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석숭보다 산 돼지가 낫다
죽으면 부귀영화가 다 소용없게 되니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는 뜻으로 ‘죽은 석숭보다 산 돼지가 낫다’는 속담을 씁니다.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라든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과 같은 뜻이지요.
석숭(石崇, 249~300)은 중국 진(晋)나라 때의 큰 부자였으며,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까지 부자의 대명사로 쓰였습니다. 석숭이라는 인물은 형주(荊州) 지방을 관할하는 자사(刺史)라는 직책까지 오른 고위 관료로 학문과 시에도 능통했다고 하나, 부자가 된 과정은 그리 정당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상인들의 재산을 강탈하거나 권력자들에 대한 아부를 통해 부를 쌓았다니,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재산을 모으다 보니 제대로 써야 할 곳에 쓰기보다는 집안을 호화롭게 꾸미는 등 남들에게 과시하는 데만 신경을 썼습니다. 시중을 드는 십여 명의 미녀를 항시 대기시켜 놓았다거나 화장실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며놓아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화장실에 갔다가 침실인 줄 착각하고 돌아 나오곤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전합니다.
한마디로 방탕과 사치에 물든 부정적인 인물이라고 하겠는데, 그런 까닭에 말로가 좋지 못했습니다. 석숭은 하남성 낙양 서쪽에 금곡원(金谷園)이라는 별장을 지어놓고 애첩인 녹주(綠珠)와 더불어 풍류와 쾌락을 즐겼습니다. 관리와 문인들을 금곡원에 초대해서 주연을 베푸는 일이 잦았으며, 그곳에서 자신의 부를 마음껏 과시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당시의 권력자이던 손수(孫秀)라는 인물이 녹주를 마음에 두고 자신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석숭은 다른 모든 것은 줄 수 있으나 녹주만은 안 된다며 거절을 했고, 이에 앙심을 품은 손수의 모함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당시에 그의 나이 51세였으니, 그리 오래 살지도 못한 셈이지요.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이런 경우에 딱 들어맞는다고 하겠습니다.
석숭과 관련해서 ‘석숭의 재물도 하루아침’이라는 속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석숭의 재물과 같이 큰 재산도 쉽게 없어진다는 뜻이니, 부귀영화라는 게 얼마나 덧없는지를 알려주는 말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부자가 훌륭한 인품과 도덕성을 갖추기는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오히려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경우가 훨씬 많지요. 오죽하면 예수가 부자가 천국으로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했을까요? 존경 받는 부자를 찾기 힘든 것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입니다. 남들보다 많은 부를 지닌 사람일수록 석숭과 같은 인물을 반면교사로 삼아 그와 같은 길을 걷지 말아야 하는데, 당장 내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눈앞을 흐려놓는 모양입니다. 이 같은 상황은 부자뿐만 아니라 권력을 지닌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진리를 깨치지 못합니다. 부와 권력에 대한 탐욕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까지도 해친다는 것을 오랜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