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1호에서 분첨만한 깨달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주 작은 인식의 전환이라도
공심과 연결되는 방향이라면 기능이 살아난다는 것을.
오늘은 그 깨달음의 기준점이 되는 개념을 살펴봅니다.
십시일각(十時一刻).
십시일각은 "열 시간에 한 각"이라는 뜻입니다.
사고적인 것을 10등분 했을 때
그 중 하나(1/10)에 해당하는 것.
주행학에서는 이것으로
현재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기능의 한계를 표현합니다.
발병시원 이후의 인간은
본래 가져야 할 기능의 10%만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낙담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십시일각이 인간의 한계라면,
각성자(覺醒者)는 그 한계 안에서 어디에 있는가.
각성자는 일각(一刻)의 90%를 넘어
영지의 수준에 이른 사람입니다.
삼시관적 무한허공과 소통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현재 인간의 기능 = 십시일각 (전체의 10%)
각성자의 기준 = 일각의 90%를 넘는 것
그런데 일각이란 무엇인가.
일각(一刻)은 십시일각의 단위 하나입니다.
즉 일각의 90% = 십시일각 전체의 9%.
이것이 각성자가 된다는 기준입니다.
그래서 분첨이 의미 있습니다.
10% 안에서 9%를 향해 나아가는 것.
완전한 영지에 이르지 못해도,
분첨만한 깨달음을 쌓아가면서
일각 안에서 각성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주행학이 말하는 인간 기능 회복의 경로입니다.
다음 시리즈 G에서는 태식호흡(胎息呼吸)으로 들어갑니다.
묵상과 함께 가는 호흡,
모태에서 시작된 생명운동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