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직장을 잡고/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나는 변변한 방 한 칸 얻어줄 돈이 없다
내생활고를 뻔히 아는 아들 녀석/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더니/ 친구 형 세 사는 집에/ 곁방 하나 얻어 이사 가기로 했단다
굳이 혼자 가겠다는 아들을 따라/ 서울 가는 버스에 이삿짐 가방 달랑 두 개 싣고/ 눈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서울로 간다
아들이 누우면/ 머리와 발이 맞닿을 것만 같은 쪽방/ 면목이 없어 천장만 바라보고 한숨을 밀어넣는데
괜찮다고, 괜찮다고/ 아들이 되려 날 위로한다
대전으로 내려오는 버스 안/ 자꾸 눈물이 나 차창만 바라보는데/망막 속으로 따라온 아들 녀석
가난하지만/목사 아버지 부끄럽지 않았다며/ 나더러 십자가를 내리라 한다
손사래치는 날더러/ 제가 지고 가겠다고/ 자꾸 내리라고 한다
-조완형, 「쪽방에 아들을 두고 오며」
언어의 수사학 면에서 보면 진솔한 것 말고는 별반 기교가 보이지 않는 조완형 시인의 시 한 편이 침도 못 삼킬 만큼 제 목젖을 헐어버렸습니다.
이순耳順에서 오는 나이 탓으로 작은 일에도 눈물이 많아져버린 제 감성의 헐거워진 제어장치 때문인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 때문에 상처 받지 않으려고, 사람 때문에 배신당하지도 않으려고, 인간이란 동물 때문에 울지 않으려고 양평 산골에 육중한 닻을 내린 지 십 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제가 만든 유배지에서 사람 냄새만 나면, 작은 인기척에도 쉬 울어버리는 제 마음의 풍경도 떼어버리고 얼음집을 만들어 살면서 바늘구멍만큼만 틈이 보여도 복원하려는 감성을 수시로 지게에 지고 산에다 버렸습니다.
그래서 눈물마저도 얼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조완형 시인의 시 한 편이 제 빙하의 가슴을 풀어헤쳤습니다. 이것이 시의 힘이라면 시의 원형은 감동이 아닐까요?
수십 년 간 낙서도 안 되는 글을 써오면서, 귀를 막고 들어도 저를 거친 바람 속으로 걸어가게 하는 조용필이나 장사익의 호소력 있는 노래처럼, 대사 한 마디 없어도 몸짓만으로도 침도 삼킬 수 없을 만큼 목젖을 아리게 하는 최불암이나 고두심의 연기처럼 시를 쓸 수 없을까 하는 것이 저의 화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조완형 시인의 참 소박한 시 한 편이 그 해답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완형 시인의 시는 왜 빙하를 녹이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요?
빈곤하기 때문에 직장을 얻어 서울로 가는 자식에게 방 한 칸도 얻어줄 수 없는 애비가 눈물과 피를 뽑아 그린 그림 곧, 그의 삶이 해답인 것 같습니다.
비판론자들은 너무 쉽게 떠오르는 그림도 시냐고 비하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머리를 쥐어짜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그들이 원하는 소수의 머리 좋은 독자와 그렇게 난해한 시를 쓴 시인 말고는 외면해버리는 것도 시냐고 대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백 번 천 번 물어도 진리인 것은 시의 생명은 감동이고 그 감동의 근원은 시를 쓰는 사람의 생활이라고 믿습니다.
조완형 시인, 이분은 대전의 변두리에서 서른 명 정도의 신자를 위해 기도하는 작은 교회의 목사님이며, 대전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그의 고향 충북 음성까지 가기에도 버거운 고령의 승합차 한 대가 있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굳이 이분에 대해서 더 알려고 하면 모를 리야 없겠지만 제가 이분에 대해서 궁금해 하면 목사인 이분도 직업상(?) 저의 구질함 속으로 서슴없이 끼어들 수도 있을까 싶어 저는 제게도 남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는 일은 기웃거리지 않으려고 제 마음 속에 금줄을 치고 묵언을 하는 편입니다.
몇 년 전 초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음기에서 해소기침소리 심하게 가르릉거리는 승합차 한 대가 양평 제 오막살이의 적막을 깨웠습니다. 조완형 시인이었습니다. 그때 이분은 습작시를 여러 편 들고 와 제게 내밀고는 벌 받는 초등학교 학생처럼 뻘쭘하게 서있었는데 기억컨대 그 중 한 편은 뱉어도 뱉어도 목에 걸린 가래처럼 아직도 제 가슴에 맺혀있습니다.
