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6월 4일 동녘교회 주일예배 - YouTube
진정한 구원 누가복음 21장1-4절
감리교에는 유명한 두 분의 목사님이 있습니다. 신석구와 정춘수라는 사람입니다. 둘은 같은 해에 청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이도 같고 비슷한 시기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둘 다 3.1운동 민족 대표 33인에 참여했던 사람입니다. 둘 다 감리교신학대학의 전신인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평생을 목회자로 산 사람들입니다. 이 두 사람은 똑같이 3.1운동에 참여하고 1년 6개월씩 옥고를 치르고 그 후에 지속적으로 목회를 합니다.
정춘수 목사는 옥고를 치른 후 사회주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결집한 신간회에 참여도 하면서 동대문교회 등 서울 등지에서 목회를 합니다. 그런데 1938년 태평양 전쟁 발발 후 일본이 국내 민족운동세력을 대대적으로 탄압하는데 그때 검거되어 전향한(63세) 뒤 본격적인 친일활동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63세입니다. 적지 않은 세월을 잘 살아오셨는데 1938년 이후 그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1939년 조선감리교 4대 감독으로 피선되었고 1941년 혁신교단을 만들어 총회장이 되고 연회를 해산하고 일본 교단에 편입시킵니다.
그리고는 조선 병합 정책에 감리교의 최고 선봉자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이 일을 돕습니다. 징병제 지원을 돕고 교회에서 일본어로 설교하도록하고 구약성경과 신약계시록을 읽지 말고, 찬송가에서도 전쟁, 평화, 메시야 재림과 관련된 것들을 삭제하도록하고 국방헌금을 걷어서 감리교단 애국기 3대를 헌납하고 일본에 협조하는 않는 목회자들을 제명, 출교, 휴직, 퇴직 처분을 강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일제에 협조합니다. 평생을 지조있게 삶의 길을 걸어오다가 63세 넘어서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하더니 결국 해방 이후에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구속되었다가 1949년 천주교로 개종하고는 한국전쟁 당시에 죽음을 맞습니다.
반면 신석구 목사는 3.1운동 이후 정춘수 목사와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목회를 하면서 일제 말기에는 신사참배반대 창씨개명반대 대동아 전쟁전승기원예배 거부 등을 하다 수시로 일본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곤 했습니다. 그와 정춘수와의 관계에서 얽힌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944년 여름 어느 날 소고기 두 근을 들고 그가 정춘수 목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친일행각을 멈추고 차라리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합니다. 그러나 결국 말을 듣지 않지요. 해방 후 그는 평안도 용강의 유사리교회로 파송되지만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또다시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남한으로 월남하라는 주변의 권유가 빗발치지만 결국 그는 교인들을 버리고 갈 수가 없어서 그곳에서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그의 나의 75세였습니다.
이 두 친구의 다른 점이 무엇이었을까요? 정춘수 목사가 어떤 동기에 의해 변절을 하고 생애 마지막 순간에 권력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지 그 내면의 이유는 모릅니다. 사실 60대까지는 비슷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쯤 되면 인생 다 산건데 말입니다. 근데 잘 보면 신석구 목사님에게서는 마지막까지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1944년 친구 정춘수를 찾아갔던 것도 그렇고 전쟁 후 결국은 교인들을 버리지 못한 것도 그렇고 <차마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정춘수 목사를 구지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국내에서 그렇게 살아왔던 세월도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의 어느 순간 사람을 전쟁터에 넘기고 전투기를 만드는데 헌금을 동원하고 그러는 일에 자발적 충성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 인생에 <사람과 생명에 대한 열정>이 사라집니다. 교회와 조직과 돈과 성과만이 남게 됩니다. 그러나 한사람의 인생에서는 나이가 들고 시대가 변해도 생명에 대한 여전한 열정과 애정이 묻어납니다.
