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門) / 도창회
문은 들고나는 곳이다. 벽이 있어 막을 수 있다면 문이 있어 열 수 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쳐져 있고 내왕할 문이 없다면 갇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갇힘을 트는 것이 문이라면 문은 은둔과 폐침을 막는 도구요, 억압된 감정에 숨구멍을 틔우는 유로(流路)가 아닌가.
우리는 매일 대문을 열고 나섬으로 하루 일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집 대문을 다시 들어섬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일상생활이 문으로부터 비롯되어 문에서 마감하는 듯 보인다. 어찌 이런 일이 가정생활뿐이랴. 우리의 학문도, 직장도, 사회도 그리고 우리의 인생도 문을 나서 출발하여 문을 닫아 마감함으로 종료하는 듯 보인다. 우리가 걷는 학문의 도정(道程)을 살펴보면 초등학교의 교문에 들어서 그 문을 나올 때까지 6년이 걸리고 중학교 문을 들고나는 기간이 3년, 고교 3년, 대학 4년, 대학원 2년 등 기간이 일정하지는 않지만 문에 들어가서 그 문을 나옴으로 종료한다. 사회생활 또한 문을 거쳐 나아간다.
우리 인생도 초년에 이상(理想)의 문, 중년에 현실(現實)의 문, 노년에 허무(虛無)의 문을 거쳐 결국 누구나 문에 연한 생의 노정을 밟는다. 인류의 역사도 어느 치세(治世)의 문을 들어서 그 문을 종료하는 과정으로 그 당대를 평가한다. 우리가 어느 치세에 속해 있든 우리는 자동 어느 문을 거치고 있는 셈이다.
문에 연한 은의(隱意)는 다양하다. 관념이 되었든, 현실이 되었든 우리는 문이 갖는 은의에 매료된다. 우리가 생명을 가져 태어남도 문으로부터 비롯된다. 지아비가 문을 통하여 들이민 한 생명이 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통상 시음하는 경우만 해도 그렇다. 앞문인 구문(口門)을 통해 음식을 드밀고 뒷문인 항문으로 배설물을 배출한다. 밑이나 뒤로 대변하는 말도 기실 밑문을 의미한다. 몸 안 각 기관마다 통문(通門)과 기문(氣門)이 있어 그 문이 막히면 약이나 침으로 뚫어야 건강하다. 어찌 우리의 육체뿐이랴. 우리내 인생사를 살아가면서 안 거쳐 가는 문이 있던가. ‘고생문이 뻔히 열렸다’는 말이 있듯 한 생을 사는 동안 고생문이 하 그리 많기도 해 문을 지나면 또 문이 있고, 그 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문이 나타나 어찌 보면 세상만사 온통 문의 투성이다. 인류의 역사도 수없이 연속되는 문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문으로 인해 웃을 수도 울 수도 있어 희비사가 엇갈린다. 등용문을 통과해 출세의 문이 할짝 열리는가 하면 사업실패로 인해 폐쇄된 철문은 실의에 젖게 한다. 개문의 희망이 폐문의 실망으로 끝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헌데 입문은 했으나 다시는 못 나오는 금문(禁門)도 있다. 감옥살이를 하는 옥문(獄門)이 그렇고, 군문(軍門), 궁문(宮門)의 통행이 지엄하고, 정려문 (旌閭門) 또한 아녀자의 한이 서린 곳이다. 스님들은 일단 입산하여 불문에 들어서면 뒷문을 잠궈 버린다. 귀속(歸俗)을 못하도록 뒷문에 빗장을 걸어 비구와 비구니의 계(戒)를 지키도록 한다. 절문에다 눈을 부릅뜬 사천왕을 세움도 이런 연유와 무관하지 않다.
