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 박혜경
엊그제 내린 비로 하늘은 더없이 깊다. 그렇게 무덥던 여름도 이제 끝자락. 꽃들은 저마다 화려한 날들을 추억하며 야물고 단단하게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청도 임당리 마을로 배낭을 메고 나서는데 길모퉁이에서 기다리던 도꼬마리 씨가 함께 가자고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진다.
청도 임당리 김씨고택.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씨암탉 한 마리가 반갑게 달려오더니 자기가 기다리던 손님이 아니었던지 잽싸게 달아난다.
김씨고택을 들어서는 담장 길목에는 봉숭아가 꽃잎을 흔들며 객을 반긴다. 울긋불긋 봉숭아 꽃잎 사이로 통통한 씨앗 보따리가 야물게 영글어 간다. 장난기 가득한 바람이 자꾸만 씨앗 보따리를 흔들어댄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임당리 김씨고택은 대대로 내시가 살던 곳으로 집주인의 고달픈 삶을 그대로 품고 있다.
내시는 왜 임금이 계시는 곳과 머나먼 이곳에 뿌리를 내렸을까. 동물의 털이나 바람을 타고 씨를 퍼뜨리는 도꼬마리처럼 권문세가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여기까지 날아왔을까. 청도에는 반시가 유명한데 특이하게도 씨가 없다. 하지만 씨가 없어서 감즙이 더 찰지고 오롯이 한 놈을 통째로 먹을 수 있으니 실속 있다.
씨가 많은 감나무도 청도로 옮겨 심으면 씨가 사라진다니 신기할 노릇이다. 씨가 왜 없는지 골목 어귀에 우뚝 솟은 감나무를 쳐다보며 그 대답을 기다리는데 바람이 달려와 고택 마당으로 등을 밀친다.
김씨고택은 조선 시대 정3품의 관직을 지내던 궁중내시 김일준이 내려와 지은 집이다. 내시는 16대까지 성이 다른 아이를 양자로 들여 대를 이어오다 17대부터는 이곳에 내려와 자식도 낳고 여느 집처럼 가계를 이었다고 전해진다. 내시 집안이 높은 관직까지 오르기도 하고 권력을 얻는 일이 생기다 보니 가난한 집에서는 건강한 자식을 거세시켜 내시 집안에 양자로 보내기도 하였다. 출세를 위해 또는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사내아이들의 씨앗을 그렇게 내동댕이쳤다.
솟을대문을 넘어서니 좌측에 큰사랑채가 위풍당당하게 객을 맞이한다. 큰사랑채는 마당 가운데에 위치하여 안채를 오가는 사람들의 동선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또한 곳간과 방앗간, 그리고 사당까지도 살필 수 있다.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휘두르는 듯 근엄한 모습이다. 그러다 문득 우리 아파트 입구의 경비실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터진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잠시 헷갈린다. 큰사랑채 앞으로는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고 작은 연못가에는 겹사과나무가 열매를 잉태하고 있다. 따먹을 주인도 없는데 홀로 햇살을 삼키며 붉게 영글어 간다. 말라서 바닥에 떨어진 사과 씨는 새들의 만찬이다. 사람이 다가가도 도무지 달아날 생각을 않는다. 겹사과나무의 주인이 처음부터 자기들인 양 태연하고 여유롭다.
내시는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특이하게도 큰사랑채는 남향이 아니라 임금이 계신 북향으로 배치하였다. 나라의 녹을 먹는 공복을 넘어 임금과 생사를 함께하는 수족이 되고 싶었던 것이리라. 조금이라도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고 싶은 내시의 애틋함이 느껴진다.
여느 양반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함께 붙어 있거나 그 사이를 쉽게 오갈 수 있도록 협문이 만들어져 있는데 내시고택은 사랑채와 안채가 별도로 구분되어 있다. 게다가 안채는 겹담을 설치하여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고 있었다. 한국의 전통가옥이 전형적인 ㅁ자 구조를 보이는데 이는 기후나 짐승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내시집의 안채는 ㅁ자에다 겹담까지 설치해 보호가 아닌 감시와 구속의 공간처럼 보인다.
