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老老) 상속
두 자녀와 저녁을 먹다 집 얘기가 나와 농담조로 “아파트는 너희 둘이 사이좋게 나눠가지라.” 고 해보았다.
그랬더니 반응이 뜻밖이었다.
“어느 세월에요?.”
할 말을 잃고 가만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우리 세대가 평균 수명인 80대까지만 살아도 자녀들도 50대다.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장만하려면 한 푼 안 쓰고 월급 다 모아도 25년 걸린다는 통계도 떠올랐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는 일본의 고민거리 중 하나는 ‘부의 고령화’다.
일본은 금융자산의 60%를 고령층이 갖고 있는데 고령층은 여간해선 투자나 소비를 하지 않는다.
반면 젊은 세대는 재산이 많지 않아 투자나 소비를 할 여력이 없다.
돈이 고령층에 머물며 돌지 않는 것이다.
일본이 겪은 장기 불황의 한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속이 이루어져도 문제다.
일본에서 상속하는 사망자 나이가 80세 이상인 비율이 70%가 넘는다.
또 2022년 기준으로 유산을 상속받는 사람 중 60세 이상의 비율이 52%였다.
절반 이상이 60세 넘어 물려받는 것이다. 이른바 ‘노노(老老) 상속’이다.
이 같은 ‘자산 잠김’이 이어지면 국가 경제에는 재앙이다.
일본에선 이에 따른 세대 갈등도 나타났다.
지난해 37세인 나리타 유스케 예일대 조교수는 “고령화 부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결국 고령층이 집단 자살 또는 집단 할복하는 것 아닐까” 라고 말한 것이 알려져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나중에 “추상적 은유였다”고 해명했지만 일본 사회의 공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기시다 내각은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2022년 ‘부의 회춘(回春)’ 정책을 실시했다.
막대한 고령층 자산을 젊은 세대로 이전시키기 위해 사전 증여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종 세제를 정비한 것이었다.
자녀가 주택을 최초 구입할 때 일정 금액까지 지원해도 비과세하고 손자녀 육아비와 교육비로 각각 1000만엔(약 9,140만원), 1500만엔까지 과세하지 않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노노 상속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진행 중이거나 곧 본격적으로 닥칠 문제다.
부작용이 커지기 전에 우리에게도 적절한 수준의 ‘부의 회춘’ 정책이 필요할 것 같다.
지난해 자녀 결혼자금 증여 시 공제한도를 1억5,000만원으로 늘렸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정부가 상속세 공제액을 늘리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상속만 아니라 증여를 통해서도 사회의 부가 젊은 층으로 자연스럽게 일반서민은 물론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뭣 같은 상속세를 없애 버리면 어떤 일이 생길까?.
세수 부족으로 국가 재정이 거덜이 날까?.
세법 이론을 떠나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액수와 규모가 작으나 크나 내가 가진 재산은 법률이 정한 세금을 모두 납부하면서 모은 것이다.
대장동 백현동의 저수지 돈이나, 조자룡 헌칼 쓰듯 법카를 살림에 사용해 이룬 재산이 아니라면 대개는 그렇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정직하고 공개적으로 형성한 재산을 경제공동체인 내 자녀에게 건네 주려면 또 세금을 내야 한다.
그것도 OECD 최고 수준의 엄청난 고액을 세금으로 바쳐야 한다.
이것을 사회주의 개념이 섞인 비자본주의 정책이라고 비난하면 극우로 매. 각오를 해야 한다.
이념을 1919년에 고착시켜 놓고 허구헌날 죽창질로 세월을 희롱하는 족속을 퇴물로 규정하면 토착왜구가 되는 것과 같은 룰이다.
그렇다고 상속세를 아주 없애라는 말은 아니다. 세금으로 국민과 기업이 휘청거리면 나라는 뭐가 되겠는가?.
= 톡으로 받은글 정리 =
漢陽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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