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청소년과 젊은 어른들을 위한 성교육 계몽서’를 자처하고 있는데, 독일 국적의 저자가 성에 대해 ‘청소년과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소개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도 책의 앞부분에 별도의 목차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저자는 그 이유를 목차를 보고 특정 부분만을 골라 읽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런 책들은 목차에 나타난 특정 단어나 주제들을 골라서 읽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간파한 저자의 전략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책의 하단에 각 항목의 주제들이 목차의 역할을 하고 있어, 책에서 다룬 내용의 순서는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정보만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주요 내용들은 저자를 포함한 세 사람이 대화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정리하는 역할을 담당한 ‘에이(A) 박사’는 저자 이름(Amendt)의 첫 글자를 따서 설정한 인물이다. 그리고 10대 후반의 남성인 ‘카이 우베’와 2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울리케’라는 여성이, 각각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진술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여기에서 그 대화를 지켜보면서 대답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에이 박사의 역할이 중심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성에 관심을 갖고 어떤 행동과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부터, ‘자위 행위’와 ‘여성의 성기’ 그리고 여성의 ‘월경’과 ‘몸의 기능’ 등에 관해 질문과 대화를 통해 그 의미를 짚어나가고 있다.
성적으로 예민한 청소년기에 궁금하게 생각하는 ‘페니스/클리스토리’의 기능은 물론 ‘키스와 페팅’을 거쳐 ‘성교’의 방법에 대한 소개도 잊지 않는다. 이와 함께 ‘성적인 장애’와 ‘피임’의 방법도 제시하고, 성 행위로 인해서 전파된다고 하는 ‘에이즈’의 문제에 대해서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독일은 분단되었던 서독과 동독의 통일로 인해서 새로운 통일국가를 형성한 바 있다. 분단 상황에 서로 다른 법적으로 그리고 관습적으로 다른 조건 속에서 살아왔기에, 저자는 이쯤해서 ‘통일 독일의 실정’이라는 항목을 통해서 통일 이전과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도드라진 것이 아마도 ‘임신중절제’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오히려 통일 이후에 임신중절에 대해서 법적으로 관대했던 동독의 법 제도에 비해 후퇴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성병’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소개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청소년 잡지’가 끼치는 그릇된 성적인 정보들에 대해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서술하고 있다.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단순한 ‘성 계몽서’의 의미에 그치지 않고,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형성되어 온 다양한 관습들의 의미를 따져보도록 하고 있다. 지금도 어느 사회에서나 청소년들을 ‘성숙/미성숙’의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데, 그것 역시 기성세대의 일방적인 관념일 뿐이라고 지적을 하고 있다. ‘성도착증’이라는 관념 역시 ‘성’을 이성의 결합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 책의 성격은 단순한 ‘성 계몽서’가 아닌, 성이란 주제를 통해서 기존의 그릇된 제도와 관습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여성’이라는 항목에서는 기존의 남성중심적 관념 하에서 억눌려온 여성의 존재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도록 하고, 나아가 여성의 문제로만 인식되어 온 ‘임신중절의 문제’ 역시 남녀의 공동 문제로써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나아가 ‘사랑’과 ‘질투’에 대한 관념들을 짚어보고, 남성인 가장 중심의 ‘가정’의 관습과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기도 한다. 여기에 노년의 성 문제를 다룬 ‘나이를 먹는 일’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논하고, 사람들의 관념에 자리 잡은 문제들에 대한 삐딱한 답변을 제시하는 ‘무엇을 해야할까’라는 항목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성적으로 조금은 더 분방한 독일과 그에 대비되는 관습을 지닌 한국의 문화적 배경이 같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내용들을 통해서 독자들은 여러 모로 성에 대한 진지하고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책의 내용들이 성에 대한 일방적인 정보나 훈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적어도 ‘성’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각자가 주체가 되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오랜 기간에 형성된 관습에 의해 개인의 주체적 의지가 훼손될 수 있음을 성찰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단순한 ‘성 계몽서’가 아닌, 독자들에게 주체적인 ‘성’과 그것을 가로막는 우리 사회의 ‘관습’까지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차니)
|