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인간학으로 공부하면 일단 그것을 의식적으로 체험합니다. 나중에 그에 관해 명상하면 여러분 내면에서 정신적 -영적인 소화과정이 일어납니다(인간에 대한 앎에서 나오는 교육과 수업, 2024, 97)."
필자는 슈타이너를 공부하면서 '정신'을 이해하게 되는 까닭이 참 궁금했다. 예컨대 다만 슈타이너 책을 읽을 뿐인데, 정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미흡하지만, 처음보다는 슈타이너책을 이해하는 수준이 높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슈타이너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책 내용이 계속 -마음속에서- 작용해서 정신적 -영적인 소화과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책을 덮어도 내 마음 속에서 그 과정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면, 만약 이런 과정을 내가 파악한다면 더 깊이 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짐작하기에 이 과정이 인간의 정신기관의 발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그 발달과정을 돌이켜보고 달라진 점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것이 질문이다.
첫째, 달라진 점은 불가의 오계를 지키는 일이 어렵지 않아졌다. 과거에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 화를 내거나 짜증을 자주 내었는데 이것이 많이 없어졌다. 이를 슈타이너는 인간이 몸의 근육을 기르는 것처럼 영혼도 근육을 기를 수가 있다고 했는데, 그나마 영혼의 근육이 길러진 듯하다. 정신세계는 물질세계와 많이 다르기 떄문에 영혼의 힘이 길러지지 않으면 정신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다. 여러가지 파괴적인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막는 장치가 영혼의 힘, 근육이다.
그 중 하나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물질세계는 사물을 보고 그 사물을 파악하는데, 정신세계는 만나는 즉시 하나가 된다. 특히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만나는지도 모르는데 만나는 즉시 하나가 되어 버릴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다. 내가 만약 지금 감정에 치우쳐서 그 감정이 어떤 동물(악마 등등)에 가깝다면, 그 동물을 만나게 되는 것이 정신세계다. 그렇게 되면은 나의 정신이 파괴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정신세계에서 우리는 정신을 그렇게 조우한다.
둘째, 세상의 어려움에 대해서 대처하는 방법이 여유가 있어졌다. 조급하게 마음을 먹어서 발을 동동 구르지 않고, 힘든 상황을 가만히 살펴서 방법을 찾는다. 이렇게 하면은 어려움에 매몰되지 않아서 사건이 해결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 그리고 가만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간이 가는 것을 지켜보면은 여러가지 문제가 드러난다. 상대의 모습도 보이고, 그러나 문제는 그렇다고 해도 나의 정신이 쏠리면 그 함정에 빠지는 것이 인간이다. 이유는 정신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함정에 빠지지 않을려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언제나 다스려야 한다. 즉 매몰된 영혼이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연습인데 연습을 자꾸하다 보면 조금씩 빠져나오지만 어느 순간 놓치면 함정에 빠지고 만다. 마치 동물이 덫에 빠지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셋째, 상대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그렇게 하는 까닭을 파악한다. 예컨대 물건을 팔기 위해서 상대를 부추기는 행동 등을 파악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는 상대에게 끌려간다는 사실이 또 참 아이러니하다. 인간의 마음이 참 묘한데, 이렇게 라도 파악하므로 차츰 덜 끌려가게는 될 것이다.
이것이 그 정도가 다를 뿐 일종의 가스라이팅, 현대는 이것을 마켓팅이라고 하는 듯하다. 인간의 약한 부분(감성)을 공략하는 것이 마켓팅이고, 가스라이팅은 상대의 약점을 노려서 범행하는 것이다. 상대를 정신적으로 지배해서 따르게 하는 것인데, 과거에는 끌려갔다면, 이제는 가스라이팅을 파악한다.
다음은 여담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필자가 이사온 후로 계속 다닌 세탁소가 있다. 이사온 후로 다녔으니 7,8년은 흘렀는데, 이 아저씨가 근래 갔더니 이상한 말을 자꾸하였다. 문을 닫는 시간이 지났는데 오늘은 못 닫고 일이 많아서 한다는 등 필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 말을 계속하였다 드라이 값을 주는 데도 성질을 내면서 말하였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지켜보았더니, 필자가 조바심을 내게끔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필자가 겁을 먹고 세탁소 아저씨의 말을 따르게 하는 듯하다.
