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썸니아*
김은우
무럭무럭 자라는 어둠은 배경일 뿐 졸다 깨다 기억이 기억을 낳고 악몽이 악몽을 낳습니다 당신과 마주 앉아서는 할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접혀진 소설 속 이해할 수 없는
죽음에 골몰합니다 결말이 궁금하지 않은 소설을 읽듯 시간이 무심하게 지나갑니다 수도꼭지를 돌리고 온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듯 잠시 눈을 감아보지만 단단한 벽이 발명되고
벽에서 가느다랗게 울음소리가 흘러나올 때 말들이 만발하는 입술을 지우고 나만 알고 있는 죄의 목록을 지웁니다 밤을 좋아하지만 홀로 어두운 건 좋아하지 않아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세는 동안 긴 밤은 끝이 없고 양들은 떼로 몰려 도망칩니다 여행 중 낯선 곳에서 일행을 놓치고 홀로 남겨졌을 때처럼 난감해집니다 띄엄띄엄 흩어진 생각들을 그러모으며
밤의 침묵을 꼴깍 꼴깍 삼키는 동안 머릿속은 점점 맑아져서 기억이 또렷해집니다 시간이 갈수록 거울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고 울음을 얼음이라 발음하면 도자기인형이
쨍그랑 깨집니다 붙잡으려 해도 붙잡히지 않는 멀리 사라지는 것들의 질감이 만질 수 없는 시간처럼 나와는 상관없이 나를 통과하며 흘러갈 때 멀리서 아침이 찾아옵니다
*인썸니아: 불면증
2020 문예연구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