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74) 시 쓰기 상상 테마 5 - ① 바다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
시 쓰기 상상 테마 5
네이버블로그/ 41. 상상테마40 - 바다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① 바다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 바다 이미지를 상상에 적용할 때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섬들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바다 이미지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모티브 중의 하나다. 마트나 시장에 가도 꼭 수산 코너가 있고 수많은 바다 영상에 TV나 유튜브 체널에 넘쳐난다.
그만큼 바다 이미지는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친숙하다.
바다 근처에 살지 않더라도 우리의 뇌 속엔 언제나 바다가 헤엄쳐 다닌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와 관련된 작품을 시인들은 많이 창작한다.
(바다 소재 문학상이 많은 것도 일부 기여함) 많이 창작되고 있지만 감수성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좋은 작품을 만나기는 힘들다.
그러니 바다 이미지가 들어간 작품을 감상할 때도 신선한 상상력을 꼭 발휘해야 한다.
우선 본인이 형상화하고 싶은 간절한 심리 상태나 나만의 존재론적 의미를 머릿속에 상정하자.
상정했더라도 곧바로 쓰면 안 된다.
간절함만 담는다고 해서 신선한 시, 감동적인 시가 되지 않는다.
진정성만 느껴질 뿐 ‘새로운 시’라는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쓰고자 하는 메시지와 화자를 개별화시키는 작업을 해서 현장성과 생생함을 갖추어야 한다.
많이 접근하는 소재 중에 하나가 갯벌에서 일하는 어머니다.
뜨거운 태양과 맞서며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반복적인 노동을 하는 어머니가 눈앞에 선하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짠해진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 이미지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어머니이고 이미 많이 창작된 어머니다.
그러니 쓰고자 하는 것을 정할 때도 ‘나만의 작품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하고 고민을 한 번 더 해야 한다.
최소한 비유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상황 비유를 통해 어머니를 검은 무대에서 1인극을 하는 배우로 설정하면 어떨까.
물때 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깔리고 소품처럼 갈매기가 날아다닐 것이다.
흥얼거리는 대사는 독백이 아니라 방백이 될 거다.
어머니의 방백을 몰래 듣는 것은 낙지 바지락 게 갯지렁이고,
파도는 물거품으로 극의 클라이막스를 더할 것이다.
상상을 적용할 때 또 하나의 방법은 바다와 상관없는 존재와 바다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저하게 변방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형상화시킬 때
‘난파’의 상황을 섞어서 그려낼 수 있다.
그 사람과 난파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처지가 비유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충분히 나만의 시를 창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바다 관련된 소재로 시를 쓸 때 제일 많이 실수하는 것은 바다를 아는 체하는 것이다.
적당한 관찰, 적당한 사유, 적당한 체험으로 바다를 더 안다는 듯이 언술을 하며
그럴듯한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 필자가 권하는 것은 바다를 배경으로 나오는 ‘극한 작업’, ‘한국 기행’ 영상을 수십 번 보라는 것이다.
생생한 삶의 현장을 먼저 극적으로 섬세하게 인식한 후 그것을 실감 나게 표현하는 연습을 우선해야 한다.
그런 다음 신선한 메시지와 새로운 발상(상상)이 동원되어야 한다.
필자의 시를 바탕으로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목소리
추워추워, 태양이 떠올라 남쪽을 부추기는 데도 정말 추워, 샤워기 온수를 잔뜩 틀어도 추워추워, 식탁에 막 지은 쌀밥과 시래기 된장국을 올려놓아도 무작정 추워, 내복 위에 스웨터를 껴입었는데도 추워추워, 털장갑 끼고 부츠를 신었는데도 막무가내로 추워추워, 잘 다녀와 길조심 하고 다정다감해도 추워추워, 버스가 정류장에 제시간에 와주는 데도 미친 듯이 추워추워, 운 좋게 빈자리에 앉아 창밖 풍경을 음미하는 데도 추워추워, 건물 안쪽에 들어서면 인기척이 넘쳐나는 데도 끝없이 추워, 스팀을 켜놓고 난로를 피워놓았는데도 추워추워, 잔소리도 핀잔도 편견도 없는데도 추워추워, 넌 누구니? 어디가 춥니? 얼마만큼 춥니? 물어도 물어도 추워추워, 점점 더 추워추워, 아직도 추워추워, 달아난 내 살이 추워추워, 앙상한 내 배가 추워추워, 4월이 한참 지났는데도 추워추워, 물속이― 꿈속이― 아주 아주 추워추워
― 제20회 한국해양문학상(2016년) 대상 작품들 중의 한 편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목소리」는 제20회 한국해양문학상(2016년) 대상 작품들 중 하나다.
바다와 관련된 40편 이상의 시를 투고해서(2021년 현재는 50편 이상 투고) 그에 따른 작품성을 인정받아
그 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 시는 세월호 사태를 생각하면서 쓴 시다.
