라는 책의 제목은 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현재의 과학기술을 동서양의 ‘역사와 고전’을 통해서 생각해보도록 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하여 ‘역사와 고전으로 엿보는 19가지 IT 키워드’라는 부제로, 서양의 고전 9편과 동양의 고전 10편을 현재의 정보기술의 키워드에 접목시켜 서술하고 있다.
예컨대 서양편에서는 ‘카이사르의 암호와 RSA 알고리즘’을 연결시켜 설명하기도 하며, ‘세상이 원하는 인재, 통섭형 인재’의 예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섭렵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의 기법을 활용하여 컴퓨터로 기사를 쓰는 언론사가 등장했는데, 이러한 주제는 과연 동양을 여행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의 예를 통해 접목시키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보기술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을 인문학의 소양이 필요한 고전에 접목시켜 서술하는 저자의 식견에 공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동양편에서는 전세계를 누비던 몽골의 칭기즈 칸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날씨, 빅데이터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다가올 미래의 날씨를 예측하는 현재의 기술과 비교하기도 한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불사약을 찾고자 하는 자신의 허망한 욕심으로 단시일에 망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 도량형을 통일하는 등 펼친 정책들은 현재 과학기술 분야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물인터넷 표준 전쟁의 서막’이라는 내용과 결부시켜 논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했던 정도전을 아이폰으로 잘 알려진 애플사를 비롯한 IT 업계의 선구자들과 비교하는가 하면, 조선 후기의 주요한 사상가로 꼽히는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등을 ‘오픈소스 커뮤니티’와 ‘미래 교육 플랫폼, 무크’와 연결시켜 설명하기도 한다. 과학 기술 분야에 생소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통하여 현재의 정보기술의 다양한 지식들을 접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고전과 역사’를 통해 얻어진 인문학과 연결시켜 논하는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기술의 발전이 인문학적 사고와 결합되어 진지하게 고민되어야 할 시점이라는 저자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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