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72) 이미지, 비유, 차이성 - ③ 동일성과 차이성 2-2/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
이미지, 비유, 차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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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동일성과 차이성 2-2
언어는 구체적인 삶을 반영한다.
우리의 존재와 삶이 동일성 외에 차별성에 의해서도 존재하듯
모든 텍스트의 생성과 해석에는 동일성의 원리와 함께,
차이성이라는, 차이성의 원리에 의해서만이 그 변별력을 갖는다.
시적 언술의 보다 기본적 동인(動因)이 되는 차이성의 원리에 관심을 재고하여야 마땅하다.
일반화 하고자 하는 동일성의 이면에는 차별화의 긴장 지향성(tension)이 있어 온 것이다.
차이성의 비유는 언어 표현과 실제의 의미 사이에 간극(대조를 포함)을 조장하고,
언어표현을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상태로 방치하는가 하면 개념파괴나 언어의 우연적 만남과 같은,
차이 자체를 목표로 삼으려 하기도 한다.
이들의 문맥적 불합리와 모순과 상식 부정성은 텍스트 안팎의 상황적 맥락에 의해 이해될 뿐이다.
비유적 원리를 갖되, 비유되는 두 사물 간의 차이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상황적 맥락에 의한 재문맥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언술 전략인 것이다.
M. 블랙은 고대로부터 비유에 대한 관점을 정리하여,
대치론(代置論), 비교론, 상호작용론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하였거니와
유사성(은유)과 인접성(환유)이 대치론에 의하거나 상호작용론에 이르는 동일성 지향의 표현이라면
상호작용론에서 유희론(또는 해체론)에 이르는 과정에는 차이성이 중심이 된다.
종잡을 수 없는 우연의 시대, 경쟁과 불신의 시대, 핵가족화에서 나아가 1인 가족이 넘쳐나는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모방 재현의 본능보다는 쾌락적 본능, 유희적 본능, 자기표현의 본능이 맹렬해지고,
차이의 비유는 불가피 세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할 것이다.
철조망가시를 감고 넝쿨장미가 꽃을 피웠다
저 꽃, 철조망가시가 뿌리다
장미꽃이 향기를 독가스처럼 뿜어내는 5월의 한낮,
햇살 한 줄기, 철조망가시에 걸려 있다
철조망가시가 햇살 속으로 깊숙이 들이민다
햇살이 뿌리 깊은 꽃을 피우고 있다
당신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서 전화하는 거야? 어딘지 모르겠어, 안도 없고 밖이 없는 곳,
처음도 끝도 없는 곳,
구름이 모여 허공 속으로 수많은 가시를 퍼뜨리고 있는 곳
무지갯빛 가시에서 무지개가 솟기도 하는 곳,
날아오르는 새떼들도 여지없이 가시가 되어
허공 속으로 박히고 있어
누구랑 있어? 혼자야
복사된 무수한 혼자
얼마 후 구름 속으로 들어갈 거야
그리고 수많은 가시로 분해되어
마침내 허공 속으로 뿌리내릴 거야
당신 말의 가시가 내 가슴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린다
내 몸에서 하루 종일 꽃이 피어난다
무수하게 복사된다
바람처럼 피어난다
구름처럼 뭉쳤다 흩어지고 뭉쳤다 흩어진다
저 꽃, 외로움의 가시가 뿌리다
―구석본, 「혼자, 꽃을 보다」 전문
일반 언어의 개념과 질서를 넘어서는 맥락이다.
전통적 의미에서 비유라 부를 만한 구절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철조망 가시가 장미의 뿌리’라거나 ‘그 장미꽃 향기가 독가스’라거나, ‘말의 가시’ 정도의 은유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예사롭지 않게 큰 차이성에 바탕한 비유들이 쓰이고 있다.
화자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을 수 없다.
상호 침해가 불가피한 세태를 사는(철조망, 넝쿨), 도시인의 고독과 허무의 절규라 할 만하다.
‘철조망 가시를 뿌리로 하는 장미꽃의 독가스’의 지수(指數) 이미지는 따뜻한 정,
자연 생명력이 고갈된 까칠한 현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장미, 가시, 뿌리, 복사되는 꽃,
외로움의 가시로서의 뿌리 등등 매재들의 낯선 위치는 동일성에 비해 한층 강화된 차이성에 의한 것들이다.
‘당신’은 아내인 듯하지만, 누구이든 화자의 존재를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업무 중에 전화를 받으면서도 외로움에 젖어있는 화자는
가시에 둘러싸여 가시를 무수히 퍼뜨리기나 할 뿐이다.
음모와 탐욕이 왕성하게 잠식하고 있는 사회, 인간은 결국 외로움을 양식처럼 먹고
살 수밖에 없는 허무의 존재라는 말일까?
장미 가시와 철조망 가시와 삶의 가시, 그리고 복사되는 가시와 외로움의 가시,
이런 가시 이미지의 연쇄는 도시의 삭막함과 불안감과 고립감을 증폭시킨다.
전화 통화 형식을 빈 다중 음성조차 운명처럼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각박함과 고립감,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업무들 사이의 건조함을 표현하고 있다 할 것이다.
주지와 매재 사이의 간극이 크고 낯설게 느껴질 때 시적 긴장감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 대중성 확보는 힘들게 되고 동일화는 힘들게 될 수도 있다.
나아가 극단의 긴장감은 긴장의 끈을 스스로 끊어버릴 수도 있다.
끊어진 긴장, 그건 이완을 넘어 긴장 밖 무관심에 이르게도 한다.
적잖은 현대시가 감수하고 있는 황당함이기도 하다.
< ‘차이나는 시 쓰기, 차유의 시론(신진, 시문학사, 2019.)’에서 옮겨 적음. (2023. 9.1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72) 이미지, 비유, 차이성 - ③ 동일성과 차이성 2-2/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