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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손자로 잘 알려진 북한작가 홍석중이 쓴 <황진이(黃眞伊)>를 읽었다. '황진이'는 아버지 황진사가 여종의 몸에서 낳은 딸이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양반댁 규수로 성장한다. 윤승지댁과 혼사가 오가던 중'황진이'를 짝사랑하던 머슴 '놈이'의 발설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파혼을 당하게 되고... 하루아침에 인생역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진이’는 '놈이'에게 몸을 바치며, 허위와 위선으로 포장되었던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송도의 객주가인 청교방의 기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계급(신분)타파를 통해 ‘진이’와의 사랑을 꿈꾸던 ‘놈이’는 죄의식과 ‘진이’의 마음을 얻지 못한 괴로움으로 화적이 되지만, 뛰어난 미색과 총명으로 양반 사대부의 위선을 희롱하던 황진이는 신분사회에 대한 불신과 인간 욕망과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다. 그러나 조금씩 '놈이'에 대한 사랑에 눈뜨게 되면서 여전히 계급의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고, 분노로 가득찼던 자신을 발견하면서 자신의 욕망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러나 송도 사또 김희열의 계략으로 '놈이'는 효수형에 처해지고, 두 사람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 마지막 불꽃을 피운다. 황진이는 '놈이'의 시신을 묻어준 후 소리꾼으로 전국을 떠돌다가 생을 마감한다. 이상의 내용이 간략하게 살펴본 작품의 줄거리이다.
북한에서 출간된 원본에 충실하면서도 제본 및 편집의 새로운 옷을 입은 이 책은 외래어와 한자어로 얼룩진 언어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단어 하나 하나의 뜻풀이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어휘들이 참 많았다.(책 뒷부분에 용어 해설이 붙어 있을 정도!) 그러나 감칠맛나는 송도(지금의 개성?) 사투리와 적절한 속담과 비속어들, 그리고 절제되고 담백한 시조의 어울림은 거대 서사와 작은 에피소드들을 빈틈없이 연결하는 작가의 탁월한 구성 덕분이겠지만,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의 주체인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마음에 하나 하나 깊이 스며들기에 충분했다.
한번 잡으면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막힘없이 흘러간다. 며칠동안 정신없이 빠져있던 이 책을 덮으며 아쉬운 마음에 영화 같은 이 책을 원작으로 제작했다던, 송혜교 주연의 영화 <황진이>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한 일 하나! 원작과 이미 다른 형태로 태어난 또다른 작품을 상호비교하지 말 것!!!
영화도 나름 괜찮았다. 다만 원작에 뒤쳐질 뿐이지만... 아마 글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원작을 아깝게 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평가한다면 꽤 좋은 점수라고 생각한다. 행간에 녹아있는 주인공의 마음을 영화 속에서 녹여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구나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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