그래서 가만히 필자의 마음을 지켜보니 서서히 조바심이 일고, 자꾸 세탁소에 가야 하는 그런 마음의 움직임이 일었다. 실제로 집에 와서 그동안 모아 둔 옷걸이(세탁소에서 걸어주는 옷걸이)를 챙기고 있는 자신도 보았다. 필자의 '마음'이 그 아저씨 말을 듣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옷걸이를 챙겨들고 세탁소로 향했다. 물론 필자는 필자의 마음을 여전히 들여다 보고 있는 중이다. 아저씨는 여전히 가스라이팅을 했지만, 필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가져간 옷걸이를 주고 맡긴 세탁물을 찾아 왔다.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 왜 옷걸이를 챙겨주었을까? 첫 번째는 그렇게 하니 다시 그 세탁소에 가고자 하는 마음, 미련이 싹 없어졌다. 아니면 부추기는 마음이 계속 일어났을 수도 있다. 이것이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마음을 방지하기 위함인 듯하다. 정신, 마음이 보이지도 않는데, 거기에서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나면 나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되 돌릴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이런 관점에서 보시와 봉사가 나를 위함이라고 하는 이유가 보시와 봉사를 하면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런 부정적인 마음을 이겨낼 수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마음, 정신이 보이지 않는데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날 경우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범죄는 이런 마음에서 스스로 일으킨다. 사기를 당한다는 말 역시 성립하기 어렵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가스라이팅 등을 당할 경우, 무엇을 주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끊어내는 방법이 될 듯하다. 물론 그 무엇은 아주 작은 그냥 흉내만 내는 것이다. 옷걸이처럼.
넷째, 다음은 지혜이다.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으면 지혜를 증득한다고 하는데, 슈타이너의 주장은 상상, 영감, 직관이다. 즉 같은 개념이다. 요컨대 정신세계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지혜의 증득이다. 문제는 정신세계가 보이지 않아서 드러내서 말하지 못하므로, 스스로 체험을 통해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달 역시 도제식 방법이다. 이제는 영상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슈타이너의 방법은 아스트랄체가 외부로 촉수를 뻗는 방법이다. 아스트랄체의 속성은 방해가 없으면 계속 나아가는데, 방해를 만나면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아가도록 하는 존재가 자아이고, 아스트랄체의 감정은 열정, 사랑이다. 열정과 사랑을 가진 후 자아가 의지를 내면 아스트랄체가 외부로 촉수를 드리운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일을 할때 의지를 내면서 꾸준히 하면은 아스트랄체가 바깥으로 향한다.
이것을 명상으로 표현하면, 눈을 감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면 서서히 호흡이 잦아진다. 자신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무의식에는 에테르체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호흡과 혈액순환과 맥박이 일어나는 것은 에테르체의 힘이 있기 때문인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에테르체 속에 내재하는 자아를 우리가 만나는 것이다. 이때 아스트랄체의 의지와 연결되면, 자아는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이 명상 수행의 방법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정신세계에 입문하게 되고 지혜를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상상과 직관은 다소 파악했는데 영감은 아직도 어렵다. 위에서 상대의 가스라이팅을 파악하는 것은 일종의 직관이다. 요컨대 직관을 해야 파악한다. 상상은 오성혼이 사고를 할 경우 에테르체가 드러내 보여주는 상이 상상이다. 예컨대 내가 어떤 사고를 하면 그 사고에 따른 상을 에테르체가 보여주는 것이다. 먼저 에테르체가 보여주는 상을 더 큰 의지로 없애야 한다 그러면 영혼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한다. 오직 영혼만의 세계가 영감의 세계이다. 그리고 다시 영감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더 큰 에너지, 의지를 내어야 직관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수준의 정도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의 갭이 있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야 하는 것뿐이다. 이런 과정이 인간의 삶이다. 자신이 알든 모르든 우리는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