예부터 우리의 풍속에는 여자에게 가혹한 금문지행(禁門之行)이 자행 디었다. 꽃다운 나이에 궁궐에 들어온 궁녀는 제 목숨 다하는 날까지 궁궐을 못 빠져 나가도록 엄히 뒷문을 잠궈 버렸다. 궁내에서 죽어 그 시체가 빠져 나가는 시구문이 따로 있었다니 궁 생활이 얼마나 한스러웠으랴. 여자의 한으로 친다면 어찌 구중심처(九重深處)의 궁녀뿐이겠는가. 일반 백성의 아낙에게도 금문의 형벌은 가혹했으니 일단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이라 해서 그 잡 귀신이 될망정 다시 친정집 대문을 못 들어서게 했다. 정절문(貞節門)이 괜히 섰겠는가. 서방의 사후에도 재가(再嫁)를 안 하는 풍속이었으니 그 삶이 오죽했을까 싶다.
문에 관한 영상(影像)은 다형 다양해 우리의 사고를 어지럽힌다. 문의 대소(大小)로 구분하면 궁상맞은 시문(柴門)과 봉창문이 있는가 하면, 고대광실의 대문은 문의 겉치례가 요란하다. 또 문의 신분으로 구분한다면 사문(沙門), 사문(師門), 관문(官門), 학창의 동문(同文), 대소가의 가문(家門), 법문(法門), 예문(藝門), 업문(業門)이 있고 서울에 독립문이 있는가 하면, 파리의 개선문이 있고, 해우소에는 뒷간문이 있는가 햐면, 축구에는 골문이 있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이 있는가 하면, 단테의 ‘지옥문’이 있다.
사실 문의 개방은 자유를 위함이었다. 문고리를 따놓음은 왕래의 불편 없이 자유롭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허나 문을 너무 활짝 열어 좋으면 자유를 넘어 방종을 불러올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대문 밖은 곧바로 길이 나서지만 그 길이 어디로 뻗어 있든 인가로 연결된다. 인가가 모인 타관은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로 간단치가 않다. 인간사는 힘겨운 차도의 가도 가도 가는 길이 적막하기만 하다. 대문 밖 인생길은 살얼음판이다.
문에 대한 명상이 엉뚱스러울 수도 있다. 엉뚱스럽기보다 옛날에는 사실 그랬다. 남편이 문 밖 살림을 차려 나간지가 오래 죄었다. 옛날에는 조강지처에게 집 살림을 맡겨 놓고 대주가 바람이 나서 집 문을 나가 귀가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꽃다운 아낙을 문 안에 가두어 놓고 작은댁 살림을 차린 비정스런 남편네가 곱상스럽게 보일 리가 없다. 남편 없는 긴 동지 밤은 야속하기만 하다. 배갯잇이 문물로 얼룩지고, 독수공방 아녀자의 애간장이 다 녹아내린다. 설한풍에 문풍지만 울어도 임의 기척인가 싶어 잠 못들고 뒤챈다. 문을 나가는 것은 재 뜻이지만, 문을 들어서는 것이 어찌 제 마음대로이랴. 끝내 열리지 않는 문이 야속해 깨문 입술에 피멍이 들어 선잠 드는 하소가 눈물겹도록 가엽다. ‘문아 문아 문고리는 왜 달렸노. 임 잡으라고 달렸지. 바람에 달그락거리라고 달렸느냐?’ 설한풍에 달그락거리는 문고리 소리가 왜 그리 얄미울까.
이젠 세월이 많이 흘러 문에 연한 수토리는 많이 달라졌다. 문의 개방에 대한 자유가 너무나 많이 주어져 옛 법, 옛 풍속이 믾이 변모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문은 옛 그대로 달려 있으되 문칙(門則)과 문의 예도(禮度)가 까마득히 달라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의 바람이긴 하지만, 문을 열기는 열되 너무 활짝 개방하지 말고 반쯤만 열어 놓으면 어떨까 한다. 반쯤 열린 때의 이야기가 활짝 열린 때의 얘기보다 더 멋져 보일 수도 있기에 해본 말이다.
허긴 내가 어느 문에서 와서 어느 문으로 가는지를 모르면서 해 설핏한 저녁나절 문간에 우두커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