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55) 시 합평의 실제 4 - ⑥ 박영애의 ‘작약꽃’/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
시 합평의 실제 4
Daum카페/ 작약꽃
⑥ 박영애의 ‘작약꽃’
< 원작 >
작약꽃/ 박영애
그 자리 그대로
가지런히 모은 발
담장을 넘나들지 못해도
기죽지 않는다며,
빨간 립스틱도 부럽지 않다며
함빡 웃네
살랑 바람이 불면
문지방 넘어 사뿐히 걸어오는 버선코
어느 종갓집 며느리
작약일까 모란일까
치맛자락을 툭 치니
고개 숙인 수줍은
미소
< 합평작 >
작약꽃/ 박영애
가지런히 모은
발
넝쿨장미처럼
담장은 넘나들지 못해도
바람 불면 문지방 넘어
사뿐히 걸어오는
버선코
작약일까
< 시작노트 >
넝쿨장미가 어우러진
아파트 화단을 지나며
붉은 장밋빛에 주눅 들지 않고
기품 있게 서 있는 작약을 보며
발길이 멈추곤 했지요.
조그만 키에 비해
큰 잎이 우아한 여인 같았습니다.
바람 부는 날이면 꽃잎은 낭창거리는
치맛자락 같더군요.
마지막 연에 ‘천생 여자구나’
쓸까말까 망설이다가 삭제하여 제출합니다.
< 합평노트 >
마지막 연에 ‘천생 여자구나’라고 안 쓰기 잘했습니다.
썼다면, 큰 사고를 칠 뻔했습니다.
시를 진부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의 문제점은 한 작품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약꽃의 한 가지 특징만을 포착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야 하는데,
작약이 지니고 있는 전설이나 겉모습 등을 모조리 싸안으려고 한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작약은 가지런히 발을 모으고 있기 때문에 넝쿨장미처럼 담장을 넘지 못해도
바람이 불면 문지방 너머로 사뿐히 걸어오는 버선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 내용일 것입니다.
따라서 합평한 내용처럼 간략하게 수정하기로 합니다.
많이 삭제했으므로 원작과 합평작을 대조해가며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의 백미는 마지막 연의 “작약일까”라고 형상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작약이구나’ 하고 단정 짓는 것보다 의문의 형식을 취하는 설의법을 차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법은 대답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평서문보다 강한 여운을 불러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안현심, 도서출판 지혜, 2021)’에서 옮겨 적음. (2023. 6.11.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55) 시 합평의 실제 4 - ⑥ 박영애의 ‘작약꽃’/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