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바귀의 향(香) / 정영인
학년의 동료 교사들과 자유로(自由路)를 신나게 달려 허브농원이라는 곳에 들렸다. 허브농원이라기보다는 허브와 허브제품, 각종 조화(造化), 음식점 등이 한 동아리로 이루어진 허브 중심의 가게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이 들어 차있다. 평일인데도 이렇게 많으니 주말이면 벅적벅적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중년의 아줌마들이 대부분이다.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각종 허브향이 뒤섞여 코를 찌른다. 어찌나 강한지 골이 띵할 정도이다. 서양의 향은 우리의 향보다는 강하고 자극적이며 직접적이다. 향수의 원조가 서양이고, 서양인들이 동양인보다 남다른 체취 때문에 향이 발전되었다는 설이 있다.
삥 둘러보니 여러 가지 것들의 값이 허술하지 않다. 큼직한 조화(造化)를 꽂을 수 있는 유리병이 4만원, 그에 걸맞게 꾸민 조화가 7만원, 도합 11만원이나 된다.두어 바퀴 휘둘러본다. 허브향에 대한 알레르기가 생기는 지 연신 재치기가 나온다. 갖가지 허브향이 혼합된 향기는 갈수록 골이 갈수록 띵해진다.
시골 공기가 흐르는 밖으로 나왔다. 밖의 한 귀퉁이에는 그곳 할머니가 여러 가지 봄나물들을 팔고 있다. 참나물, 냉이, 씀바귀, 돌나물, 돌미나리, 고들빼기, 고수, 파, 더덕 등을. 할머니 옆에 앉아 본다. 풋풋한 시골 향기가 살포시 스며든다. 할머니는 자연산이라며 이것저것 사라고 채근한다. 봄볕에 새까맣게 탄 얼굴, 뭉툭하게 거칠어진 손마디, 툭 불거진 심줄, 목리문(木理紋)처럼 구비치는 주름살이 시골 농사꾼이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진다.
고들빼기는 김치를 담가 먹고, 씀바귀는 삶아서 무쳐 먹으면 입맛 살리는 데 최고라고 중언부언한다. 나는 동행한 동료들에게 이것저것 사라고 바람을 잡는다. 자연산이고 무공해 식품이며 봄의 입맛을 찾는데 으뜸이라고. 나도 씀바귀 한 봉다리와 더덕 몇 뿌리를 샀다.
자연산이 아니고 비닐하우스산이면 어떠리. 그러려니 하고 먹으면 족하지 않은가. 나물에서 나오는 향은 풋풋하고 은은하다. 씀바귀의 쌉쓰름한 내음과 돌미나리의 상큼한 냄새, 푸새들의 향이 어린 시절로 잠기게 한다.
우리 봄나물들의 냄새나 향은 코를 자극하지 않는다. 은은하고 간접적이다. 마치 나물을 파는 시골 할머니에게서 풍기는 소박함과 구수함처럼. 냉이 넣고 끓인 된장국의 구수함, 쑥국의 상큼함, 달래, 미나리, 씀바귀 나물의 쌉쓰름함……. 허브향보다 씀바귀에서 풍기는 향이 더 마음을 끈다. 우리 자연의 향기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침향(沈香)이라는 것이 생각난다. 침향은 땅속에 파묻힌 나무가 오랜 세월 동안 썩지 않고 있다가 홍수로 인해 솟구치게 된 나무라고 한다.감나무, 향나무, 참나무가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파묻혀 썩지 않고 있다가 땅위로 솟아올라 천년 동안의 심오(深奧)한 향기가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후손들에게 침향의 향기를 물려주기 위해 일부러 강물에 참나무를 던져 넣었다고 한다.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정갈한 꽃과 향기를 피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좋은 향기를 맡기 위해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향기를 듣기 위해 오는 것을 문향천리(聞香千里)라고 하였다. 좋은 향기는 천 리 길을 퍼져나가고, 좋은 향기를 맡기 위해 천 리 길을 마다 않고 찾아온단다.
사람에도 그 사람 나름대로 향기가 있게 마련이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온갖 향기를 다 갖고 있다. 육식 위주의 서양인에게는 누른 내가 많이 난다. 그래서 그 냄새를 희석시키기 위해서 향수가 생겼다고 한다. 아마 인간에게는 선악미추(善惡美醜)의 향이 진동할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추악한 냄새가 도처에서 진동한다. 더구나 사회 지도층의 부와 권력을 잡기 위한 아귀다툼과 이전투구는 시궁창 냄새처럼 썩어 문드러진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아무리 탈취제를 뿌려도 그 냄새는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욱 기승을 부린다.당사자들은 그 냄새가 자기 몸에 짙게 배어 냄새를 느끼지 못한다. 마치 애연가가 자기 몸에 밴 담배 냄새를 못 맡듯이…….
더구나 올해 양대 선거를 치를 돈과 권력의 유착(癒着) 냄새는 얼마나 풍길 것이며, 그 냄새를 맡으려 얼마나 몰려들 것인가? 한 마디로 부정부패의 한국인의 냄새가 세계까지 진동시키고 있다. 아주 무서운 것은 남의 냄새는 코를 벌름거리며 잘 맡으나 정작 자기의 구리고 썩는 냄새는 잘 못 맡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것저것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잡식을 하는 인간의 냄새는 지독하다. 게다가 먹을 것, 안 먹을 것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우는 인간의 탐욕은 얼마나 지독스럽고 역겨운 냄새를 뿌리는지 모른다. 이런 냄새를 정화시켜주는 향수는 진정 없는 것일까?
우리도 문향천리라 하듯 착하고 아름다운 냄새를 들어보자. 소나무에서는 송향(松香)이 나고, 오랜 된 더덕에서는 더덕 냄새가 난다. 천년을 땅 속에서 묵은 참나무에서는 침향이 난다. 침향처럼 참다운 인간향(人間香)을 풍기는 사람이 있다. 그 인간향은 시공간(視空間)을 초월하여 문향천리이다. 마치 벌과 나비가 꽃의 향기를 쫓아 모여들 듯이……. 꽃들의 향기는 세 가지 종류이다. 장미처럼 꽃도 아름답고 향기도 아름다운 것이 있는가 하면 모란꽃과 같이 꽃은 아름다우나 향기가 별로인 것도 있다. 또 수수꽃다리처럼 꽃은 별로인데 향기가 진동하는 것도 있다. 또 가까이에서는 향기가 진동하지만 멀리 떨어지면 향기가 별로 나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면, 라일락처럼 가까이에서는 향기가 있는 듯 없는 듯하나 멀리 갈수록 향기가 들리는 것도 있다.
인간향(人間香)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서는 진흙 속에 연꽃처럼 은은한 향기가 풍기는 사람도 많다. 나는 그저 수수꽃다리처럼 꽃은 별로이나 향기가 멀리까지 은은하게 들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침향은 못될지라도. 송편에서 풍기는 은은한 솔향기, 향기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 진흙탕 속에서 정갈한 향을 풍기는 연꽃.
아무래도 나는 강력한 허브향보다는 그런 씀바귀와 같은 향기소리를 듣기를 좋아한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편지를 읽는 향기, 우리 조상들의 청백리(淸白吏)의 향.너무나 부정부패의 썩어 문드러져 가는 이 우리 사회를 정화시킬 그런 향기는 들리지 않는다.
첫댓글 향기와 악취를 비유하여 가며 사회 부정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여 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