큰사랑채 앞을 지나 안채로 가는 중문 옆에는 안사랑채가 있다. 안사랑채에서는 중문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살필 수 있도록 작은 문에 하트모양의 구멍이 새겨져 있다. 엿보는 사람이 천박해 보이지 않도록 씨앗 같은 작은 요철로 구멍의 반쯤을 막아두었다. 게다가 감시하는 사람의 몸을 가리기 위해 작은 토담까지 세워놓았다. 구멍이 눈높이보다 낮아 어쩔 수 없이 내시처럼 몸을 움츠려야 구멍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우람한 장정들도 구멍 앞에서는 영락없이 내시가 돼야 한다. 얼마나 많은 시선이 구멍을 뚫었을까. 그 시선을 받는 아녀자들은 아마 화살 맞은 새처럼 떨었을 것이다. 고자인 남편에게는 젊은 아녀자의 일상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을 테다. 그런 불안감이 찌그러진 하트 구멍을 만들었을 게다.
내시는 비록 고자였지만 결혼도 하고 여느 집처럼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내시 집에 시집온 아녀자들은 집안의 법도에 따라 부모상이 아닌 이상 평생 대문 밖을 나가지 못하고 외롭게 늙어갔다. 젖 한 번 물려보지 않은 남의 자식과 가족보다는 궁궐의 임금을 더 가까이 모셔야 하는 남편을 그리며 창살 없는 감옥에서 세월을 보냈을 게다. 어쩌면 구멍은 내시인 남편보다 세상으로 나가고픈 아녀자에게 더 필요했을 법하다.
특이한 것은 구멍만이 아니다. 넓은 마당 어디에도 과실수나 정원수가 보이지 않는다. 연못가에 작은 겹사과나무가 고작이다. 청도에는 감나무가 워낙 흔해서 소나무에도 감이 달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흔한 감나무도 여느 양반집처럼 대추나무나 배롱나무도 내시고택에서는 찾기 어렵다. 우리 조상들은 집 안팎으로 대추나무며 감나무와 살구나무 등 과실수를 즐겨 심었다. 과실은 제사상에 올리고 곁가지는 추운 겨울 좋은 땔감이 되었으며 감나무 그늘은 무더운 여름 햇빛을 막아주는 버팀목이었다. 대추나무 아래는 닭들이 노닐고 살구나무 위에는 까치들의 휴게실이었다. 그뿐인가. 과실수는 철 따라 예쁜 꽃을 덤으로 준다. 과실수를 통해 자연과 생명체는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시고택에는 겹사과나무 외에 신기하게도 과실수나 정원수가 보이지 않았다. 내시의 굽은 허리를 받쳐 줄 한 그루의 나무도 없다는 게 못내 서글퍼진다. 주인이 떠나고 없는 낡은 고택에 겹사과 열매만 붉게 영글어 간다. 붉은빛이 아녀자들의 서러움 같아서 더욱 애달프다.
안채와 사랑채의 거리만큼이나 멀고먼 내시의 사랑. 자신의 존재감 없이 늘 임금의 그림자로만 살아온 내시의 삶은 집에 돌아와서도 당당한 주인이 되지 못한 채 토담 뒤의 그림자로 만들어버렸다.
애틋한 마음을 안고 대문을 나서는데 탱탱한 봉숭아 씨앗 보따리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팝콘처럼 터져댄다. 신이 난 씨앗들이 이리저리 나뒹구는 모습을 손주 재롱 보듯이 봉숭아 빈 꼬투리가 지긋이 내려다본다. 방금 씨를 토해낸 빈 꼬투리 속으로 내시가 얼굴을 들이민다.
모든 생명체는 씨를 갈망한다. 자신의 무한한 생명을 영원으로 이어주는 게 씨앗이기 때문이리라. 씨는 하나의 생명체를 오롯이 품고 있다. 씨가 없는 내시에게는 그러한 욕망이 더욱 강했을 터이다. 화려한 부귀영화보다 내시가 그토록 원했던 것도 이러한 씨가 아니었을까. 욕망이 간혹 아녀자에 대한 감시로 이어졌지만 어쩌면 그것은 내시가 가족을 지키는 또 다른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씨앗은 김씨 가문의 대를 잇는 혈육이 아니라 내시의 삶과 역사를 품고 있는 고귀한 정신일 것이다. 혈육은 빈 꼬투리가 되어 사라지더라도 내시의 삶과 정신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바짓가랑이를 물고 따라다니던 도꼬마리 씨를 고택의 넓은 마당으로 내동댕이친다. 머리에 이끼를 잔뜩 이고 있는 돌멩이 옆으로 도꼬마리 씨가 마치 주인인 양 드러눕는다. 흙을 담요 삼아 모진 겨울을 견디고 봄이 되면 도꼬마리 씨는 이곳에 뿌리를 꽂을 것이다. 그리고 먼 옛날 내시가 그랬던 것처럼 뜨거운 햇살과 모진 바람을 삼키며 옹골찬 씨앗들을 토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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