이분은 가난한 날의 그리움보다, 당신의 고물차가 고속도로에 주저앉을지도 모른다는 낭패감에 초등학교 동창회 때마다 차의 시동을 걸다 포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하나님의 든든한 빽을 믿고 용기를 내어 모교 운동장으로 가게 됩니다. 이분은 마른버짐 핀 얼굴과 목에 걸린 땟줄 자국 아직 남아있는 깨복쟁이 친구들과 어울려 철없던 시절의 웃음을 상기해가며 어지럼이 나도록 웃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는 무한량으로 넓었던 학교 운동장이 지금은 축구장의 반도 안 되게 작아진 까닭을 궁리하다 어린 날의 흑백사진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동창생 한 명이 벤츠를 타고 큰 바위 얼굴의 개더골더(무엇이든 만지면 황금으로 만드는 사람)처럼 등장합니다. 그러자 친구들은 조 시인을 남겨놓고 한껏 광택을 내고 나타난 벤츠 속의 인물이 그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예언의 인물 ‘큰 바위 얼굴’이라며 밀물처럼 몰려가 콧소리를 내며 환호했습니다.
갑자기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조완형 시인, 그는 허상 앞에 선착순으로 줄을 서려는 동창생들의 껍데기들을 보며 고물 승합차에 소외감만 잔뜩 싣고 돌아왔습니다.
제목은 기억할 수 없으나 이 시도 앞의 시처럼 화려한 수사는 없지만 무기교에서 오는 진솔함이 아직도 제 가슴에 가래처럼 걸려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분의 시를 보면서 저는 가난하지만 가난을 감추려고 하지 않는 이분의 순백한 삶이 감동을 더 감동답게 만드는 시의 근원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분과 헤어지면서 저는 제가 돈을 조금 벌면 이분의 차보다는 유통기한이 나은 저의 차를 이분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푼돈이라도 생긴 낌새만 채면, 저를 은밀히 지켜보다 그 푼돈을 어김없이 낚아채 가는 제 운명의 신이 계신데 제 주제에 돈은 어림없고 저의 선심도 그저 꿈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꿈이란 것이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오그라드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기에 저는 제 선심을 거둬들이고 이분이 당신의 차를 타고 고속도로에서 멈추는 일 없이 집으로 가기를 빌었습니다.
저의 권두칼럼은 언제쯤 궁기를 면할 수 있을까요? 책의 머리글부터 회색 칠을 해서는 안 된다고 늘 저를 꼬집지만 이제는 제 색깔로 굳어져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은 빈자가 되고부터인가 봅니다. 거기다 병원 출입을 자주하게 되는 나이가 더해지다 보니 저의 궁기는 더욱 더 제 색깔을 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동병상련의 교집합 속에 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제 금기의 금줄을 더욱 견고히 조이고 있습니다.
권두칼럼, 지독히 하기 싫은 숙제, 이놈의 숙제 때문에 책이 나올 때마다 머리를 쥐어짜내다 책이 늦어지곤 합니다. 남에게 써달라고 청탁을 할 수도 있는데 불치의 빈궁 때문에 모자라는 머리로 끙끙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가난한 자의 속성입니다.
궁기로 목이 졸릴 때마다 직선거리로 백 미터쯤 떨어져 살고 있는 대학교 17년 후배가 오버랩 됩니다. 부부가 함께 조각을 하는 이들은 몇 년 전 기름보일러도, 연탄보일러도 다 고장이 났는데도 중고 보일러 살 돈도 없어 배운 도둑질 실력을 발휘하여 얼치기 나무난로 하나를 만들어 겨우 얼음집 신세를 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 전기장판의 전자파 때문에 아이들 건강이 걱정된다며 수심이 가득한데, 온수매트 살 돈이 아까워 전기장판을 깔고 자는 나는 그의 아내에게 가난하면 전자파도 달게 받을 수뿐이 없다는 말을 허공으로 흘리며 그녀의 명치와 제 명치에 동시에 대못을 박습니다.
제주의 강홍탁 시인이 올해도 귤 세 박스를 보내왔습니다. 매직으로 굵게 별표를 한 박스의 귤은 당도가 높다며 꼭 저더러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길로 우체국으로 달려가 딸과 손자 먹으라고 택배를 보내고 돌아와 나머지 한 박스를 들고 가난한 후배의 집으로 갑니다.
며칠째 내린 폭설로 얼음집에 갇혀있습니다. 조완형 시인의 시와 강홍탁 시인의 사랑, 그리고 귤껍질을 까며 목젖이 드러나도록 행복해하는 후배의 초등학생 아들, 딸의 웃음 알갱이들이 들립니다. 그래서 가끔은 외롭지 않습니다.
-시인정신 2013년 겨울호
첫댓글 누군가 가난은 형벌이 아니라고 얘기했다지만 가난은 형벌입니다.
요금을 내지 못해 보일라가 끊긴 집에서 겨울의 며칠을 지내 본 사람이라면 그 형벌의 기억을 지울 수 없지요.
그러나 정말 아픈 형벌은 그 추위가 아니라 이웃의 무관심이더군요.
벤츠 타고 온 친구를 졸졸 따라 가는 동창회 친구들의 뒷모습같은....
자본주의 사회는 분명 자본이 중심이 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사실 시를 쓰는 것 외엔 별로 재주 특히 돈 버는 재주가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가난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은 그 가난을 통해 사랑을 배워 시를 씁니다.
그 시가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거죠.
시인들을 축복하자구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점들이 속속 드러나는 요즈음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픈 글에 눈가가 젖어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