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 10일 수요일
[ (녹)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
입당송
시편 48(47),10-11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본기도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0,1-3.7-8.12
1 이스라엘은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 열매를 잘 맺는다. 그러나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들도 많이 만들고, 땅이 좋아질수록 기념 기둥들도 좋게 만들었다.
2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하니, 이제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분께서 그 제단들을 부수시고, 그 기념 기둥들을 허물어 버리시리라. 3 이제 그들은 말하리라.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임금이 없지만, 임금이 있다 한들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리오?”
7 사마리아는 망하리라. 그 임금은 물 위에 뜬 나뭇가지 같으리라. 8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의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그 제단들 위까지 올라가리라. 그때에 그들은 산들에게 “우리를 덮쳐 다오!”, 언덕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 다오!” 하고 말하리라.
12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5(104),2-3.4-5.6-7(◎ 4ㄴ 참조)
◎ 언제나 주님 얼굴을 찾아라.
○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
○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 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
복음환호송
마르 1,15
◎ 알렐루야.
○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알렐루야.
복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께 바치는 이 제사로 저희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날마다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9 참조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
<또는>
마태 11,28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큰 은혜를 가득히 받고 비오니 구원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어 저희가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을 첫자리에 두셨을까요?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느님을 잘 알고 있고, 하느님께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신 구원의 역사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선포된 하느님 말씀에도 익숙하였고, 회개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어떻게 하여야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살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1,11)라는 요한 복음서의 말씀처럼, 이들은 누구보다도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예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움직이나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나요? 아니면 이미 하느님에 대해서, 또한 그분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그분과 상관없이 사는 삶에 더 익숙하지는 않나요? 익숙하거나 매우 잘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비록 함께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아주 먼 관계일 수 있음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습니다.
‘들음’이 사라진 관계를 하느님과 맺지 마십시오. 들음이 끊긴 삶은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할지라도 서로 멀어지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지금 자신이 그분에게서 멀리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삶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