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사랑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세월을 뒤로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중학교 때 봤던 타임머신 영화처럼.
좋으시다면 우리 벗님은 몇 년 뒤로?
저야 백 번이고 좋지요. 살아온 날 보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훨씬 적은 나이니까요.
다들 가슴 한켠에 담아두고 있는 화양연화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에 한 표가 아닐까요?
화양연화라…홍콩영화 제목이라고요? 아니에요. 화양연화란 말은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청춘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쉽게 이야기한다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는 말이거든요.
그대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요? 지금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추억이야 누군들 좋아하지 않겠어요.
눈깔사탕을 핥는 맛이랄까요? 글쎄요, 제 소견으로는 달콤하다기보다 생각만 해도 가슴 한켠이 아련해지며 푸른 필터를 끼운 렌즈처럼 뭉클한 정경이 떠오르지 않겠어요. 그래요, 쓰디쓴 추억도 새롭게 반추하려니 그 또한 아름다웠다고 고백하지 않으실테지요.
하지만, 추억은 아무리 달콤하다고 해도 싫은 거 하나가 있네요. 둘도 아닌 딱 하나가.
아무리 젊어진다는 거 좋다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 하나를.
제 달콤했던 화양연화를 시작하나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기대와 달리 무미건조한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전쟁을 겪고 난 뒤, 보리고개를 힘겹게 넘어간 세대인 저야 더도 말고 30년 빠꾸오라이(당시 버스차장이 버스기사한테 후진하라고)하면 좀 좋을까만 그래도 이것만은 싫어요.
그게 뭐냐고? 글쎄요.
요즈음 같은 한겨울, 아침에 일어나 마당 수돗가에서 세수하던 거야말로 노, 노 댕큐입니다.
그 시절, 아침에 일어나 내복차림으로 세숫대야를 가지고 마당을 가로질러 사랑방 연탄아궁이로 가는 것조차 끔찍하지요.
올려놓은 양은솥에서 뜨거운 물 한 바가지 부어서 수돗가에서 세수할 양이면 으흐흐~ 몸은 덜덜 떨리고요. 뜨거운 물에다가 수돗물 섞어서 푸푸~ 하며 얼굴을 문지르고는 빨랫줄에 걸린 수건으로 얼굴을 잽싸게 닦을밖에. 그런데 운이 나쁜 날은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먼저 세수한 동생이 얼굴 닦은 수건이 금방 꽁꽁 얼어버렸다면. 끔찍해요. 그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보세요. 얼굴 피부가 벗겨질 것 같이 아팠던 경험은 없었던가요?
또 어찌 얼굴을 닦은 다음 쏜살같이 마루에 올라 안방 문고리를 잡으면 얼어붙은 문고리에 손이 쩍하니 붙지 않던가요? 손가락 살갗이 벗겨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으흐흐~ 떨면서 부리나케 멀건 김치 국 한 숫갈을 넘기면 그제야 큰일 치룬 양 마음이 편해집니다.
6남매까지 아홉 식구가 복닥거리며 살아가던 우리 집은 아침이면 전쟁터가 따로 없어요.
6남매가 모두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니 춥다고 뜨거운 물 한 바가지 떠내고 찬물을 보충해주지 않으면 뒤 사람은 꼼짝없이 찬물에 세수해야지요.
부엌 부뚜막엔 도시락통이 여섯 개 줄지어 놓이고 반찬통까지 자기 꺼 챙기다가 큰 오래비 밥 두껑을 열면 뭔가 다르거든요. 계란후라이가 떡하니 들어 있는 걸 보고 “피~ 오빠만 사람인가” 하고 여동생들 입이 삐죽 나오고 쉰김치만 달랑 들어 있는 벤또를 챙기며 심술이라도 내면 어무이가 철석~ 등짝에 손으로 스매싱하지요.
학교 기성회비 달라거나, 학용품이나 운동화 사야한다고 조르면 엄마 언성이 가지껏 올라가지요. 그래도 큰소리 날까 조심해야지요. 곤히 주무시는 아버지 잠 깨울까 복닥대는 아침이 부산스러웠다고요. 이런 싱갱이 마저도 추억으로 포장하면 근사한 수채화로 소록소록 남아 있을 테지만 겨울 아침에 세수하는 건 아무리 포장해도 악몽입니다 그려.
그래도 우리 집은 아래채에 옛날식 목욕탕을 손 좀 보고난 뒤에 그래도 목욕탕 안에서 세수하면서 조금 나아집니다. 목욕탕이라고 해봤자 살림살이 이것저것 쳐박아놓은 창고에 불과했지만. 커다란 일본식 무쇠 목욕통이 떡하니 자리했지만 뜨거운 물이 나올 턱이 없어요. 무쇠 목욕통을 뎁힐려면 장작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야하는데요. 잠깐 동안이래도 실내에서 세수하니까 견딜 만 해서 고마웠구먼요. 뜨거운 물이야 마당을 가로질러 사랑방 연탄아궁이에서 절절 끓는 물을 떠와야 했으니. 매한가지가 아니냐 하지만 그래도 어딥니까.