지난 주간에 부처님 오신 날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인데 부처님에 대한 책 한권은 읽어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법륜스님이 지으신 <그 위대한 삶과 사상 붓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안에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이 세상에는 고통받는 중생이 끝없이 많으니 나는 연등 부처님처럼 최상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가 되어 마지막 한 생명까지 법이 배에 싣고 윤회의 바다에서 기필코 구제해 낸 뒤에야 비로소 열반에 들리라 이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요 내게 주어진 일이다” 수메다의 말입니다. 수메다는 현생에서의 붓다로써의 삶을 살아낸 이가 싯달타라면 전생에서 보살로써의 삶을 산 이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 수메다의 말입니다. 이 수메다가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하고 출가했는데 그것으로 자기가 어느 정도 죄도 소멸되고 자칭 그래도 남들보다 나은 붓다의 길을 걸었다라고 생각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쯤되면 훌륭한 스승을 만나 열반에 들어도 되겠다 생각했는데 그가 붓다의 길을 닦는 과정에서 그의 이런 사고가 또 깨집니다. 이땅에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 그 사람들을 외면한 채 하는 종교적 수행이라는 게 결국은 삶의 거짓 모양이라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하는 고백입니다. 세속을 떠나 행복을 찾으려했던 것이 진정한 자아 완성의 길이라 생각했는데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내 삶에 현존하는 한 그 모든 것이 허상임을 깨닫고 고통받는 중생이 다 부처가 되어 마지막 생명하나까지 이 고통의 바다에서 건져진다면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열반에 들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나하나 붓다의 길을 걷는 것이 다라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는한 내맘하나 편한 게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이야기는 헌금 많이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부가 자신이 가진 것 전부를 받쳤으니 너희도 받쳐야한다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가 가진 것을 다 헌금하는 것을 보셨어요. 그리고 이 여인은 구차한 중에 다 받치고 있다까지 예기 했어요. 어떤 이여인이 얼마나 훌륭하냐 얼마나 잘 한 것이냐 이런 예기를 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는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할 거라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이 이야기 전에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게 하는 성전 구조체제를 만든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욕하고 계셨어요.
과부의 마지막 남은 자산까지도 삥뜯어가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없고 돈만 있고 성장만 있고 이익만 있고 조직만 남아있는 허상뿐인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한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저희 교회 교우 한분이 평생의 직장에서 정년 은퇴를 하시고 첫 예배를 드리십니다. 두 분의 목사님 이야기를 했지만 한때 잘 살 수는 있지만 평생을 늘 한결같은 길을 걸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집사님 한때는 노조 간부로 활동하시면서 직원들의 복지와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적지 않은 세월 수고와 애씀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나이가 드시면서 어른이 되시면서는 자꾸 감나라 배추나라 하시면 꼰대짓한다고 생각할까봐 후배 임원들에게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회사의 불합리하고 반 인권적인 모습에 대해 그냥 호로 단신의 몸으로 저항하고 항거하면서 마지막까지 한길을 걸어오셨어요.
집사님 늘 농담처럼 “목사님 왜 저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대한 호기심이 그렇게 많지요” 하셨지만 사실은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가야하는 길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셨어요. 살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남들 다 좌할 때 우하고 남들 다 우할 때 좌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책임져야할 것들이 참으로 많은 좁은 길입니다.
집사님 “좁은 길로 들어가라”라는 성경의 말씀 인생의 말씀으로 여기면서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이 좁은 길이 찾는 자가 적고 협곡과 같이 험한 길이지만 그 길이 바로 사람 살리는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마땅히 걸어야하는 길”임을 소명처럼 받들고 살아오셨어요. 이 시간들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비록 좁고 찾는 이가 많지 않지만 그 안에 사람이 있고 그안에 생명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이 묻어나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어디 김종오 집사님 뿐이겠습니까 여기 계신 많은 은퇴하신 집사님들 다 우직하게 한 길들을 걸어오셨습니다. 저는 이런 동녘의 크리스챤들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정춘수 목사도 그 지점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지 왜 나만 이래야하지 이렇게 사는게 도움이 되기라도 하나, 역사에 희망이 있나 살아왔던 삶의 이유들이 희미해지고 옅어지고 그래서 의미와 명분이 사라진 시간들. 그런데 그런 삶의 순간에도 조차도 모든 생각과 판단을 중지한 채로 그곳에 사람이 있으니 몸은 늘 있어야하는 그 자리에 두는. 어쩌면 신석구 목사님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삶이라는 무게가 누구나에게 버겁게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생명에 대한 무게를 가지고 늘 있어야하는 그곳에 몸을 두며 살아가시는 이들 덕에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런 모든 분들에게 지지와 연대와 고마움과 사랑을 보냅니다.
주님의 평화가 아름다운 마무리를 맞이하는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김종오 집사님과 그 가족 그리고 늘 같은 마음으로 같은 길을 걷는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