(세월호가 인양되지 않고 행불자가 많을 때)
우리는 타자의 상처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는 버릇이 있다.
세월호 사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안타까운 마음에 모든 이들이 슬퍼하고 그런 상황을 방치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처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서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냐”며 비판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이 시를 쓸 때가 2016년이니 겨우 2년 만에 타자의 고통을 잊어버리거나 왜곡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정부와 관련된 기관에서 제대로 된 조치를 빨리 취했다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내 손자, 애 아들, 내 딸, 내 엄마, 내 아빠, 내 누나, 내 동생, 내 언니, 내 형이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죽어갔다면 상처가 쉽게 잊히겠는가?
나의 경우라고 생각하면서 피해자 입장에서 역지사지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정의가 바로 서고 역사가 바로 서고, 재발 방지 대책이 바로 서는 것이다.
「목소리」는 세월호 속에서 죽어간 화자가 나타나 유령처럼 자신의 상황을 반복적으로 발화하고 있는 시다.
상상에 의해 전적으로 쓰였지만 필자는 그 상황에 최대한 밀착하여(빙의 상태가 되어)
그 아픔을 우회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는 목소리 자체가 객관적 상관물이다.
목소리가 죽은 이의 상황과 심리상태를 전적으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이는 유령이 되어 세계를 떠돈다.
이 시에 나온 것처럼 지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따뜻한 이미지를 전부 맛보는 데도 춥게만 느껴진다.
화자가 ‘남쪽’ ‘온수’ ‘막 지은 쌀밥과 시래기 된장국’ ‘내복 위에 스웨터’ ‘털장갑’ ‘부츠’ ‘다정다감한 염려’
‘정시에 오는 버스’ ‘빈자리’ ‘음미할 수 있는 풍경’ ‘넘쳐나는 인기척’ ‘스팀’ ‘난로’
‘잔소리도 핀잔도 편견도 없는 시공간’ ‘따듯한 안부’를 전부 경험하는 데도 끝까지 ‘추워’만 반복한다.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주술적인 목소리를 통해 필자는
아직 지상으로 나오지 못한 시체의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했던 것이다.
달리 보면 이것은 꼭 행불자의 상황만이 아니다.
시체로 발견된 후 지상으로 나와 장례식을 치렀어도 발견될 때까지 차가운 물속에서 보냈으니,
자신을 살릴 수 있는데도 살리지 못한 사람들이 부끄럼 없이 살아가고 있으니
죽은 영혼에겐 이 세계 전체가 추위로 가득 찬 것으로만 느껴질 것이다.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이 시에 적용된 상상적 체험은 죽은 이에 대한 체험이기에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죽은 이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화자를 죽은 이(나)로 할지 아니면 관찰 대상자(당신)로 할지 고민이 있었다.
시적 주체를 ‘당신’으로 바꿨다면 “당신은 오돌오돌 떨고 있다. 태양이 떠올라 남쪽을 부추기는 데도,
샤워가 온수를 잔뜩 틀어놓아도, 식탁에 막 지은 쌀밥과 시래기 된장국을 올려놓아도,
끊임없이 추워추워를 중얼거린다”로 시작하는 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썼을 경우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밀착하지 않고 한 발 물러나 있는 것만 같아서
밀착성이 좋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택했다. 그래서 유령이 된 ‘나’의 상상적 체험이 펼쳐진 것이다.
※ 또 다른 예문 (예문 내용의 기재는 생략함 – 옮긴이)
· 박선우의 ‘킬러’ (―제9회 목포문학상 남도작가상 수상작)
· 김온의 ‘채낚기’ (―제15회 바다문학상 대상 수상작)
· 서동석의 ‘발포진 랩소디’ (―2021년 〈뉴스N 제주〉 신춘문예 당선작)
<직접 써 보세요>
* 아래 제시 단어를 바탕으로 상상력이 들어간 바다 소재 시를 한 편 쓰시오.
반드시 시 쓰기 3단계를 채워 넣은 다음 창작하시오.
― 제시 단어: 난파, 인양, 그물, 정박 등(예시 상상: 난파의 경우 ‘내 사랑은 부서지거나 뒤집혔다.
이별이라는 세계에서 표류 중이다’,
인양의 경우 ‘내가 이별 속에서 인양한 애증일까? 그리움일까?’,
그물의 경우 ‘난 신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든 것이다. 신은 가난한 자들을 쉽게 포획한다’,
정박의 경우 ‘뒤틀린 사랑 속에 닻을 내린 언니의 정박이 길어졌다.’)
| 시 쓰기 3단계 적용 |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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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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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확장하기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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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하린, 더푸른출판사, 2021)’에서 옮겨 적음. (2023. 9.21.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74) 시 쓰기 상상 테마 5 - ① 바다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