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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자신이 지닌 지식이나 정보를 종이에 기록하는 형태로 제작된다는 점에서, 지식과 정보 전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형태는 여전히 종이책이 지배적이지만,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그 성격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견을 하기도 한다. 디지털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종이책의 소멸’을 예언하는 주장이 있었지만, 전자책의 유용성만큼이나 종이책이 지닌 장점도 만만치 않기에 쉽게 소멸되지 않으리라는 예측이 점점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쇄 문화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했고 그것이 서양의 쿠텐베르크의 활자에 시대적으로 앞선다는 점을 자랑거리로 내세우고 있다. 분명 ‘세계 최초’나 앞선 기술을 꽃피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쇄문화가 책을 통해 지식을 널리 보급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못햇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하는 주장들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실제 조선시대에 다양한 인쇄술을 개발하여 수많은 책을 출판했음에도, 대부분이 당대의 지식계층을 위한 한문으로 된 서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출판된 서적들은 소수의 지식인들에게 집중되어, 대중들에게 지식을 확산하는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아쉬움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상업을 천시하던 조선시대 지배층의 관념은 상업적 출판문화를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었고, 그 때문에 지식인들조차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 손으로 베껴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저자는 앞서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으며, 이 책은 그 후속편으로 조선 후기가 시작되는 숙종조(1674~1720) 시대의 인쇄문화와 출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이유는 바로 조선시대를 뒤흔들었던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 등 두 차례의 전란으로 인해, 이전까지 보유하고 있던 책들이 다량으로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전란으로 인해 없어진 책들을 새로 펴내기 위해 금속활자와 목활자는 물론 다량의 목판을 만들어 책을 찍어냈던 기록이 적지 않게 남아있다. 글을 알지 못하는 문맹자들이 적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문자를 통한 지식의 독점이 당대의 지식인들의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비록 제한적인 기록이지만, 현존하는 기록을 통해서 출판문화를 조명함으로써 당대 지식계의 풍향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여겨진다. 저자는 먼저 당대의 ‘시대 배경’(1장)을 개관하고, ‘임진왜란 이후 인쇄 출판 시스템의 복구 과정’(2장)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자료를 통해 ‘숙종조 서적 인쇄와 출판 서적’(3장)의 상황과 확인할 수 있는 목록까지 제시하기도 한다. 특히 경제력이 있던 민간에서 금속활자를 자체 개발하여 출판에 나섰지만, 책의 상업적 유통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에 결국 그 활자들은 국가에 귀속되어 국가 차원의 서적 출판에 활용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 중앙 정부에서 모든 출판을 담당할 수 없었기에, 지방의 감영이나 서원 혹은 사찰 등을 통해서 서적출판이 이뤄졌다는 사실도 보고하고 있다.
조선시대까지 서적의 유통에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도 적지 않은 몫을 차지하고 있기에, 3장에서는 ‘숙종조 서적의 수입’에 대한 기록들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과 확인할 수 있는 서적 목록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울러 당파 사이의 정쟁이 가장 치열하게 맞섰던 시기이기에, 마지막 5장에서는 ‘숙종조 당쟁과 서적’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서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구체적인 정쟁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주로 출판문화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펼치고 있지만, 한정된 수량의 인쇄된 책을 당대의 지식인들조차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글을 모아 문집(文集)의 형태로 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비록 인쇄되지는 못했지만 본인 혹은 자손들에 의해 정성스레 손글씨로 필사된 책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적지 않게 남아있다. 실상 종류로 따진다면 지금까지 조선시대의 서적들은 인쇄본보다 필사본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현실이다. 만약 인쇄술이 갖춰져 그것이 대중적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면,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지식과 정보에 대한 욕구로 보아 더욱 찬란하게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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