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68) 이미지, 비유, 차이성 - ① 이미지와 상상 2-1/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
이미지, 비유, 차이성
네이버블로그/ 이미지트레이닝 "상상"
① 이미지와 상상 2-1
인간의 행위와 결과물,
그리고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모두가 이미지 즉,
감각적 인상을 가진다.
행동거지는 물론 말 한 마디,
기호 하나,
이미지를 갖지 않는 것이 없다.
시라고 하는 창의적 언어 텍스트도 이미지의 향연장이라 할 수 있다.
통용되는 일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차이 나는 세계는 차이 나는 이미지 자체를 통해 접근의 길을 열기 때문이다.
시 쓰기뿐 아니라 읽기 행위도 이미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미지(image)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근육감각,
운동감각 등 감각으로 감지된 현상이 기억들―
사실과 추상의 기억들과 함께 마음에 되살아나는 것으로,
당연히 인자와 소통의 매개가 된다.
시에 있어서 이미지란 전달하고자 하는
특정의 관념과 정서를 감각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으로,
보다 적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한 물리적 소통 통로가 된다 할 것이다.
넓게 보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아르케)으로 든 ‘물’도 이미지이고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 물, 불, 바람, 땅, 그리고
동양의 오행,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등도 원소 이미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소 이미지들은 저마다의 체계, 질서, 관념을 내재하고 있다.
시에서의 이미지는 독단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미지들의 결합 상태 즉, 이미저리(imagery)로 체계화된다
이미지가 심리적인 지각 작용이라면 이미저리는 이미지들이 연계되어 문맥화한 상태.
우리가 흔히 심상(心象) 또는 이미지라는 말로 대체해 쓰는 말은 대게 이미저리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이는 상상(imagination)의 산물이고 상상이란 이미지들을 결합하고 변용, 편집하여
크고작은 이미저리를 연출하는 정신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다 논증해낼 수는 없는 심층과 표층 이미지들의 연계와 결합은 상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시 속의 모든 현상과 사물은 규정 가능한 ‘미규정의 체계’ 내에 있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인간의 상상 능력은 미규정적 존재들을 탐색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도덕적 감수성과 함께 인간의 유별난 감정적이고 미적인 감수성은 이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새로운 미적 사회적 전망을 획득하고 선순환적 확장을 거듭하여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미적 존재(Homo estheticus)로 격상시킨다.
물방울이 생겼다 터지며
빗줄기 수대로 꽃이 핀다
호수에 내리면 봉평 메밀꽃
둠벙이면 달래꽃
그러다 골목길 접어들면
저마다 초롱꽃
세상에 온통 꽃으로 변하는 봄이면
내리는 비마저도 개화하네
동그랑 동그랑 서운암 연못에
크고 작은 포물선이 퍼지며
무엇이든 피어 꽃이 되어 보라 하네
스님 옷자락에 난을 치는 비
내 검은 우산에서도 하얗게 핀다
―조성범, 「개화」 전문
‘봄비의 개화’가 시의 전경(前景)이자 주도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비는 비에서 나아가 수(數) 대로 꽃이 되어 피어나는데,
호수에 닿으면 봉평 메밀꽃이 되고 물 둠벙에서는 달래꽃,
골목길 처마에서는 초롱꽃, 스님 옷자락에서는 난을 치고 검은 우산 위에서는 하얗게 핀다.
각별한 이미지의 세계요 심미적 상상력이다.
이미지들로 하여 시적 주체는 모든 빗줄기, 낱낱의 빗방울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 새로운 존재들에 명명을 한다.
이렇게 문맥화 하는 상상이 힘, 그 내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세상이 온통 꽃으로 변하는 봄이면/ 내리는 비마저도 개화하네/ 동그랑 동그랑 서운암 연못에/ 크고 작은 포물선이 퍼지며/ 무엇이든 피어 꽃이 되어 보라 하네〉.
즉 봄의 개화와 봄비와 서운암으로 표상되는,
만상에 대한 생명의식이요 자비심이요 불교적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 자체를 추적하는 심미의 시도 있다.
버들강아지 강아지풀에도
강아지는 없다. 어차피
강아지도 강아지는 아니다.
한없이 떠도는 시니피앙, 외진
대야미역으로 가는 굽은 길
두 길 높이의 시멘트 담장 어깨에서
이삭을 여럿 단 강아지풀 몇 포기가
실바람에 꼬리를 흔들며 가을볕에
이삭을 말리고 있다. 흙손으로 꼼꼼히
마름질해 놓은 시멘트 담장의 저 높은 데를
어떻게 뚫고 솟아올랐을까. 엉덩이 깔고
담장 밑을 샅샅이 뽑아대는 ‘희망 근로자’들의
매서운 손길을 피해
하늘 곁으로 올라가 싹을 틔운 강아지풀,
시(詩)의 속눈썹이 길어지는
볕 좋은 가을날
강아지는 어디서 꿈꾸는가.
―조명제, 「하늘 강아지풀」 전문
강아지를 감각적으로 전경화 하고 있긴 하나 문맥파악은 힘든 시이다.
제 4행의 〈한없이 떠도는 기표(시니피앙, signifié)란 필연도 고정 관념도 아닌, 떠돌기만 할 뿐인 것이다.
강아지풀에 기의가 없음은 강아지풀에 강아지가 없는 거와 같다.
‘시의 긴 속눈썹’이란 까끄라기가 긴 강아지풀처럼 감각만 남은 시니피앙,
내용은 떠돌기만 할 뿐인 심미적 차원을 겨냥한 이미지일 뿐이라 할 수 있다.
시가 수록된 특정 연도의 시선집 해설에 의하면 ‘강아지’의 일상적 의미를 제거하고
강아지풀을 희망 근로자에 비유, 새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고통과 꿈이 강아지풀에 이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일반의 개념적 의미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지 않을까?
〈한없이 떠도는 시니피앙〉이나 〈어디선가 꿈꾸는 강아지〉의 동기화(motivation)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서운 손길〉로 일하는 ‘희망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일을 야무지게 해냈을 뿐인,
담장 높은 데 자리 잡고 있는 강아지풀의 후경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시는 랑그적 의미를 거부하고 가을날 강아지풀의 이미지와 강아지,
외진 대야미역 가는 굽은 길, 높은 담장과 시의 속눈썹 등의 이미지를 연동하여,
무의식적 고독과 추억과 다정(多情)의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개진해 보인다고 할 것이다.
이미지는 참신하면서도 나름의 질서에 충실할 때 핵심 맥락을 구현할 수 있고,
걸맞은 반응을 얻게도 된다.
독자는 새로운 시공, 새로운 의미를 체험할 수 있고,
또 다른 미지(未知)의 세계를 연상적으로 꿈꿀 수 있다.
< ‘차이나는 시 쓰기, 차유의 시론(신진, 시문학사, 2019.)’에서 옮겨 적음. (2023. 9. 2.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68) 이미지, 비유, 차이성 - ① 이미지와 상상 2-1/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