서울 올라와서 하숙 할 때도 마당 한가운데 수돗가에서 세수했으니 별반 다를 바 없었지요.
끔찍했던 겨울 세수는 직장에 나가고 알뜰하게 저축해서 장만한 아파트에 입주하고 난 뒤에야 고생이 끝났답니다. 하지만 잠실 서민아파트에도 보일러가 아니라 연탄아궁이에서 뜨거운 물 한바가지 떠서 세수했으니 별반 나아진 건 없다고요? 그래도 바깥에 나가지 않고 세수하는 거 만 해도 얼마나 좋은 지 춤을 추겠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 제일 신경 쓰인 건 단연 비듬이 아니었을까요?
엄동설한에 고양이 세수하듯 얼굴에 물 묻히는 것도 끔찍한데 머리 감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잖아요. 그때 학생들 고민 중에 으뜸은 여드름이고 다음으로 비듬이었을 게요. 까아만 동복 어깨에 싸래기 눈이 내린 듯 쌓인 비듬이야말로 여간 신경 쓰이는 거 아니었지요.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앞자리 내 어깨에 흩날리는 비듬을 털어주곤 하다가 수업태도 불량으로 벌도 받곤 했어요. 참 궁금했던 것은 어째서 여학생들 어깨에는 비듬이 없더라고요. 엄동설한 추위에 머리를 어떻게 감았을까? 쓰다가보니 생각이 난다. 까만 동복이야 여학생이나 우리도 같았지만 여학생 교복은 해군들의 세라깃에서 따온 하얀 세라깃에 비듬이 떨어져봤자 눈에 뜨이기나 했을라고요.
뭐 그리 고생 사서하냐? 부엌에서 세수하지 왜?
우리 집은 출판사에서 부쳐온 책 포장, 당시에는 엉성한 가마니라고 해야지요. 팔다 남은 책이라든가 거적대기와 포장을 묶은 새끼줄이 수북이 쌓여있는 부엌에 세수할 공간도 없이 비좁았거든요. 장가가기 전까지 커다란 무쇠솥 아궁이에 새끼줄이거나 가마니 짚북대기를 때어 밥을 안쳤거든요.
요즈음 친구들 만나면 맨날천날 지겹지도 않은지 옛날 고생했던 이야기 빼고 할 얘기가 뭐 있간데유.
하긴 요사이는 그것도 심드렁해져 인제는 병자랑 밖에 없어요. 누가 지난달에 암 수술했고 가는(그 친구) 마누라 병구완하느라 통 얼굴 보기 힘들다는 얘기 하다가 겨울에 세수하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다들 끔찍하다고 손사래를 치더라고요. 이제야, 수도꼭지 틀면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아파트 실내야 오죽 훈훈하니 뭔 걱정이 있으려고.
아! 비듬 떨어질까 조바심치던 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아니던가요. 손주들한테 이야기해도 무슨 소린가 통 알아먹질 못해요. 비듬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데 군대 내무반에서 이 잡던 이야기를 어찌 알겠어요. 후끈후끈 단 난로에 훌러덩 내복을 뒤집어 잡은 이를 털면 이가 타느라 내무반이 온통 고기 굽는 냄새 한번 고소했지요.
무시기 소리고? 니는 화양연화, 박하사탕처럼 달사한 추억도 없나?
사귀던 예쁜 처자 집에 들여보내기 싫어서 재건데이트 하느라 골목길 걷고 또 걸어가며 괜시리 돌맹이나 툭툭 건드리다 그믐달 한번 쳐다보고 죽고 못 살던 애인 얼굴 흘금 훔쳐보던 아련한 추억이사 생각도 안 나는 기라.
전지전능하신 분이 피다만 내 청춘이 딱해 보여 고등학생, 아니 신혼 초, 냉굴(연탄 아낀다고 하다가 불 꺼진 냉구들장)에서 살을 맞대며 추위를 이겨내던 신접살림의 달콤한 시절로 되돌려 주신다 해도 난 싫다 싫어. 겨울에 세수하던 생각하면 나 안 갈란다. 그래, 젊어진다 케도 내사 안 돌아 갈란다.
내 친구 중에 보리밥은 돌아보지도 않는 녀석이 있다. 요즈음 건강식이니 추억의 밥상해가며 꽁보리밥을 일부러 찾아 먹는 게 유행이지만 유독 그 친구는 꽁보리밥은 보기도 싫다고 했다. 워낙에 가난했던 시절을 보낸 사람은 가난했던 시절조차 추억에서 빼버리는 모양. 밥 안 굶고 포시랍게 자란 나 같은 친구들이야 추억놀이 해가며 옛날이야기를 꺼내 당의정을 입혀가며 한소리 또 하고 또 하더이다.
벗님들은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그대의 화양연화는 어느 쯤에 머물러 있을 까요?
나 같이 겨울 아침 세수하던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덜 떨어진 이야길 하지 말고 달콤하면서도 콧날이 시큰했던 사랑이야기라도 한 자락 깔아보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