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태우고 안전밸트를 매어 주네. 낯익은 사내 웃으면서 손수 시동을 걸어주네. 참 친절도 해라. 죽음이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다니! 순간 끔찍한 공포를 잊고 말았네. 다녀올게요. 무사히 잘 다녀올게요. 가벼운 나들이처럼 손을 흔들며 마주 웃어 주었네. 옆자리엔 임신 중인 아내와 뒷좌석엔 어린 아들놈이 타고 있었네. 문을 닫으며 사내가 또 웃었네. 무사 할거야. 별 일 아니야. 그 인자한 눈이 그렇게 말했네. 나는 널 낳은 아비야. 너에게 팔과 다리를 준 아비야. 자그마치 네 몸값이 얼만지 아니? 그래요. 억대가 넘는 몸값을 알아요. 복제인간을 만드신 위대한 아버지. 내 가족의 갈비뼈는 아버지의 것과 비슷해요.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자동차 한 대를 위해 일가족을 거느린 아버지. 이젠 당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요. 도무지 방어防禦를 모르는 제 이름은 더미*거든요. 아, 아버지 아무 걱정 마세요......이제 악셀을 밟고 벽을 향해 달려가면 되나요?
*더미(dummy) 센서가 달린 실험용 인형, 각종 자동차 충돌시험에서 운전자 대신 가상의 사고를 당한 뒤 예상 상해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함. 자동차 한 대를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더미가 쓰러진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